사냥의 귀재 ‘식충식물’이 사는 법

지난 1월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 보존온실에서 뚜껑을 열고 있는 사라세니아.
#‘식물=동물의 먹이’ 고정관념 깨
화려한 외모와 향기로 벌레 유혹
100만분의 1g 초정밀 센서도 장착
#제 몸보다 몇배 길게 꽃대 세워
꽃가루받이용 곤충이 걸리지 않게
먹잇감과 구별하는 영악함이라니
#세계에 650여종… 대부분 키 작아
경쟁서 밀려나 불모지서 생존
살기위해 곤충 영양 취한건 아닐까

2009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아이스 에이지 3’를 보신적이 있나요? 영화에는 주인공인 맘모스 매니와 친구들이 거대한 식충식물의 벌레잡이 통 속에 갇혀 몸부림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옆에서 영화를 보던 아내가 물었어요. “진짜 저렇게 큰 식충식물이 있어?”

18세기에 칼 리케라는 독일인 탐험가는 마다가스카르에 있는 어떤 부족이 사람을 잡아먹는 나무에 어린 소녀를 제물로 바친다는 무시무시한 목격담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에야 그저 황당한 글로 여기며 웃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이 글에 이의를 제기한 학자가 아무도 없었답니다. 실제 수많은 탐험가와 식물학자가 이 식물을 찾기 위해 꽤나 공을 들인 적도 있고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큰 동물이나 사람을 잡아먹을 만한 대형 식충식물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최근 필리핀 팔라완 섬에서 발견된 네펜데스 아텐보로(Nepenthes attenboroughii)라는 벌레잡이통풀(Nepenthes)이 너비가 약 15㎝에 이르는 항아리처럼 생긴 거대한 벌레잡이 주머니(포충낭)로 쥐나 새와 같은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되긴 했지만요.

끈끈이주걱 카펜시스 잎.
식충식물,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다

17세기 중반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한 아마추어 식물학자는 당시 영국왕립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지인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그 편지에는 자신의 집 주변에서 발견한 매우 특별한 식물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는데 어떤 식물이 가시 같은 털이 돋아 있는 두 개의 동그란 잎으로 곤충을 삼켜버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이 식충식물이 최초로 소개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식물의 샘플을 받아본 영국의 박물학자 존 엘리스는 그리스어로 미의 여신인 비너스를 뜻하는 ‘Dionaea’와 쥐덫을 의미하는 ‘muscipula’라는 단어를 결합해 디오나에아 뮤시풀라(Dionaea muscipula)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 줬습니다.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표적인 식충식물인 파리지옥입니다.

파리지옥이 처음부터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로 온전히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분류학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칼 폰 린네는 처음에 이 식물을 미모사(Mimosa pudica)처럼 자극을 주면 단순하게 움직임을 보이는 식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세간의 통념이나 오랫동안 연구를 통해 쌓아 올린 기존 인식의 틀에서는 식물이 곤충을 잡아먹는다는 ‘하극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들었던 것 아닐까요. 그러나 그런 믿을 수 없는 일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식충식물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게 식충식물은 식물이 동물의 먹이인 것을 당연하게 믿고 있던 당시 사람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끈끈이주걱 해밀토니.
고대에도 식충식물은 존재했을까

아르카에암포라 롱기케르비아(Archaeamphora longicervia). 부르기도 어려운 이 식물은 현재 화석으로만 존재합니다. 2005년 중국의 동북부 지방에서 발견된 이 화석은 속씨식물이 처음으로 나타난 백악기 초기의 초본인데요. 현대의 식충식물 중 사라세니아과(Sarraceniaceae) 식물과 형태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아 가장 오래된 식충식물 화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식물의 가장 큰 특징은 잎이 길다란 항아리 모양으로, 숟가락처럼 생긴 뚜껑이 달려있고, 입구부분에 꿀을 분비하는 꿀샘도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는 핼리암포라(Heliamphora)나 사라세니아(Sarracenia purpurea)와 닮은 모습이죠.

몇몇 식물학자는 이 식물이 가장 오래된 식충식물이라는 것에 반대 의견을 내놓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라세니아과 식물은 아메리카 대륙이나 호주 등 신대륙에서 존재하고 있는데 중국과 같은 구대륙에서 유래되었다는 다른 증거가 없다는 것이죠. 형태적으로도 잎의 바닥부분이 일정한 소화액 수위를 유지하기에 매우 어려운 작은 크기(3~5㎜)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다른 식충식물 화석도 있습니다. 팔라에오알드로반다(Palaeoaldrovanda)라는 식물 화석은 현대의 벌레잡이말과 비슷하게 생겼고, 끈끈이주걱(Drosera)과 가까운 것으로 여겨지는 드로세라피테스(Droserapites)라는 식물도 있습니다. 이들은 지질시대에 식충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 아르카에암보라 롱기케르비아와 비슷한 논란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화석으로부터 얻은 정보만으로는 동물을 잡아먹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무척 어렵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교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식충식물이 과연 고대부터 존재하였을까 하는 편견 때문에 의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에 전시된 사라세니아 알라타의 꽃. 사라세니아 알라타는 주로 북미에서 발견된다.
정교하고 기발한 함정, 한번 갇히면 못 빠져나온다

식충식물은 자신의 몸을 변화시켜 다양한 함정을 고안해 내는데 이것이 참으로 기발하기 짝이 없습니다. 먹이를 유인하기 위해 달콤한 꿀과 향기를 내뿜기도 하고, 멀리서도 잘 보이려고 화려하고 강렬한 색으로 자신을 꾸미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하는 끈끈이주걱은 햇빛에 이슬처럼 반짝이는 수많은 방울을 만들어 내는데요. 갈증을 느낀 곤충이 유혹을 쉽사리 떨치지 못해 그만 가까이 다가오면 곧 끈끈한 점액이 온몸을 휘감아 질식시켜 버립니다. 다윈은 끈끈이주걱이 자신의 먹이에 대해 0.83㎍(마이크로그램ㆍ100만분의 1그램)의 무게까지도 감지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아주 살짝만 닿아도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정밀한 센서와 무기를 장착하고 있는 셈이죠.

열대의 식충식물인 벌레잡이통풀은 먹잇감을 꿀과 향기로 유혹한 뒤 꿀에 든 마취 성분으로 정신 차리지 못하게 합니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먹잇감은 입구 안쪽의 미끄러운 왁스층 때문에 발을 디딜 수도 매달릴 수도 없어 그만 통 안에 빠져 버립니다. 북미의 사라세니아는 아예 포충낭 속에 아래방향으로 가늘고 긴 털을 만들어 먹이가 함정으로 들어가기는 쉽지만 도망갈 수는 없도록 합니다. 설사 날아서 도망가고 싶어도 가짜 창문이 있어 더욱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어렵사리 잡은 먹이가 빗물에 쓸려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기도 합니다. 남미의 핼리암포라(Heliamphora)는 포충낭의 봉합선 부분에 약간의 구멍을 남겨놓아 먹이는 거르고 빗물만 밖으로 내보냅니다. 사라세니아와 벌레잡이통풀은 아예 커다란 뚜껑이 달려 있어 빗물이 안으로 들이치지 않도록 합니다. 통통하게 생긴 벌레잡이제비꽃(Pinguicula)은 먹이가 달라붙게 되면 잎 끝을 오므려 웅덩이를 만듭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사냥하는 식물도 있습니다. 파리지옥은 먹이를 잡는데 불과 0.1초에 불과합니다. 먹잇감이 발버둥치거나 크기가 커 감각모를 계속 자극하면 더 많은 소화효소를 분비하여 녹여 버리죠. 좌우로 나있는 세 쌍의 감각모는 두 개 이상을 건드려야 비로소 잎을 닫게 됩니다. 빗방울처럼 먹잇감이 아닌 것에 기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통발(Utricularia)은 속이 빈 콩 모양의 포충낭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발의 사냥은 안과 밖의 수압 차이를 이용하는 철저히 기계적인 방법으로 작동합니다. 먹잇감이 입구에 있는 감각모를 건드리면 주변의 물과 함께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데 그 시간은 0.001초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만약 영상을 촬영했다면, 아주 느리게 되감기를 해야 겨우 알아차릴 정도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냥하고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하게 있는 모습은 뻔뻔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포로가 된 먹이들은 소화효소로 가득찬 수프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연구자들이 호주에 사는 세팔로투스(Cephalotus)의 소화액을 분석한 적이 있는데 이 안에는 곤충의 외골격을 구성하는 키틴이라는 물질을 녹일 수 있도록 키틴아제를 비롯하여 약 35개의 단백질이 끈적하게 섞여 있다고 합니다. 이 물질들은 다른 식충식물들의 소화액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됩니다.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교묘하게 유혹한 뒤 놀랍도록 정교한 함정으로 먹잇감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이들은 정말 혁신적인 사냥의 귀재인 셈이죠.

식충식물이 곤충을 먹잇감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영악하게도 꽃가루 받이를 위해서도 곤충을 이용하는데 이들 곤충이 자신이 만든 함정에 걸리지 않도록 대개는 자기 몸에 비해 몇 배나 긴 꽃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꽃대를 높여 놓으면 꽃가루 받이용 곤충이 함정에 가까이 가지 않고도 임무를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죠. 꽃가루받이용 곤충과 먹잇감용 곤충을 구분하는 셈인데 먹잇감이 된 곤충 입장에선 다소 억울한 생각이 들 만 합니다.

생존 위한 식충식물의 치열한 노력

전 세계에는 대략 650여종의 식충식물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식충식물은 대부분 키가 작은데, 주위의 식물들과의 햇빛이나 양분의 경쟁에서 밀려나 습지, 늪지대 등 다른 식물들에게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서식지로 터전을 옮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곳의 토양은 질소(N)나 인(P) 등 생존에 필수적인 영양분이 부족하거나 식물이 이용할 수 없는 형태로 변해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변에서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바로 곤충 같은 작은 동물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영양체 덩어리가 아니었을까요.

보면 볼수록 과연 이들에게 의식이 없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그저 별난 식물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경이롭고 독창적이죠. 겉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자연에서 실상은 치열한 경쟁과 격렬한 싸움, 생존을 위한 노력을 이 식충식물의 모습과 삶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자연과 생태계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관찰하고 싶다면 식충식물을 한번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키우기도 어렵지 않을 뿐 아니라 관찰하며 교감을 나누기에 더할 나위 없는 소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들의 풍부한 개성과 독창성은 상상력을 자극시켜 주고, 눈에 보이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 작은 생명 하나 하나가 소중하고 가치 있음을 일깨워 주리라 봅니다.

이경철 국립생태원 식물관리연구실 연구원

벌레잡이제비꽃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