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11m 넘는 대형버스만 의무화
사고 버스는 10.95m로 대상서 빠져
문 대통령, 서둘러 장착 지시했지만
‘졸속 대책’ 비판 피하기 힘들 듯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양재 나들목 인근에서 광역버스와 승용차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광역버스와 충돌한 승용차가 심하게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 참사를 일으킨 광역버스 차량 모델이 정부가 졸음운전 사고 방지대책으로 내놓은 ‘자동비상제동장치(AEBS)ㆍ차로이탈경고장치(LDWS) 의무 장착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예산을 동원해 AEBS 등 관련 장치 장착을 서두르라”고 지시했지만, 정작 사고 버스 모델은 대상이 아닌 셈이어서 관련 부처는 졸속대책이란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12일 국토교통부,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7중 추돌사고를 낸 광역버스는 현대자동차 ‘유니시티’다. 2012년 출시돼 국내에서 총 738대가 팔린 대표적 시내ㆍ관광버스용 차종이다. 그런데 정부가 지난해 8월 버스 운전자의 졸음운전을 막기 위해 내놓은 ‘사업용 차량 교통안전 강화대책’에 유니시티는 해당되지 않는다. 버스 전장(차체 길이) 11m 초과 차량만 AEBSㆍLDWS 장착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유니시티는 전장이 10.95m이어서 5㎝ 차이로 의무장착을 피했다. 정부는 기존 도로에서 운행 중인 차량의 경우 올 7월 18일부터 LDWS를 의무 적용 하도록 했고, AEBS는 현재 계도기간으로 내년 1월부터 신규 출시되는 모델에 대해 적용된다.

시속 100㎞로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광역버스에 주로 사용되는 유니시티뿐 아니라 시속 80㎞ 넘나들며 국도를 오가는 시내버스로 주요 사용되는 현대차 그린시티ㆍ슈퍼에어로시티, 자일대우버스 bs106 등도 모두 전장 11m에 못 미쳐 AEBS 등의 의무 장착 대상이 아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사고방지 대책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중형버스(전장 9m) 이상만 되면 시내버스로 등록이 가능해, AEBS 의무 장착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9~11m 크기 버스들이 ‘도로 위 폭탄’이 될 위험이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작년 대책이 만들어진 계기가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사고 때문이었는데, 사고 차량은 11m가 넘는 고급버스였다”며 “주로 고속 주행은 11m 이상 대형버스가 맡고 있고, 버스운송업체들의 영세성도 감안해 내린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도 AEBS 의무 장착 대상을 전장 11m 기준으로 정한 정부 대책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운수업계는 AEBS 등 첨단장치 의무 장착 확대가 제작비용 상승으로 연결된다며 반발해왔다. 정부가 업계 손을 들어주면서 첨단장치 의무 장착대상 차량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승객과 주변 다른 차 운전자 안전을 우선시해 정책을 만들었다면, 11m 기준이 정해질 수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AEBS 장착을 의무화하지 않는다면 자발적으로 장착한 운수업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차량에 AEBS를 옵션으로 장착하려면 추가비용이 1,000만원 정도나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양한 차량에 맞는 AEBS 장착 기술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실정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AEBS와 LDWS에 관한 원천 기술은 갖고 있지만 센서 부착 등을 하려면 차량 체급별로 장착을 최적화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문제가 된 유니시티도 장착 기술이 현재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자일대우버스 관계자도 “11m이상 고급버스는 올 하반기에 첨단장치를 장착할 예정이지만 나머지 의무대상이 아닌 버스는 당장 장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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