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불편러] (25) 파리와 마드리드 대중교통에 ‘쩍벌금지’ 포스터가 붙은 이유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 창문에 '다리를 벌려 않지 말라'는 내용의 경고 포스터가 붙어있다. 트위터(@LaProvence) 캡쳐.

“이왕이면 다리 좀 오므리세요. 당신의 ‘그것’이 보석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다리를 오므려도 터지지 않으니까요.”

최근 프랑스 파리 시내 전철엔 이색적인 포스터 문구가 부착됐다. 다리를 벌리고 앉는 남성, 소위 ‘쩍벌남(다리를 쩍 벌린 남성)’의 행동을 제지하는 내용의 공익광고다. 이 포스터는 지난 4일(현지시각) 파리 시의회가 ‘쩍벌 방지 결의’에 서명한 이후 등장했다. 다리를 벌리는 탑승객들의 행위와 관련, 지하철 운영사들이 경각심을 주는 대책 마련 시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파리 시의 결의에 따른 조치였다.

이로부터 불과 한 달 전인 지난달 1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목격됐다. 마드리드 시내 대중교통을 책임지는 마드리드 도시교통공사(EMT)가 ‘쩍벌금지’ 스티커를 제작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 시의회는 EMT측에 이런 스티커를 도입하도록 공식 제안했다.

‘쩍벌을 매너로’ 시민 청원으로 시작되다

대중교통에 ‘쩍벌 금지’ 경고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미국 뉴욕과 시애틀의 도시교통공사에선 각각 2014년, 2015년 포스터를 통해 승객들에게 다리를 오므려 앉도록 권했다. 일본의 철도문화재단이 매달 발표하는 지하철 매너 공익 광고에도 ‘쩍벌 금지’와 관련한 내용은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림 2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2014년 미국 뉴욕 교통공사(MTA)가 게시한 ‘아저씨 다리 벌리지 마세요 무례해요’ 포스터. 2016년 일본 철도문화재단이 제작한 포스터. 2015년 미국 시애틀 교통공사(Sound Transit)가 제작한 공공예절 포스터. 각 홈페이지 캡쳐.

파리와 마드리드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이런 조치가 시민들의 청원을 통해 시작됐고, 교통공사가 아닌 시에서 직접 추진했다는 점이다. 마드리드의 경우 작은관계페미니스트(Microrrelatos Feministas)란 스페인의 한 시민단체가 온라인 청원 사이트인 ‘체인지’에서 시작한 서명운동을 계기로 1만 3,000여명의 시민들이 동참했다. 청원 내용은 마드리드 시 의회 산하 평등위원회에 전달돼 검토를 거친 뒤 실제로 추진됐다. 파리 역시 한 시민이 같은 청원사이트에 제안을 올렸고, 약 1만 9,000여명의 서명이 시 의회에 전달됐다.

온라인 청원 사이트 체인지(change.org)에 올라온 스페인 마드리드시 대중교통 내 '쩍벌 금지' 청원. change.org 캡쳐
기존 공공예절과 다른 점은?

대중교통에서 지켜야 할 예절은 대체로 ‘침범’의 문제와 관련돼 있다.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있는 버스와 지하철에서는 한 명의 작은 움직임이 여러 사람의 공간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국이 강조하는 대중교통 예절 역시 이 지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백팩 등 큰 가방을 매고 버스를 탈 때는 다른 사람의 통행을 위해 앞으로 매거나,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지하철을 탈 경우 타인을 찌르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게 기본이다. 다리를 벌리는 ‘쩍벌’ 뿐만 아니라 다리를 꼬는 것, 쭉 피는 것 등도 타인의 공간을 크게 침해하는 행위다.

일본 교통문화재단(왼쪽)과 미국 메사추세츠 대중교통위원회(가운데)가 만든 대중교통 내 백팩 경고 포스터. 일본 교통문화재단(오른쪽)이 만든 대중교통 우산조심 포스터. 각 홈페이지 캡쳐.

‘움직임’만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이어폰을 끼지 않고 음악을 듣는 등 ‘소리’나 ‘체취’ 등으로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는 것도 무례한 일이다. 모든 사람에게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대화를 하는 것도, 지하철 안에서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세계 어디를 가든 환영 받기가 어려운 행동이다.

프랑스 파리 시내 대중교통회사 RATP가 2013년 제작한 지하철 예절 홍보 포스터. RATP 홈페이지 캡쳐.

‘쩍벌’ 역시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는 행동이란 점에서 기존 대중교통예절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행동을 하는 대상이 주로 남성이라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쩍벌남’이라는 말은 자주 사용되지만 ‘쩍벌녀’라는 말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점, ‘대중교통에서 다리 벌려 앉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 맨스프레딩(manspreading)의 앞에 ‘맨(남성)’이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행동을 남성의 신체구조 때문에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쩍벌’은 신체보단 심리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여러 연구결과가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콜레트 기요맹은 공공장소에서 다리를 벌리는 남성의 행동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타인의 다리를 오므려 약하게 만들려는 무의식적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대담을 나눈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라이벌을 앞에 두고 다리를 넓게 벌려 앉았다. 함부르크=AP연합뉴스.
파리 의회 “쩍벌은 불평등의 문제”

파리 의회가 이번 결의안에서 ‘쩍벌은 남녀간 불평등의 문제’라고 지적한 것 역시 이 같은 배경을 고려한 것이다. 파리 의회 환경자문그룹의 대표인 데이빗 벨리어드는 “대중교통에서 다리를 벌리는 것은 마초적인 행동을 통해 여성 등 타인의 공간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드리드 시민 청원 역시 “임산부를 배려해 자리를 비워달라고 하는 대신 다리를 쫙 벌려 앉지 말라고 하는 것이 더 실용적이다”라고 지적했다.

파리 의회는 이번 시도는 일종의 ‘교육’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벨리어드 대표는 “많은 여성들이 다리를 오므려 앉도록 교육받으며 자라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못했다”며 “지하철에 ‘쩍벌금지’ 포스터를 붙이는 것은 ‘다리를 벌리는 것은 무례하다’는 인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교육적 접근이다”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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