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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성폭력처벌법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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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성폭력처벌법 대상?

입력
2017.07.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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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인적 사항 비공개 규정 들먹여

입법조사처 “법 제정 전 사건에 적용 부적절”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옛터 앞 평화의 소녀상. 연합뉴스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옛터 앞 평화의 소녀상. 연합뉴스

한일 위안부 합의로 설립된 화해ㆍ치유재단이 위안부 피해자들과의 면담 녹취록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을 근거 규정으로 삼은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성폭력처벌법을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9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화해ㆍ치유재단 관련 자료에 따르면, 재단 이사진들은 지난해 10월 14일 6차 이사회에서 ‘녹취록 공개 불가’를 결정했다. 재단 이사회는 비공개를 전제로 녹음했기 때문에 피해 할머니와의 신뢰가 깨질 수 있고, 성폭력처벌법 제24조 제1항에 피해자를 특정해 파악할 수 있는 인적 사항을 공개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누설해서는 안 되고 위반 시 처벌하는 규정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화해ㆍ치유재단은 2015년 12ㆍ28 합의일 기준 생존한 46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1억원 씩의 일본 위로금을 지급하는 사업(34명 지급완료, 2명 지급 절차 중)을 벌여왔으며,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에 대한 설명 없이 위로금 수령만 강요하거나 치매·중풍을 앓고 있는 할머니 대신 가족·지인들을 회유해 지급했다는 의혹이 있었다.(본보 1월 23일자 1면ㆍ2월 15일자 15면)

재단의 녹취록 공개 불가 결정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를 4일 앞두고 이뤄졌다. 7월28일 재단 설립 후 10월부터 위로금 지급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던 시점이며, 국감을 앞두고 당시 야당 의원들이 위로금 지급 과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녹취록 공개나 열람을 요구한 상태였다.

재단의 불응이 지속되자 박주민 의원이 최근 국회입법조사처 법제사법팀에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성폭력처벌법 규정 적용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 입법조사처는 지난 3일 회답문에서“성폭력처벌법 제24조는 수사 및 재판 당시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신원이 공개돼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조항인데 화해ㆍ치유재단의 지원이 필요한 할머니들은 자신의 피해를 이미 세상에 공개해 당시의 폭거를 증언했고, 비공개 대상인 녹취록은 할머니들의 성폭력 피해사실을 조사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성폭력처벌법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과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녹취록에 할머니들의 성폭력 피해사실이 포함되었더라도 성폭력처벌법 적용은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성폭력처벌법은 형사법으로 소급이 금지돼 있다. 이 법이 2010년에 제정된 점을 감안하면 일제강점기에 발생한 할머니들의 피해사실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또한 국회의원실에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행위의 목적성을 비춰 볼 때 해당 법 조항은 관련성을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박주민 의원실 관계자는 “재단에 자료 요청할 때마다 협조가 안돼서 힘들었다”며 투명성이 결여된 재단 운영을 비판했다.

입법조사처의 유권해석은 강제력이 없어, 화해ㆍ치유재단은 공개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허광무 화해ㆍ치유재단 사무처장은 “피해자들이 합의금 수령 내용을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성폭력 피해 사실이 노출될 우려가 있어 공개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수 차례 면담한 피해자의 경우 기록을 남겨야 할 시기에만 녹취록으로 남겼고, 피해자가 원하지 않거나 피해자의 수용 의사가 확고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 재단 인력 부족 등으로 녹취를 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임 정현백 여가부 장관은 “화해·치유재단의 운영과 위로금 지급 방식 등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어, 여가부의 재단 운영 점검 과정에서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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