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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기업이 미래다] “전국 3대 빵집 성장 비결?…나눠먹으면 돼요”

입력
2017.07.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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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진 성심당 대표
임영진 성심당 대표

1970년대 말, 대전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아 온 빵집 성심당은 최대 위기에 빠진다. 서울에서 유명한 ‘뉴욕제과’가 성심당 바로 건너편에 대전 지점을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뒤를 이어 20대에 제과점을 맡았던 임영진 성심당 대표(63)는 “이대로 문을 닫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밤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임 대표의 우려와 달리 성심당을 찾는 사람 수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서울 유명 빵집은 몇 년을 못 버티고 결국 대전 지점을 폐쇄했다. 임 대표는 “빵이야 서울 유명제과가 종류도 더 많고 맛도 있을지 모르지만, 대전 사람들이 의리를 지킨 것”이라며 “성심당이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주민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성심당은 임 대표의 부친인 고(故) 임길순 선생이 1956년 대전역 앞에서 찐빵을 팔기 시작한 뒤 대전과 61년째 인연을 맺고 있다. 임 대표 부친은 1ㆍ4 후퇴 때 흥남부두에서 철수하는 마지막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생사의 기로에 섰던 임 대표 부친은 “살아남는다면 평생 남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고, 대전에 정착해 빵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그 다짐을 실천했다. 임 대표는 "어머니가 미군 구호물자로 받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기 바빴지만 아버지는 장사보다는 대전역에서 굶주리는 사람들한테 빵을 나눠주기를 더 좋아하셨다"며 “넉넉지 않은 살림에 가족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아버지의 빵 나누기는 계속됐다"고 회고했다.

아버지가 꾸준히 나눠준 빵이 장기적으로 성심당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됐다는 게 임 대표 생각이다. 나눔을 실천한 아버지 덕분에 지역민의 인심을 얻을 수 있었고, 외부 유명 빵집이 대전에 지점을 내는 것처럼 성심당이 어려움에 부닥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임 대표는 “지난 2005년 화제로 성심당 본점이 전소돼 빵집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몰렸지만, 직원들과 이웃의 도움으로 일주일 만에 영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며 “주민들이 빵 사주기에 적극 나서면서 매출은 화재 전보다 30%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빵 나누기가 꼭 좋은 결과로만 돌아온 것은 아니다. 1987년 민주화 운동 때 임 대표는 성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대학생들에게 빵을 나눠 줬다는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행정 당국의 위생 조사도 받았다. 가게를 영업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당국의 압박에 임 대표는 한때 사업을 접고 이민을 할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 대표가 당시 대학생들뿐 아니라 전경들에게도 빵을 나눠준 사실이 밝혀지고, 이후 6ㆍ29선언이 이어지면서 성심당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임 대표는 “전경한테도 빵을 나눠 줬다는 증언을 해준 것도 이웃 주민들이었다”며 “성심당 위기극복에는 늘 이웃의 도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성심당 대전 본점 매장
성심당 대전 본점 매장

1980년대부터 사실상 40년째 성심당을 이끌어온 임 대표는 아버지의 나눔 경영을 확대ㆍ발전시키고 있다. 지금도 매달 평균 3,000만원어치 빵을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고, 회사 성과를 직원들과 나누는데도 적극적이다. 분기마다 영업이익의 15%를 직원들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있다. 또 회사 운영비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확대해 매년 15% 안팎의 높은 임금인상률을 유지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성심당의 성과 나눔 경영을 다른 중소기업의 모범 사례로 삼기 위해 임 대표를 지난해 ‘존경받는 중소기업 경영인’인에 선정하기도 했다. 임 대표는 “직원을 빼고 회사만 성장하는 기업이 오래 갈 수 있겠냐”며 “직원들과 성과 공유는 사실 회사 성장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말했다.

전국 3대 빵집으로 불릴 만큼 명성을 얻은 만큼 임 대표의 다음 목표가 궁금했다. 서울을 비롯해 해외에 지점을 내는 등 회사 외형 성장에 주력할 거라는 대답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는 “대전에서 오래오래 지금처럼 빵을 파는 게 목표”라는 답을 했다. 그는 “대전 시민들이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성심당 빵을 선물하며, 대전의 성심당에 대한 자부심을 표시할 정도인데 다른 지역에 지점을 내는 건 예의가 아니다”라며 “다만 성심당처럼 나눔을 실천하는 대전 기업이 더 늘었으면 하는 게 소박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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