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왜곡된 성 의식이 연일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모두 과거 그가 직접 말하고 쓴 책을 통해 드러난 문제들이다. 그는 2007년 저서 <남자 마음 설명서>에서 콘돔을 쓰는 것이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하다”고 썼고, 같은 해 낸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에서는 고교 시절 동년배 남자 친구들과 여자 중학생을 “공유”했다고 표현했다.

이것만으로도 뜨악한데, 지난 4일 또 한 건이 터졌다. 2010년 저서 <상상력에 권력을>에서 서울의 룸살롱 유흥 문화를 예찬하듯 묘사했던 것이 뒤늦게 발굴된 것이다. 일종의 풍자인가 싶다가도, 그의 과거 언행을 돌이켜볼 때 아무래도 진심이라 생각하는 게 합당할 것 같다.

아무리 옛날 남성들 사이에 여성을 비하하고 멸시하는 문화가 당연시됐다지만 탁현민의 경우는 좀 너무하다. 그런 인식을 굳이 활자화하여 영구히 보존해둘 정도로 부끄럼 없는 사람은 좀처럼 흔치 않다.

한때 그런 시대가 있긴 했다. 모두가 꽁꽁 싸매고 드러내는 것 자체를 죄악시했던 성 담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던 시절. 아마 세기말 즈음이었을 것이다. 구성애씨는 ‘아우성’을 통해 모두가 외면했던 10대 청소년의 성을 정면으로 다루어 큰 호응을 얻었다. 한 배우는 <나도 때로는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란 도발적인 제목의 에세이를 펴냈고, 남녀 톱스타들이 누드집을 통해 나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이건 거대한 진보였다. 음지에서 가장 부끄러운 부분만 비대하게 성장했던 한국의 성 문화에 비로소 양지로 향하는 길이 트인 것이다. 그러나 만사형통은 아니었다. 음지의 부끄러운 성 문화는 죽지 않았다. 그로 인해 음지에 가둬둬야 할 방종이 개방적인 성 문화란 미명 아래 양지로 튀어나오는 경우도 생겼다.

탁현민의 책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1999년, 공포의 대왕이 강림하여 세계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유행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제 갓 성 담론이 시작되었던 시절 말이다. 탁현민이 책을 쓴 것은 2007년, 2010년이다. 그다지 먼 과거가 아니다. 그 당시 기준에서도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다.

탁현민은 처음 이 문제가 불거진 5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현재 가치관은 달라졌지만 당시의 그릇된 사고와 언행에 대해 사과한다”고 썼다. 그 이후 연속해서 터져 나온 추문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지만, 그의 반성이 진실이기를 바란다. 이것은 탁현민 개인의 진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세기말을 넘어, 탁현민이 책을 쓴 2007년과 2010년을 지나서도 여전히 수없이 많은 탁현민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솔직한 성 담론은 좋다. 우리 사이에 추파가 넘실댔으면 좋겠다. 아주 자유롭게 호감을 표현하고, 어디에서나 새로운 상대와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개방된 세상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여성들은 너무 많은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소수자들은 아예 그들의 사랑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가장 성적으로 방종한 이들이 그들을 악마라 부르고 손가락질한다. 이건 현실이며, 어떤 사람들의 일상이다.

이런 가운데 완전한 개방이란 있을 수 없다. 탁현민과 같은 사람들이 그의 저서 제목처럼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폭력적인 시선과 문화에 움츠러들고 자유를 잃게 된다. 자유로운 성 문화란 미명 하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성희롱에 가까운 추파가 범람한다.

때로 성에 솔직한 사회라는 가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다른 가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모든 관계는 합의 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 상대의 입장과 감정을 늘 배려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이 덕목이 널리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이상, 성에 솔직한 사회란 결국 이성애자 남성들의 판타지일 수밖에 없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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