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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스토리] 간장공장 견문록... 불멸의 신비를 맛보다

입력
2017.07.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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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경기 이천의 샘표식품 공장. 100톤 용량의 발효 탱크에서 간장이 발효되고 있다. 모든 공정은 자동이다. 간장은 촘촘하게 배열된 파이프를 통해 탱크에 들어갔다 나온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그림 1경기 이천의 샘표식품 공장. 100톤 용량의 발효 탱크에서 간장이 발효되고 있다. 모든 공정은 자동이다. 간장은 촘촘하게 배열된 파이프를 통해 탱크에 들어갔다 나온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최근 양조간장의 위해성 논란이 있었다. 서울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고은미 교수 팀은 ‘간장 조리법에 따른 에틸카바메이트 함량’ 논문에서 에틸카바메이트를 간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섭취하게 되는 위험성을 지적했다.

간장과 술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물질인 에틸카바메이트는 국제암연구소(IARC) 기준에 따르면 ‘인체 발암추정물질’에 속한다.

식품공학자 최낙언 대표는 “간장의 에틸카바메이트를 이야기하려면 과실주 등의 에틸카바메이트를 함께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술로 섭취하는 에틸카바메이트 양에 비하면 간장의 에틸카바메이트 양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발암 요인은 흡연이 30%, 술이 3%, 식사 요인이 30% 정도이며, 화학 물질 노출이 1, 2%에 불과하다, 발암 요인이 되거나 발암 요인으로 추정되는 화학 물질은 1,000가지가 넘는다. 에틸카바메이트는 그중 하나일 뿐이므로 전체 발암 요인 중 0.001%도 되기 힘들다.” “간장의 에틸카바메이트를 걱정하는 대신 과식하지 않고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며 담배를 끊는 것이 낫다”는 것이 최 대표의 지론이다.

괴담이 힘을 얻는 것은 그것이 미지를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공장은 의뭉스럽다. 굴뚝으로 뭔가를 뿜어낼 뿐, 그 안에서 무엇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알 수 없다는 의미이며, 그러므로 믿을 수 없다는 의미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식품에 대해서는 그래서 언제나 의혹 섞인 시선이 따라다닌다. 에틸카바메이트보다 무서운 간장 관련 괴담은 얼마든지 많다.

그러므로 “공장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아요.” 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말은 의외인 나머지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간장 만드는 방법은 집 간장과 거의 같고 현대적으로 대형화 돼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샘표식품 홍보팀 심선애 차장의 이야기다. 콩을 삶아 찧고, 메주를 빚어 말리고, 소금물에 띄워 몇 달, 몇 해를 묵혀야 만들어지는 간장을 공장에서 만드는데 다르지 않다고? 줄기세포를 배양해 시험관에서 맛있는 고기도 만들어 내는 시대에?

1946년 샘표식품 등장을 기점으로 우리 간장 문화는 변화를 맞았다. ‘간장은 집에서 담가 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고정돼 있었지만, 전쟁 중 간장을 담글 만한 사정이 되는 집은 적었다. ‘간장도 사먹는 것’이 된 지 70여년째다. 요즘은 대량 생산이 아닌 재래 방식의 간장을 찾는 프리미엄 소비층도 늘었지만, 여전히 간장은 슈퍼마켓, 대형 마트에서 사 오는 것이라는 인식은 그대로다. 우리가 무엇을 집어 와 먹고 있는지 눈으로 보고 알기 위해 간장 공장에 찾아갔다. 기대 반 의심 반인 야릇한 기분으로.

2만5,000평 규모의 공장에 들어서자 키 큰 가로수 옆으로 큰 건물 네 채가 하얀 수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건물 너머로는 저층 아파트 높이의 커다란 회색 금속 탱크가 있다. 울긋불긋하게 벽화가 그려진 공장 건물은 산업혁명 시대의 잿빛 풍경으로부터 아주 먼 인간적 미래로 와 있었다. 장난감 공장처럼 알록달록한 공장 외벽의 그림은 아티스트 ‘그리마’가 맡았다. 가로수 아래로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콩밭에 허수아비들이 모란봉 악단처럼 화려하게 치장했다. 주말 텃밭으로 콩밭을 분양받은 소비자이자 도시농부들이 취향 대로 제작한 허수아비란다.

공장에서는 대표 제품인 ‘양조간장 501’과 ‘양조간장 701’, ‘맑은 조선간장’, ‘요리 에센스 연두’ 시리즈 외에도 130여가지의 간장 제품이 생산된다. 그토록 다양한 간장이 한 회사, 한 공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연간 생산량은 총 7만톤. 1리터짜리 700만병이다.

1987년 지은 이천공장은 현재 샘표식품의 간장 생산을 온전히 맡고 있다. 서울 도봉구 창동 간장 공장은 2000년 이천공장으로 이전했다. 수도권인 데다 물도 좋은 지역이라 이천에 터를 잡았다. 가까운 곳에는 오비맥주와 진로소주 공장도 있다. 샘표식품 부지 내 한쪽에는 여름에도 차가운 지하수를 퍼 올리는 펌프가 가동되고 있다.

간장 재료인 대두와 밀 등이 보관된 거대한 사일로.
간장 재료인 대두와 밀 등이 보관된 거대한 사일로.
대두는 워낙 단단해 으깨서 쓴다.
대두는 워낙 단단해 으깨서 쓴다.

비스듬한 경사면의 공장에선 대두가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파이프에 실려 다니는 동안 간장이 된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사일로(탑 모양의 저장고)’. 대두며 밀 같은 간장 재료가 담긴 초대형 곡물 통이다. 탈지 대두를 쓰는 것은 지방을 제거해 상대적으로 단백질 함량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다. 양조간장에 탈지대두를 사용한다. 같은 양조간장이라도 501과 701은 아미노산 함량을 나타내는 단백질 계수가 다르다. 더 비싼 양조간장701에는 501보다 더 많은 재료가 들어간다. 밀을 쓰는 것은 일본식 간장의 영향이다. 밀 전분이 당으로 분해돼 달달한 맛이 난다. 양조간장에 진간장과 밀이 들어간다. 탈지 대두는 기름을 짜낸 콩 덩어리라 조그만 콘플레이크처럼 생겼다. 온전한 콩 모양 그대로 들어온 대두는 단단한 겉껍질을 깨고 알맹이도 살짝 으스러진 상태로 만들어 쓴다. 맑은 조선간장이 온전히 대두를 사용한다.

저장돼 있던 대두 또는 탈지 대두가 처음 흘러가는 곳은 증자실이다. 높은 천장까지 구비구비 파이프가 연결돼 있고 온통 습한 열기가 가득 차 있을 뿐, 소음 외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겉으로 알 수 없는 공정 구간이다. 설비 한 대당 1시간에 4000㎏의 대두를 쪄 내니 한여름 더위가 순식간에 끔찍해졌다. 공장의 많은 부분이 자동화돼 상주 인력은 기계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다.

파이프를 타고 온 대두와 밀이 뒤섞여 제국실에 도포되고 있다. 둥근 방 형태인 제국실은 바닥이 뱅글뱅글 돈다.
파이프를 타고 온 대두와 밀이 뒤섞여 제국실에 도포되고 있다. 둥근 방 형태인 제국실은 바닥이 뱅글뱅글 돈다.

그 사이 밀 볶음실에서 씻고 불리고 볶은 밀이 제국실에 도착해 잘 쪄낸 대두를 만난다. 부패가 아닌 발효를 일으켜 간장을 만들어 내는 효모와 유산균도 한 세트다. 재래식 간장 제조법과 가장 다른 것은 메주 모양이다. 현대의 간장 공장에서는 굳이 메주를 네모나게 성형할 필요가 없다. 죽처럼 짓이긴 대두를 넓게 펴놓으면 으깨진 콩알 하나하나가 그대로 메주가 되는 셈이다. 제국실 안에서 발효되는 동안 조그만 메주들은 아래위로 뒤섞이며 미생물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갖춘다. 제국실 규모에 따라 15톤에서 25톤까지 한꺼번에 발효시킨다. 44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발효를 마친 작은 메주들은 100톤, 300톤들이 제미 탱크(발효 탱크)로 다시 파이프를 타고 이동해 소금물을 만난다.

두 번째 발효가 이뤄지는 제미 탱크는 100톤짜리가 56개, 300톤짜리가 42개로 모두 98개가 가동된다. 양조간장은 6개월 동안 발효시킨다. 샘표식품이 발견한 ‘향이 가장 풍부한 발효 기간’이다. 발효 기간대로 맛을 보니 발효는 마법에 가까웠다. 한 달 발효한 것은 시큼한 향이 지배적이다. 유산균의 영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두 달째부터는 효모가 원액을 지배하기 시작해 제법 간장다운 색과 향, 맛을 낸다. 가장 화려한 간장의 변신은 다섯 달과 여섯 달 사이에 일어난다. 날카롭던 짠 내는 한 달을 보내는 동안 꽃 향기, 바닐라 향, 고소한 견과류 향 등 다채로운 향을 품고 잘 묵은 와인처럼 향긋해진다.

2016년 국내 최초로 도입한 여과포에 여과 전의 간장 원액이 주입되고 있다.
2016년 국내 최초로 도입한 여과포에 여과 전의 간장 원액이 주입되고 있다.
드디어 익숙한 모습이 된 간장. 1.8리터 들이 양조간장501 제품이다.
드디어 익숙한 모습이 된 간장. 1.8리터 들이 양조간장501 제품이다.

가장 좋은 맛과 향을 품은 시기에 발효를 마친 간장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은 압착실과 배합실이다. 여과포에 6개월 된 간장 원액을 차곡차곡 부어 460장 두께로 겹치는 것이 시작. 하루를 그냥 두면 제 무게를 못 이겨 간장이 짜져서 나온다. 또 한 번 짠다. 압착기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낸다. 여과포는 특수소재로 미세한 구멍을 통해 간장이 흘러나오는 구조다. 여과포 안에 남는 것은 수분을 완전히 잃은 간장박뿐이다. 이는 소여물로 농가에 공급하기도 한다. 이어 살균과 재여과를 거쳐 자동화한 포장 라인으로 이동해 세상에 나올 채비를 마친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 또한 시간 앞에 옴짝달싹 못하고 노쇠해 간다. 그에 비해 간장은 가장 건강하고 싱그러운 때에 머물러 영생을 산다. 동글동글한 콩알에 지나지 않던 단백질 덩어리를 간장으로 변모시키는 효모와 유산균은 그야말로 간장을 잉태시키는 줄기세포다. 간장 공장의 심장부는 그러므로 아직 기사에 등장하지 않은 가장 작은 설비다. 몇 평에 지나지 않는 작은 실험실에서 자라는 효모와 곰팡이, 유산균이 간장 맛과 향을 유지하고 있다. 공기 중에 떠도는 효모가 알아서 메주에 붙고 간장을 만들어내 해마다 맛이 바뀌는 가정식 간장과 달리, 대량생산 간장은 일정한 맛과 향이 중요하다. 완벽한 균을 찾아내고 배양해 일정하게 영속시키는 일이 간장 공장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다.

간장의 줄기세포격인 효모를 배양하고 있는 플라스크. 두 종류의 효모는 Z효모, C효모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정확한 정체는 기업비밀이다.
간장의 줄기세포격인 효모를 배양하고 있는 플라스크. 두 종류의 효모는 Z효모, C효모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정확한 정체는 기업비밀이다.

이천공장에는 전설도 있다. 올해로 근속 40주년을 맞는 간장 공장 공장장 오경환 전무가 주인공. 연구원 시절, 견학간 일본의 간장은 균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그는 공장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숨을 참다가 화장지에 코를 풀어 한국까지 고이 들고 와 균을 배양해 냈다. 덕분에 일본 공장의 균이 무엇인지는 알아냈지만 한국 간장과는 맞지 않아 전설만 되고 말았다는 것이 후일담이다.

코 푼 휴지에 실려온 균을 포함해 여러 효모와 곰팡이, 유산균을 적용해 보는 방대한 연구와 탐색의 결과인 실험실의 균은 평소 냉동 상태로 꽁꽁 얼어 있다가 배양과 증식을 통해 세대를 거듭하고 있는 불로, 불사의 존재다.

이천=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강태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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