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질서문란자 등록제 무용지물
게티이미지뱅크

A은행이 지난해 적발한 대포통장 건수는 2,000건도 넘는다.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와 같은 금융 범죄에 사용된 A은행 통장 수를 집계한 것이다. 통장을 팔다 적발되면 최고 징역 3년을 살아야 한다. 지난해부턴 형사 처벌과 별개로 금융회사가 한국신용정보원에 해당 범죄자를 금융질서문란자로 등록시켜 12년간 금융거래를 정지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A은행은 통장을 판 사람들의 신원을 모두 확인한 뒤에도 금융질서문란자 등록은 단 한 명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금융질서문란자 등록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하며 금융 범죄가 되풀이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금융범죄 관련자가 10만명이 넘는데도 정작 금융질서문란자로 등록된 이는 극소수에 그치는 등 현장에선 제도가 겉돌고 있다.

2일 본보가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난해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금융질서문란자로 등록된 인원은 총 36명에 불과했다. 개정 신용정보법은 금융질서문란자 등록 사유로 총 10가지의 기준을 두고 있다. 다른 사람 명의로 신용카드를 만들거나 통장 매매, 대출사기, 보험사기, 회생파산사기 등에 연루된 금융범죄자가 대상이다. 다만 제도의 남발을 막기 위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에 한해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금융범죄 관련인원/2017-07-02(한국일보)

지난해 경찰이 대포통장 관련 범죄를 저질러 검거한 인원은 1만6,584명으로, 대부분 혐의가 인정돼 구속 기소됐다. 검찰 등 기관 사칭으로 보이스피싱를 하다 검거된 인원도 1만5,666명이나 된다. 그러나 이 기간 대포통장 관련 금융질서문란자 등록 건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적발된 보험사기 규모도 7,185억원으로, 적발 인원은 역대 최대인 8만3,000여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 금융질서문란자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적발되거나 검거된 인원 중 일부가 법적 처벌을 피했다고 해도 등록돼야 하는데 관리되지 않고 있는 금융질서문란자는 10만명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등록을 금융사 자율에 맡기다 보니 제도 집행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B카드사는 지난해 신용카드 도용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50명이나 적발했지만 12년 금융거래를 정지시키기엔 과도하다고 판단해 1명도 등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C카드사는 같은 이유로 적발된 2명을 금융질서문란자로 등록했다.

금융사와 법원 시스템이 서로 호환되지 않아 금융사가 유죄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일일이 처벌 여부를 추적할 수 없어 등록을 포기하는 경우도 없잖다. 금융질서문란자 등록제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이들이 또 다시 금융범죄에 나서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리면 곧바로 신용정보원에 통보될 수 있도록 대안을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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