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1학년 입학 직전에
가해 사실 드러나 전학 처분
받아주는 곳 없자 ‘자퇴 권고’
법원 “더 나은 성인 될 수 있게”
징계권보다 학습권에 무게 둬
“피해학생 극도의 스트레스”
현장에선 우려 목소리 만만찮아
게티이미지뱅크

A(16)양은 입학하기 전 저질렀던 단 한 번의 학교폭력으로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 A양은 특성화 고교 입학 직전인 지난 2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미리 어울려 지낸 같은 학교 신입생인 B(16)양이 자기 험담을 했다는 이유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이 학생의 머리와 등, 뺨을 때렸다. 그 뒤 서로 화해하고 조용히 넘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입학 직후 학교에서 벌인 학교폭력 설문조사에서 이 사실이 알려지자 입학 10일 만에 A양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회부됐다.

학교는 전학처분을 내린 뒤 수업에서 배제시키고 ‘면벽수행’을 시켰다. 전학은 사실상 학업을 중단하라는 결정이나 다름없었다. 현행법에 따르면 학교가 가해학생 전학 조치를 요청하는 경우 교육감이 전학 갈 학교를 배정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일반고와 달리 A양이 다니는 특성화고는 각 학교에 학생 선발 권한이 있어, 교육감이 다른 학교에 가해학생을 배정할 권한이 없다. A양 부모가 서울 시내 모든 특성화고와 인근 자사고에까지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A양의 전학을 받아 주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전학 갈 학교가 없다는 A양에게 학교는 자퇴를 권고했다. A양과 부모는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며 교육청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기각당했고 결국 법원에 전학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데 이르렀다.

법원은 이에 대해 입학 전 저질렀던 단 한 번의 학교폭력 때문에 학생에게 사실상 학업을 포기하라는 징계 처분을 내리는 건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 김정만)는 지난 27일 “A양이 학교폭력행위를 저지른 건 사실이지만 강제전학처분까지 한 건 학교가 징계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이라며 학교의 전학처분 효력을 정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학생에 대한 학교장 징계권이 존중돼 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인용 결정은 가해학생의 학습권을 무겁게 본 판단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재판부는 “A양에 대한 전학처분은 A양이 선택한 진로의 방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고 학생에 대한 전학처분보다 더 무겁다”고 설명했다. 가해학생이라고 해도 그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A양이 더 나은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기관의 역할을 해 달라”고 학교 측에 당부하기도 했다.

가해학생 입장에서 적정 수준을 넘는 가혹한 처벌이라는 게 재판부 판단이지만 현장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피해 학생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즉각적인 분리와 엄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당 학교 교감은 “피해 학생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호소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며 “2, 3차 피해가 우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처럼 가해학생 학습권과 피해학생 보호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지만 기계적인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학교현장의 현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모두를 위한 학교폭력 사후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학교 사정은 이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에는 가해ㆍ피해 학생을 다루는 학교폭력자치위원회 위원에 상담 전문가나 법률 전문가, 인권 전문가를 포함시켜야 하는 조항이 없다. 오히려 학부모 위원을 과반수 이상으로 뽑도록 하고 있다. 폭력 발생 이후의 사후 관리를 의무사항으로 언급하는 부분도 없어 징벌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비난도 나온다.

지난해 정년 퇴임한 하인호(63) 전 인천비즈니스고 교사는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열려도 징계 이후 상황은 전혀 관리가 안 되는 실정”이라며 “게시판에 징계를 공고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외부 봉사기관과 협약을 맺어 진정성 있는 반성의 기회를 주는 등 사후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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