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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보수, 변화는 숙명이다

입력
2017.07.0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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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변화 부적응 괴멸 위기 처한 보수정당

근본적 내부 혁신 없이는 명맥유지 어려워

새 출발 바른정당, 보수 재건의 희망 될까

보수 정당이 괴멸의 위기에 처해있다. 하지만 보수 정당의 위기를 보수 전체의 위기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보수가 소멸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기존의 체제와 관행으로부터 혜택을 누려온 기득권층이 건재하고, 신체제가 약속하는 큰 이익보다 현 체제에서 누리고 있는 작은 이익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새로운 체제 건설에 수반되는 고통과 혼란이 싫어 현재에 안주하려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보수적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여 정책화할 수 있는 보수 정당의 재건이다. 보수 정당이 위기에 빠지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돌이킬 수 없는 사회변화를 읽지 못하는 뒤쳐진 시대감각 때문이다(보수 정당의 무능과 부패도 결국 이에 기인하다). 보수는 결코 개혁에 반대하지 않는다. 보수는 사회변화의 속도와 깊이에 비례하는 개혁, 저항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수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겨지는 변화를 수용한다. 부분적인 개혁을 허용함으로써 익숙하고 친근한 제도와 관행을 지킬 수 있다면 그런 개혁에도 우호적이다. 요컨대 보수는 숙명적인 변화에 순응한다.

불가역적인 사회변동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가치와 제도에 매달릴 때 보수는 반동이 된다(반동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시대착오적일 뿐이다). 대부분의 보수층은 시대변화에 무난히 적응한다. 하지만 일부 극단적인 반동세력(=극우)은 과거의 ‘황금시대’와 타락한 현재라는 가상의 이분법에서 심리적인 위안을 찾는다. 때로 영화로웠던 과거를 상징하는 영웅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결집하여, 절대선인 우리 편과 절대악인 상대편으로 양분된 정치 세계의 한 축을 점유하고 있다고 자위함으로써 사회정치적 존재감을 유지한다. 극우에게는 보수의 특성인 적응력, 유연성, 신중함, 절제와 같은 미덕이 없다. 보수가 신성시하는 법률도 상대편을 제압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할 뿐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적에 장애가 되면 가차 없이 내팽개쳐버린다.

지금 한국사회의 자칭 보수 정당(들)은 보수와 반동, 혹은 보수와 극우 사이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있다. 지나가버린 황금시대와 그 때 누렸던 대중적 지지를 아쉬워하며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부적응증을 앓고 있다. 이론상 치유책은 간단하다. 사회변동과 새로운 가치체계에 적응하면 된다(하지만 보수의 생리 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19세기 중후반 영국 보수당을 이끌었던 디즈레일리의 리더십은 보수 정당을 재건하는 데 훌륭한 귀감이 된다. 1860년대 당권을 장악한 디즈레일리는 자유당이 파머스턴 수상의 사망으로 혼란에 빠진 상황을 틈타 보수당의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과감한 개혁정책을 밀어붙였다. 1867년의 선거법 개혁에 더하여 모든 사회계층의 조화로운 공생을 지향하는 ‘일국 보수주의’(One Nation Toryism)와 엘리트 집단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외치며 광범위한 사회개혁을 주도함으로써 보수당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전국적인 대중정당으로 변모시켰다(이런 전통 때문에 영국 보수당은 때로 과감한 혁신을 시도한다).

한국의 보수 정당은 혁명에 가까운 내적 쇄신을 거치지 않는 한 명맥조차 유지하기 어려워 보인다. 혁명적인 변화만큼 보수가 싫어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근본적인 내부 혁신이 필요한 이유는 그 만큼 보수 정당의 의식과 가치체계가 먼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반공이나 (불균등)성장과 같은 과거 지향적 가치들만으로는 새로운 가치관과 다양한 욕구체계를 지닌 신세대의 지지를 끌어낼 수 없다. 시간은 결코 보수 정당 편이 아니다. 보수 정당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과감한 자기쇄신에 나서야만 한다. 진보를 비방 또는 훼방하거나 진보의 실패에 기대어 대중적 지지를 되찾으려는 전략은 보수 정당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 뿐이다. 지난 주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를 표방하며 새로운 출발을 기약한 바른정당이 보수 재건의 희망을 되살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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