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프레드릭 르봐이예

프랑스 자연주의 산과의 프레드릭 르봐이예는 출산 과정에서 신생아가 겪는 고통과 불안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최초로 제기한 의료인이었다. 그의 가설과 주장은, 더러 과격한 것도 있었지만, 분만 직후 신생아를 산모의 품에 안겨주는 '본딩(bonding)' 등을 통해 현대 산과의학이 신생아를 보다 따듯하게 안을 수 있게 했다. 그는 출산에서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태도라고 말했다. 1996년의 그. wikimedia

가임기 여성 10만 명 당 임신ㆍ출산 관련 사망자 숫자로 나타내는 모성사망률은, 세계보건기구(WHO) 집계 1990년 385에서 2015년 216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한국은 21에서 11이 됐다. 영아 1,000명 당 사망자도 1960년 121.9명에서 2015년 31.7명(한국은 80명에서 3명)으로 감소했다. 물론 현재도 임신ㆍ출산 때문에 하루 평균 830명이 목숨을 잃는다. 희생자의 99%는 의료서비스가 부실한 저개발 지역 여성이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출산의 위험으로부터 이만큼이나마 벗어난 건 현대 산과의학 덕이다.

목숨만이 아니다. 산과의학은 출산ㆍ분만 과정을 최대한 쉽게, 빠르게, 덜 고통스럽게 해줄 방편을 찾으며 발전해왔다. 배큠(흡인기)과 포셉(겸자)이, 회음 절개술과 경막외마취 등 적극적인 통증 완화요법이, 제왕절개술이 다 그러자고 고안됐고,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발전해 오늘날 산과 시술의 표준적 과정의 일부가 됐다. 물론 포셉처럼 이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도구나 시술법도 있다.

출산에 의료가 본격적으로 개입한 건 20세기 이후였다. 그리고, 그 추세에 맞서 ‘자연 출산’을 옹호하는 산과의들이 뒤이어 등장했다. 영국의 산과의 그랜틀리 딕-리드(Grantly Dick-Reed)가 ‘자연 출산(Natural Childbirth)’을 자비 출판한 게 1933년이었고, 동료 의사들을 겨냥한 그의 대표작 ‘두려움 없는 출산’을 출간한 건 42년이었다. 1차 대전 군의관이던 그는 전장의 산모들이 의료진 도움 없이 ‘쉽게’ 출산하는 모습에 자극 받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산모가 진통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통증이 없어지고 수축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져 분만 시간이 단축된다”고 주장했다. 자연출산이란 마취제와 유도제, 회음절개, 흡입분만 등 의료 개입을 일절 배제한 질(식)분만ㆍ출산을 의미한다. 그는 대중적으로 유명해졌지만, 왕립의학원 등 학계와 동료들로부터는 배척 당했다.(‘출산 그 놀라운 역사’ 티나 캐시디 지음, 후마니타스)

딕-리드의 가설 중 일부, 예컨대 아이의 울음소리가 산모의 자궁을 수축시키고 과다 출혈을 예방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의 분비를 촉진한다는 건 훗날 과학적으로 확인됐다. 이후 ‘라마즈 분만법’으로 유명해진 프랑스 의사 페르낭 라마즈(Fernand Larmaze, 1891~1957) 등이 각자의 이론과 지침으로 주류 산과의학에 대항하며 대안적 전통과 영향력을 형성해왔다.

60, 70년대 히피 문화와 80년대 이후 여피(Yuppie) 세대의 차별적 감성, 과도한 의료개입에 따른 반성과 피로 등이 자연출산 옹호론의 배경에 있었다. 경험적 성과, 즉 주류 산과병원과 같은 관행적 의료개입 없이도 더 나은 환경에서 더 편하고 안전한 출산이 가능하다는 사회적 신뢰를 점진적으로 획득해온 것도 사실이다. 어쨌건 그들의 존재는 주류 산과의학의 오만한 질주에 제동을 걺으로써 더 신중하고 안전한 출산에 역설적으로 기여했고, 분만실 풍경과 관행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쳐왔다. ‘안아키’류의 극단주의자들이 없지 않지만, 자연출산을 옹호하는 이들 중에 현대 산과의학의 성취를 아예 부정하는 이는 드물다. 21세기 자연출산의 분만실은 대부분 현대 산과의학의 안전그물 위에 차려져 있다.

출산의 고통은 산모뿐 아니라 아이도 겪는 일이라고, 그 고통에 더 험악한 폭력을 가하는 일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르봐이예는 주장했다. 그에게 산모의 안전과 아이의 권리는 결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었다. 책 '폭력 없는 출산'에 수록된 사진.

프랑스 자연주의 산과 의사 프레드릭 르봐이예(Frederick Reboyer)는 출산 과정에서 겪는 아이의 고통, 아이의 권리를 대변한 최초의 의사로 꼽힌다. 그는 74년 저서 ‘폭력 없는 탄생(Birth without Violence)’에서 수술실처럼 밝은 분만실 조명과 소음이 갓 자궁에서 나온 아이에게는 감각적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이런저런 검사와 위생을 위해 신생아를 산모에게서 격리시키는 관행, 9개월간 영양과 산소를 공급해온 탯줄의 박동이 채 멎기도 전에 서둘러 자르는 관행, 폐호흡 촉진 등을 위해 아이를 거꾸로 치켜들고 흔들거나 엉덩이를 때리는 관행 등을 그는 모두 폭력이라고 했다.

그는 산모와 의사 양자 중심의 분만 과정에서 출산의 트로피처럼 대상화돼 온 아이가 실은 세상 밖으로 나온 실질적인 주인공임을 부각했다. 그는 프로이트의 세례를 입은 세대였다. 아이도 감정이 있고 통증을 느낀다고, 출산의 원형적 트라우마가 무의식 속에 남아 이후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의 저런 주장들은, 프로이트 이론이 대부분 그렇듯 이후 수많은 논문과 저술에도 불구하고,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는 없다. 그의 제안은, 국가ㆍ지역에 따라 사정은 다르지만, 유럽과 미국 등 다수의 병원에서 점전적으로 대부분 수용됐다. 프레드릭 르봐이예가 5월 25일 별세했다. 향년 98세.

그는 1차대전이 끝나가던 1918년 11월 1일 프랑스 파리의 한 유대인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화가였던 어머니는 예정일을 한참 넘겨 난산 끝에 그를 출산했다고 한다. 그는 50년대 정신분석을 통해 출산의 기억이 되살아났다고, “차가운 겸자의 감촉을 기억한다”고 말했다.(people, 1976.3.1) 그는 셰익스피어에 심취한 문학청년으로 성장했다.

르봐이예는 파리대학 의학부를 나와, 40년대 중반부터 74년까지 산과의사로 일한 동안 약 1만여 명의 아이를 받았다. 그 중 9,000여 건이 일반적인 산과 방식에 따른 거였다.(nyt, 17.6.22) 그의 말처럼 출생의 트라우마가 계기였는지, 산과 병동에서 보고 겪는 바가 못마땅했던지, 르봐이예는 50년대 말부터 자신(산과병원)의 역할을 회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오스트리아 출신 정신분석학자 오토 랑크(Otto Rank, 1884~1939)의 ‘탄생의 트라우마’(1924)같은 책에 이끌리던 때이기도 했고, 인도 등지를 여행하며 요가와 동양철학에 관심을 쏟던 시기이기도 했다.(가디언, 17.6.15) 딕-리드처럼 인도에서 그도, 유럽의 병원들과 다를 바 없는 시설의 부유층 산모들이 조산사나 가족의 도움으로 집에서 출산하는 가난한 산모들보다 훨씬 고생하며 아이를 낳더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분만실 진료를 중단하고 야간 산과 진료만 제한적으로 하면서 약 7년간 자연출산을 연구했고, 개인 병원을 열어 자신의 방법으로 출산 진료를 시작했다. 자궁 속처럼 덜 밝고 조용한 분만실에서 최소한의 의료 개입으로 출산을 돕고, 별 문제가 없는 한 아이를 산모 품에 한동안 두어 서로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듣게 하고, 자궁의 움찔거림 같은 가벼운 마사지를 해주고, 따듯한 물에 목욕을 시켜 양수 속에 있던 감각을 느끼게 하고…. ‘르봐이예 출산법’이라고 알려진 그 방법으로 그는 약 1,000명의 아이를 받았고, 72년 아동심리학자 대니얼 래퍼포트(Danielle Rapoport)에게 그들 1~3세 아이들의 발달심리 연구를 의뢰했다. 래퍼포트는 120명을 표본조사해 그들이 정신운동성과 관계형성 등 면에서 차별적으로 긍정적이더라는 결론을 얻었다. 책 ‘폭력 없는 탄생’과 2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상 ‘Naissance(Birth)’이 74년 그렇게 세상에 나왔고, 래퍼포트도 75년 파리 심리학회저널에 자신의 논문을 발표했다. (societe-histoire-naissance.fr)

“아이들이 과연 태어나는 걸 기뻐할까요?”라는 질문과 함께 문답 형식으로 시작하는 그의 책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물론 학계는 거칠게 비판하거나 무시했고 페미니스트들도 그의 ‘어둠 속 출산’이 산모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성토했다. 하지만 독자들, 특히 여성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그의 책은 2년 만에 9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고, 미국에서는 페이퍼백을 구하기 힘들 지경이었다고 76년 3월 ‘피플’지는 소개했다. 그는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하버드, UCLA, 매사추세츠 등지의 대학과 연구소, 병원에서 잇달아 초청 강연을 하며 ‘산과계의 랠프 네이더(60년대 소비자운동을 선도한 시민운동가)’ 혹은 ‘의료계의 로드 맥컨(가수)’이라 불리기도 했다. 로드 맥컨의 창법처럼, 혹은 인도의 성자들처럼, 그는 말도 행동도 느리고 조용조용했다고 한다.

신생아의 다리를 들고 선 70년대 프랑스 산과병원 분만실. 신생아의 폐호흡을 촉진하기 위해 시행하던 저 방법도 우선 효과가 의문시된 데다 신생아 골절 등 여러 부작용 때문에 이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책에서.

주류 산과계의 비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언제 다급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분만실의 조도를 낮추라는 건 무모하다, 신생아 목욕은 천연 오일 성분을 씻겨내 감염 위험을 높인다 등등. 그렇게 점잖았다는 르봐이예가 “위생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팔팔 끓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쏘아붙였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책을 내고 얼마 뒤 병원 문을 닫았다. 강연 때문에 바쁘기도 했겠지만, 그는 “나 자신의 위생(sanity)을 위해서”라고말했다. “오늘날의 관행에 대한 내 나름의 저항이다. 우리 사회(산과 의료현실)는 그릇된 길로 가고 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그 흐름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했다.”(people, 위 기사) 이후 그는 작가 겸 사진가로 자신을 소개하며 ‘박사(Dr)’라는 호칭보다 ‘미스터(Mr)’라는 호칭을 선호했다. 사람들이 ‘박사’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한다고 말한 것도, 그가 아는 박사들의 몽매함에 대한 그 나름의 성토였을 것이다. 그는 남은 생을 자연 출산 전도사 겸 작가로 살며, 신생아 마사지 기법을 소개한 ‘Loving Hands’(76), 산통을 경감하고 출산을 돕는 산모 요가서 ‘Inner Beauty, Inner Light’(78) 등을 출간했다.

2011년 6월 가디언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르봐이예도 고위험 출산의 경우 제왕절개 등 의료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과장된 설득으로 외과적 출산을 선택하는 산모들이 여전히 많다고도 했다. “(의사들이 말하는) 더 안전하고, 더 쉽고, 덜 아픈 출산은 일종의 환상(illusion)이다.(…) 누구도 호흡을 대신해줄 수 없고, 먹고 자는 걸 대신해줄 수 없듯이, 출산도 당신 스스로 해내야 한다.(…) 임신부라면 누구나 겁을 먹기 마련이다. 그 두려움을 인정하고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출산이라는 육체적 도전에 제대로 임할 수 있다.”

지난 2월 미국국립보건원 저널에 소개된 국가별 제왕절개 동향(1990~2014)에 따르면, 제왕절개 분만율은 2014년 현재 121개국 평균 19.1%로 15년 전에 비해 6.7% 증가했다. 라틴 아메라카와 카리브해 지역의 제왕절개 분만율이 40.5%로 최고였고, 북미가 32.3%, 유럽은 25%, 아시아는 19.2%, 아프리카는 7.3%였다. 2015년 한국의 제왕절개 분만율은 40.2%(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였다. 호주 산과학자 크리스틴 로버츠(Christine Roberts) 등은 2015년 4월 의학저널 랜싯에 기고한 논문에서 “아프리카 같은 빈곤국은 제왕절개 수술의 부족과 부적절함이, 선진국은 의료적 효과가 의문시되는 과도한 수술이 문제”라고 썼다. 브라질 보건 당국은 2014년 제왕절개 분만율이 52%에 달하자 2015년 1월 제왕절개 수술의 보험 적용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브라질 당국은 국립보건국(ANS) 통계를 인용하며 “제왕절개 수술은 (질식 분만에 비해) 모성사망률이 3배 가량 높고, 신생아 호흡장애 가능성도 120% 높다. 질식분만이 성감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미신일 뿐”이라고 밝혔다.(ibtimes.co.uk)

2011년, 93세의 르봐이예가 가디언 기자에게 “고통을 덜기 위해 수술을 선택하는 것은 비겁한 짓(chickening-out)”이라고, “생명을 위협할 만한 문제가 없는 한 의료 개입은 출산의 적”이라고 사뭇 격하게 말한 건 그런 현실에 대한 분노도 작용했을 것이다.

통계 자료는 없지만 서구에서는 거의 무효하거나 부작용이 크다는 이유로 시행하는 곳이 많지 않다는 분만 전 회음 절개와 제모, 관장 등이 한국서는 여전히 공식처럼 이뤄지고 있다. WHO가 제왕절개 출산의 적정 비율로 전체 출산의 10~15%를 제시하며 “제왕절개 분만율이 10%를 넘어서면 산모와 신생아의 생명ㆍ건강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고 밝힌 게 1985년이었다. 한국의 의사들이 설명하는 비대한 제왕절개 분만율의 사정은 꽤 복잡하다. 보험 수가의 문제, 의료 시비와 법적ㆍ사회적 책임을 묻는 방식의 문제, 서구 여성과의 체형 차이, 사주를 중시하는 문화 등등. 일본의 2011년 제왕절개 분만율은 19.2%(한국은 36.4%)였다.

‘출산, 그 놀라운 역사’의 저자 티나 캐시디는 자연 출산을 희망했지만 의사의 조언에 따라 2004년 첫 아이를 제왕절개로 분만했다. 그 경험을 토대로 그는 출산의 다양한 면모를 조사한 뒤 2년 뒤 저 책을 냈고, 의기양양 자연 출산(VBAC)으로 셋째를 낳았다. ‘출산 잔혹사’라 해도 될 만큼 시공간적 다양한 사례들이 망라된 그의 책에는, 무지가 빚은 과거의 참극뿐 아니라 현대 산과의학이 낳은 비극들도 적잖이 담겨 있다. 그리고, 르봐이예의 말처럼, 캐시디도 인류가 “통증을 최소화하며, 기쁜 마음으로,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출산하는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머리말에 썼다. 르봐이예의 인도체험처럼, 제한적인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아예 무시하는 것도 불합리한 일일 것이다.

르봐이예는 분만실 태아가 생명체일 뿐 아니라 감각과 기억의 주체일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현대 산과의학이 신생아의 존재를 보다 따듯하게 품게 했다. 그를 성토하던 프랑스 산과학계는, 78년 ‘GRENN(le Groupe de recherches et d’études sur le nouveau-né )이라는 출산 및 신생아 연구단체를 설립해 89년까지 운영했다. ‘본딩(bonding, 신생아를 산모의 품에 안기는 일)’ 등 르봐이예의 제언들은 현대 산과병동의 풍경을 바꾸었다고 주요 외신들은 평가했다.

76년 인터뷰에서 그는 “르봐이예 출산법이란 말은 듣기 싫다.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태도다”라고 말했다. 두 가치는 하지만, 자연출산과 현대산과의학의 불화처럼 맞서는 듯 하면서도 실은 공존해왔다. 그 공존의 영역을 넓혀가는 게 산과뿐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모든 의료인들의 사명일 것이다. 그건, 르봐이예의 말처럼, 태도에서 비롯될 것이다.

최윤필 기자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