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삶을 바꾸는 순간이 있습니다. 유명 문화계 인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들의 인생에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남긴 작품 또는 예술인을 소개합니다.
신하균은 “장진 감독과 박찬욱 감독이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보다 더 평범할 수 없을 것 같은 학창 시절이었다. 어른들이 나쁜 짓 하지 말고 평범하게 살라고 하시니 그렇게 살았다. 그 또래 남학생이 가질 법한 호기심도 별로 없었는지, 술 담배는커녕 당구장 한 번 안 가봤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도 목표도 없었다. 배우? 상상조차 안 해봤다.

1992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진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나?

불현듯 극장이 떠올랐다. 그 공간의 적막한 분위기를 좋아했다. 영화를 볼 땐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기분이었다.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극장에 가곤 했다. 그때만 해도 단관 개봉하던 시절이었다. 신문 광고에 실린 극장 시간표를 꼼꼼히 챙겨두던 일도,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올라 극장으로 달려가던 일도, 티켓부스 앞에 줄을 서 기다리면서 혹시 표가 매진될까 가슴 졸이던 일도, 그 모든 것이 설레고 행복했다.

대학시절, 선배 장진 창작극 출연
첫 영화도 장진의 ‘기막힌 사내들’
장면들 치밀한 계산으로 연기지도
배우로서 재능, 가능성 이끌어 줘

당시 최고 전성기였던 홍콩 영화는 빠짐없이 본 것 같다. ‘백 투 더 퓨처’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도 재미있게 봤다. 비디오도 많이 빌려봤는데 주로 불법 유통된 해적판이거나 B급 영화들이었다. ‘반지의 제왕’ 피터 잭슨 감독의 초기작으로 독창적인 유머와 키치적 정서가 빛났던 ‘고무인간의 최후’와 ‘데드 얼라이브’는 지금도 최고의 명작으로 꼽는다. 분식집 벽에 걸려 있던 제임스 딘의 사진을 보고 그에게 반해서 영화도 다 찾아봤다.

아, 나도 좋아하는 게 있었구나. 내가 영화광이란 사실을 처음 자각했다. 벼락 맞은듯 정신이 번쩍 들면서 가슴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영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게 적성과 재능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선생님께 ‘선전포고’를 했다. ‘이 녀석이 무슨 바람이 들었나’ 하시고는 당연히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셨다.

내성적인 성격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무작정 서울예대에 지원을 해버렸다. 원서를 쓰러 갔더니 연극과, 영화과, 방송연예과로 전공이 나뉘어 있었다. 방송연예과에 지원한 건 다른 전공에 비해 실기 시험 비중이 낮아서였다. 어차피 예술대학이니까 학교에서 다 배울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순진해서 용감했다.

그때까지 연기는 흉내도 내 본 적 없었다. 실기 시험장에서 사극 대본을 받아 들고는 벌벌 떨었다. 핀 조명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혼신을 다했다. 맞은편 심사하던 교수님 몇 분이 킥킥 웃으셨다. 합격 통보를 받았다.

신하균은 “장진 감독을 만난 이후 연극에 푹 빠졌다”고 했다. 두 사람은 대학로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영화 데뷔 이후까지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신하균은 장진 감독의 연극 ‘웰컴 투 동막골’에 출연했고 이후 장 감독이 연극을 토대로 제작한 동명 영화에도 출연했다.

대학에선 연출, 카메라, 조명, 시나리오 작법 등을 두루 공부했다. 연기도 한번 경험해봐야겠다 싶었는데 연극과가 아니면 극장 무대에 서기가 어려웠던 터라 마당극 동아리에 들어갔다. 거기서 만난 사람이 89학번 선배 장진 감독이다. 1993년 겨울 장 감독이 제대해 학교로 돌아왔다. 정재영, 황정민 선배도 그 즈음 복학했다. 장 감독과 창작극 ‘폭탄 투하 중’을 무대에 올렸다. 당시 사회적 이슈였던 농산물 시장 개방 문제를 다뤘는데 시골 노부부의 세 아들 중 둘째 역을 맡았다. 무대가 주는 재미가 엄청 났다. 짜릿하고 황홀하고 설렜다. 객석에서 즉각적으로 쏟아지는 반응들이 나를 흥분시켰다.

그런 감흥을 간직한 채 군대에 갔다. 훈련 받으면서도 연극만 생각했다. 제대한 뒤 대학로에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했다. 장 감독과 ‘매직 타임’ ‘허탕’ ‘택시 드리벌’ ‘박수 칠 때 떠나라’ ‘웰컴 투 동막골’ 등을 무대에 올렸다.

장 감독을 만나면서 비로소 연기의 참맛을 알게 됐다. 장 감독은 아주 뛰어난 창작자일 뿐 아니라 배우를 잘 이해하는 연출자다. 전체적인 그림 안에서 배우의 역할을 치밀하게 계산해 연기 지도를 했다.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

장 감독이 영화에 데뷔할 때 나도 영화에 데뷔했다. ‘기막힌 사내들’은 우리 두 사람의 데뷔작이다. 영화의 꿈도 장 감독 덕분에 이뤄진 셈이다. ‘킬러들의 수다’ ‘묻지마 패밀리’ ‘화성으로 간 사나이’ ‘웰컴 투 동막골’ ‘박수칠 때 떠나라’ ‘퀴즈왕’ 등 내 필모그래피의 큰 부분이 장 감독이 연출하거나 시나리오를 쓴 작품들이다. 장 감독을 만나지 않았다면 오늘의 신하균이 없었거나 혹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영화를 해 오면서 또 하나의 소중한 인연도 만났다. 박찬욱 감독이다. 장 감독이 배우로서 내 재능과 가능성을 발견해줬다면, 박 감독은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준 분이다. 박 감독과 작업하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끊임없이 샘솟았다. 그렇게 묻고 답하고 대화하면서 영화 예술이 무엇인지 배웠다. 아직도 그 분은 내게 선생님 같다. 전혀 권위적이지 않고 가르치려 들지 않는데도 나 스스로 학생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간다.

박찬욱은 영화인 정체성 심어 줘
‘공동경비구역JSA’ 작업서 인연
가르치려 않는데 절로 학생 돼
그의 영화세계 동참 자체가 소중

박 감독의 첫 인상도 잊을 수 없다. ‘공동경비구역 JSA’ 제작사인 명필름에서였다. 지금은 거장의 풍모가 느껴지지만 당시엔 콧수염을 기른 얼굴이었다. 미팅을 가진 이후엔 술을 마셨던 것 같다. 송강호 선배도 함께였다. 두 분의 대화 주제는 오로지 ‘영화’였다. 작업이 풀리지 않을 때 이분들은 이렇게 하는구나. 엿듣는 것만으로도 수업이 됐다. 특히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진정성에 많이 감화됐다. 이후에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박쥐’ 등에도 출연했다. 박 감독의 영화라면 배역의 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영화 세계에 동참한다는 사실이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나를 키운 8할’은 단언컨대 장 감독과 박 감독이다.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배우가 돼 두 분과 영화 작업을 해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마음을 알게 될 거다.

그런데 이 글의 담당 기자가 자꾸만 짓궂게 묻는다. 장 감독과 박 감독이 동시에 출연 제안을 하면 누구를 택하겠냐고. 둘 다 하면 안 될까? 너무 욕심일까? 그래도 한번 기다려 보련다. 두 분의 시나리오를 놓고 행복한 고민에 빠지는 그 순간을 말이다.

<배우 신하균의 구술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정리=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신하균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놀랍도록 독창적”이라며 “언제든 불러만 주면 촬영장으로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찬욱 감독과 신하균이 함께 호흡한 첫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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