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주거환경을 고민하다 ‘하우스 비전’ 서울 상륙

일본 건축가 하세가와 고가 숙박공유플랫폼 에어비앤비와 함께 만든 요시노 삼나무의 집. 평소엔 주민회관으로 쓰고 외지에서 손님이 올 땐 자고 갈 수 있게 방을 만들었다. 미래 주거환경을 제시하는 일본 하우스비전의 2016년 박람회를 통해 선보였다. Yoshinocedarhouse.com
포럼으로 출발… 日사례 등 발표
개별 공간 가지면서 다양한 연결
송파 마이크로하우징도 소개해
방 2, 3개로 정형화된 집 구조
획기적 변화 앞두고 전문가 논의
내년 10월 박람회서 실물로 확인

지금으로부터 100년 뒤, 우리는 어떤 집에서 살게 될까. 1인가구의 증가, 내 집 짓기 열풍, 폭등하는 전세 보증금과 곧 허물어질 운명에 처한 다세대주택들. 지금 한국 주거환경을 둘러싼 수많은 변수들이 100년 뒤엔 어떤 형태로 우리의 공간을 수놓을까.

미래의 이상적인 주거에 대해 고민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일본의 ‘하우스 비전’ 프로젝트가 서울에 당도했다. 서울디자인재단은 2월 일본 하우스비전을 주최하는 니폰디자인센터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지난 27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공개 포럼을 통해 ‘하우스비전 서울’의 출발을 알렸다. ‘무지개떡 건축론’으로 알려진 황두진 건축가를 비롯해 건축, 디자이너, 전시기획자 27명이 참여해 서울의 미래 주거상을 고민한다.

2011년 첫 세미나로 시작해 심포지엄, 책 출간 등의 연구 활동을 이어온 일본 하우스비전은 2013년 ‘앞으로의 집’ 2016년 ‘코-디비주얼(Co-Dividual)’을 주제로 도쿄에서 두 차례의 건축 박람회를 열었다. 건축가와 기업이 손을 잡고 미래 주거의 형태를 실물로 보여준 이 전시회는, 줄을 서지 않으면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람객이 몰리며 성황을 이뤘다.

2016년 주제였던 ‘코-디비주얼’은 함께란 의미의 ‘Co’와 각각이란 의미의 ‘Individual’을 합친 조어다. 일본 건축가 하세가와 고는 세계 최대 숙박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와 손잡고 ‘요시노 삼나무의 집’을 선보였다. 나라현(奈良縣) 요시노(吉野) 마을은 예부터 삼나무 벌목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곳이다. 요시노산은 한때 전국에서 손꼽히는 삼나무 생산지였으나 저렴한 잡목이 그를 대체하면서 마을 전체의 활기도 함께 사그라졌다. 젊은층이 도시로 빠져나가 남은 주민의 평균 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새로운 생계수단을 찾는 게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은, 비단 요시노 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세가와는 요시노산에서 벌목한 삼나무를 사용해 일종의 커뮤니티 하우스를 설계했다. 집 앞에 흐르는 하천을 바라보는 곳에 긴 데크를 설치해 평소엔 주민들이 마을 회관처럼 사용하고, 외지에서 사람이 오면 묵어갈 수 있도록 내부에 객실 2개를 갖췄다. 호스트와 게스트 간의 ‘자연스럽지만 끈끈하지 않은’ 만남을 유도하는 이 집은 착공부터 완공까지 요시노 마을의 장인들이 전통 공법을 이용해 손수 지었다. 매해 봄 요시노산 인근에 만개하는 벚꽃을 보려고 온 수만 명의 관광객이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만끽하고 돌아갈 수 있는 장소이자, 전통 기술의 가치를 일깨우는 상징적 공간이다.

‘요시노 삼나무의 집’의 객실. 3인용, 4인용 객실 두 개를 갖추고 있다. 봄에 벚꽃을 보러 온 관광객들에게 지역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Yoshinocedarhouse.com
요시노 삼나무의 집 바깥에 설치된 데크. 평소엔 주민들이 걸터앉아 마을 회관처럼 이용한다. 이곳을 통해 외지인과 지역 주민들 간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진다. Yoshinocedarhouse.com

고밀도, 고령화, 개인화 등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도 일본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27일 포럼에서는 일본 하우스비전 대표인 사다오 쯔치야를 비롯해 하세가와, 나가야마 유코 등이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고, 이어 한국의 최욱, 조성욱, 박진희, 조홍래 건축가가 자신이 설계한 작업물을 통해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시했다.

박진희 건축가가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에 설계한 마이크로하우징은 변화하는 가족 형태에 발맞춘 가변형 공동주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박 건축가는 1995년 약 30%였던 핵가족이 2035년엔 10% 미만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통계청 자료(2010년)를 제시한 뒤 “방 2개, 3개로 정형화된 기존의 주거형태가 1인가구, 독거노인, 이혼과 재혼의 증가로 활발하게 변화하는 가족 형태를 수용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마이크로하우징은 1인가구 여덟 세대가 함께 사는 셰어하우스다. 지하엔 카페, 2층에 갤러리를 갖춘 이 곳의 방 크기는 12㎡(약 4평). 도시형생활주택의 법정 최소면적(2013년 6월 14㎡로 조정)이다. 거주자들끼리 거실에서 얼굴 마주치는 게 필수인 기존의 셰어하우스들과 달리, 4평짜리 방 안에 주방시설과 욕실을 모두 설치해 거주자의 성향에 따라 칩거와 외출을 선택할 수 있다. 밖으로 나오면 상대적으로 널찍한 발코니가 있다. 각 방을 다리처럼 연결하는 발코니에서 거주자들은 맥주를 한 잔 하거나 작은 식탁을 놓고 옆방 사람과 식사를 할 수도 있다.

각 방은 간단한 보수를 통해 확장이 가능하다. 혼자 살다가 결혼을 했을 경우 옆 방을 빌려서 집을 넓힐 수 있는 것. 박진희 소장은 “소유하지 않지만 자신의 공간으로 느낄 수 있는” 공용공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지금은 이런 유형의 집이 다소 급진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비혼, 이혼, 고령화 등 사회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주거 형태를 미리 제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희 건축가가 설계한 송파 마이크로하우징. 숙식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한 뼘짜리 개인 공간과 상대적으로 널찍한 공용공간을 갖춰 가족 형태 변화에 대비했다. SSD아키텍처 제공
송파 마이크로하우징 전경. 스틸을 꼬아 만든 독특한 외관에 지하엔 카페, 2층엔 갤러리가 있어 거주자들이 애착을 가질 수 있게 했다. SSD아키텍처 제공

아파트에 살던 조성욱 건축가는 층간 소음과 치솟는 전세 보증금을 견디지 못하고 친구와 돈을 합쳐 판교에 지은 자신의 집 ‘무이동’을 소개했다. 쌍둥이 같은 두 채의 집 사이에 계단실을 널찍하게 배치해 층간소음 뿐 아니라 ‘측간소음’까지 제거하고, 평소엔 친구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는 공용공간으로 활용한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 비해 바닥면적은 줄었지만 지하실, 다락방, 마당, 옥상 등 다양한 층위의 공간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후 건축가에겐 무이동과 비슷한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가 쏟아졌다. 조성욱 건축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의 질을 집의 면적과 연관시키지만 집은 사이즈가 아니다”라며 “내가 아파트를 탈출한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숨을 쉴 수 있는, 녹지를 즐길 수 있는 집의 가치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우스비전은 2011년 중국을 시작으로 2013년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2014년 태국, 대만 등 아시아 6개국으로 퍼졌다. 이날 공식적으로 출발을 선포한 ‘하우스비전 서울’은 7~10월 내부 세미나를 거쳐 11월 28일 공개 발표회를 열고 선정된 주제에 맞는 연사를 초빙해 강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를 책으로 출간하는 것은 내년 3월경, 이를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박람회는 내년 10월경으로 예상하고 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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