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식이두마리치킨 전 회장의 여직원 성추행 사건 목격자가 한 라디오 인터뷰에 응했다. 사건 당시 피해 여직원은 호텔 로비에서 앞서가던 여성들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 여성들은 도망치는 피해자를 쫓으려는 가해자를 피해자에게서 떼어 내고 피해자의 경찰 신고까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사건이 보도되고 현장 CCTV가 공개된 이후 목격자들은 심각한 악플에 시달려야만 했다. 피해자와 목격자들을 하나로 묶어 회장의 돈을 뜯어내려는 사기단이 아니냐는 의심으로부터 목격자들 개인의 신상에 대한 근거 없는 추측까지, 추려낸 것만 A4용지 100장이 넘는 분량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악플의 분량이 아니다. 라디오 진행자가 “만약 한 달 전 그 순간으로 다시 시간을 돌린다면 똑같이 행동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목격자는 잠시의 머뭇거림 뒤에 대답한다. “했을 거는 같아요.”

최근에 이 대답만큼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없었다. 머뭇거리는 찰나, 목격자의 머릿속에는 자신과 친구들, 피해자뿐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쏟아진 어마어마한 양의 악플과 이로 인한 상처가 지나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똑같이 지나가게 된다고 해도 목격자는 피해자를 돕겠다고 말한다. 곤란을 겪는 여성에게 도움을 줘도 감사할 줄 모르니 돕지 말자거나, 위험에 처한 아이를 도와준 노인에게 아이의 부모가 구조 과정에서 입은 상처의 치료비를 요구했다거나 하는 인간 이하의 사연들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나라에 살며, 그 인터넷 안에서 몇 개의 단어와 몇 줄의 글로 자신의 인격이 수도 없이 찔리는 일을 경험하고서도 말이다. 바로 피해자 여성의 눈에서 ‘절박함’을 봤기 때문이다.

이 절박함은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늦은 밤 취객에게 위협받는 한 여성의 손을 붙잡고 역이 있는 곳까지 함께 도망간 적이 있다. 지하철 열차 안에서 잠든 여성 승객의 몸을 몰래 만지려는 남자를 발견하고 큰 소리를 내 여성 승객을 깨운 일도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범죄가 만연한 이 나라에서, 작은 손짓과 입 모양, 눈빛으로 모르는 여성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또 조심스럽게 그 도움에 응답하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지 않다. 지난해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이후 친구가 화장실에 갈 때면 보초를 서며 지켜 주던 여성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이 나라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가 만들고 미디어가 유포하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억지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사회의 약자로 동지의식을 가지며 할 수 있는 한 서로를 도우려는 여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이는 비단 일상생활 만의 문제가 아니다.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여성 비하와 관련한 논란에 여당의 남성 의원들이 침묵할 때, 쏟아질 비난을 각오하고 목소리를 낸 것은 여당의 여성 의원들이다. 여성 의원들 역시 그 비하의 당사자이며, 강간 문화가 아무렇지 않게 용인되는 한국 사회에서 수많은 남자와 함께 일하고 있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안다. 술자리에서조차 해서는 안 되는 말을 책에 버젓이 실어 출판하고도 어떤 남자는 대선 후보가 되고, 어떤 남자는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이라는 것을. ‘여교사’이기 때문에 수업 중에 남학생들의 집단 자위행위를 경험해야 하고, 이 사건에 아무리 분개해도 상당수의 남성들이 ‘한 때의 치기 어린 행위’라며 남학생들을 옹호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을 대부분의 여성들은 안다. 이런 사회에 살며 여성이라 받게 되는 차별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악의, 예상치 못한 위험에 노출될 때마다 나는 곁에 있는 여자들의 손을 붙잡을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언제든 기꺼이 도울 것을 다짐하면서. 낯설고 또 익숙한 얼굴을 한 여자들의 도움으로, 오늘도 무사하다. 여자는, 여자를 돕는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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