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구장 먹거리 열전

치맥은 저리 가라… 9개 구장 별미 ‘라인업’
25일 인천 남구 SK행복드림구장을 찾은 야구팬들이 관중석 내 '바비큐존'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형준 기자

1990년대까지 야구장 대표 먹거리는 마른 오징어에 소주였다. 초창기만 해도 야구장 대세는 ‘아저씨’들이었다. 흥에, 술에 취한 당시 ‘아재’들이 다른 관중과 시비가 붙는 흔한 모습은 ‘그 때는 그랬던’ 시절이다.

2000년대 야구장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 가족·연인 단위 관중이 늘면서 아재들이 벌이던 술판은 조금씩 사라져갔다. 독한 소주는 보다 깔끔한 맥주로 바뀌었고, 안주로는 ‘치느님(치킨)’이 등장했다. ‘치맥(치킨에 맥주)’이 야구장을 호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소하고, 배도 부른’ 치킨은, 저녁을 먹기에 애매한 시간대(오후 6시에서 7시 사이)에 야구를 보러 가는 팬들 허기진 뱃속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한 타석마다 춤을 추는 희로애락을 맨 정신으로 보기에 허전한 야구팬들의 맥주 안주로서도 안성맞춤이었다. “‘야구장 가는 날’이 ‘치킨 먹는 날’”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치느님’의 영광도 그리 길지 못했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2002년)을 필두로 야구장이 ‘스포엔터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거듭나면서, 치킨 대세론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 등 신축 구장이 생겨나면서 외야석에 텐트가 등장했고, 급기야 삼겹살을 구워먹는 바비큐장도 관중석 일부를 차지했다. 게다가 직장인 여성과 대학생 관중이 급증하면서, 야구장이 응원·시구는 물론 먹거리까지 즐기는 오감만족 공간으로 탈바꿈해나갔고, 치느님 레임덕은 가속됐다.

지금 야구장 먹거리를 장악하고 있는 ‘패왕’은 누구일까. 김도균 한국스포츠산업협회장은 “지역별, 구단별 특성에 맞는 차별화 전략이 도드라지고 있다”고 했다. 에둘러 말하지만, 결론은 ‘춘추전국시대’라는 얘기다. 그래서 알아봤다. 치맥 천하가 저문 야구장엔 어떤 메뉴들이 자리잡고 있을까. 구장별 ‘요즘 대세’ 먹거리는 무엇일까.

서울 고척돔에서 판매중인 뉴욕버거
서울 고척돔-뉴욕버거 ‘돔구장 세트’

지난해부터 프로야구 팬들을 맞은 서울 구로구 고척돔은 중화요리전문점, 주먹밥 매장 등이 들어서며 ‘제대로 된 식사’가 가능한 구장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 가운데서도 퇴근 후 경기장을 찾은 직장인들에게 인기 높은 메뉴는 ‘뉴욕버거’의 ‘돔구장세트’다. 햄버거와 음료를 각각 2개씩 고를 수 있고, 감자 및 양파튀김도 함께 제공돼 두 명이 1만원대 중반 가격으로 든든하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다.

서울 잠실야구장의 불족발
서울 잠실야구장-불족발, 불곱창

한 지붕 아래 두 팀을 품고 있는 서울 잠실야구장에선 요즘 ‘매운맛’ 열풍이다. 다른 구장에선 찾기 어려운 불족발, 불곱창, 오돌뼈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3곳이나 입점해 인기몰이 중이다. 한 달에 두세 번 꼴로 야구장을 찾는다는 두산 팬 이모(31)씨는 “한 그릇에 1만원 안팎 가격이라 부담도 적다”라며 “맥주 안주로도 훌륭하지만, 경기장 내에 위치한 ‘공씨네주먹밥’의 주먹밥을 곁들이면 괜찮은 한끼 식사가 된다”고 귀띔했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의 오레오 츄러스
인천 SK행복드림구장-오레오 츄러스

‘먹거리 천국’으로 유명한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엔 최근 ‘복병 메뉴’가 등장했다. 초콜릿향 츄러스에 아이스크림을 곁들일 수 있는 ‘오레오 츄러스’가 주인공. 5,000원 이하 메뉴로 구성된 갖은 디저트가 지난 23일부터 판매되기 시작해 주말 동안 야구팬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이 밖에 SK와이번스 트레이 힐만(54) 감독 이름을 딴 ‘힐만 스테이크버거’, 인천 명물 ‘신포 닭강정’도 인기메뉴.

대구 라이온즈파크의 로라방앗간 만루홈런세트. 독자 제공
대구 라이온즈파크-로라방앗간 만루홈런세트

대구 라이온즈파크엔 대봉동 ‘김광석거리’에 있는 분식 맛집 ‘로라방앗간’이 입점했다. 떡볶이와 튀김, 치즈떡도그, 여기에 대구 명물 납작만두까지 맛볼 수 있는 1만2,000원짜리 ‘만루홈런세트’는 홈 팬들은 물론 원정 팬들에게도 인기만점. 지난해 개장한 이 구장엔 ‘먹자 골목(food street)’이 내야 통로 쪽에 마련돼 있어 새롭고 편리하다. 이 곳에선 피자, 핫도그, 수제맥주 등 각종 별미들이 판매되고 있다.

마산 야구장의 민우에게바나나. NC다이노스 제공
마산 야구장-민우에게 바나나

마산 야구장에선 바나나를 사랑한다는 NC다이노스 내야수 박민우(24) 이름을 딴 생과일주스 ‘민우에게 바나나’가 단연 인기다. 관중들이 바나나주스 맛에 한 번, 박민우 선수에게도 한 번 반했으면 하는 구단 관계자의 간절한 바람이 스민 메뉴다. 이 관계자는 “주말엔 줄을 서야만 맛볼 수 있을 정도”라며 “날씨가 더워질수록 인기는 더 뜨거워 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1리터 대용량 크기에 가격은 5,000원. 시중 생과일주스보다도 저렴하다.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의 농심가락 떡볶이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농심가락 떡볶이

한화 골수팬 유모(30)씨는 “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자주 찾는 팬들은 가장 먼저 3루 쪽에 있는 ‘농심가락’부터 찾는다”고 했다. 우동 라면 등 기본 메뉴도 일품인데, 그 중에서도 매콤한 떡볶이 맛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단다. 그는 “뭘 섞었는지 모르겠다는 비법양념에 굵직한 떡과 어묵이 버무려졌다”며 “구장 대표 먹거리였던 ‘야신고로케’는 떠났지만, 큐브스테이크, 츄러스 등 이색 메뉴가 그 자리를 훌륭히 메우고 있다”고 했다.

부산 사직야구장의 즉석구이 삼겹살. 롯데자이언츠 제공
부산 사직야구장-즉석구이 삼겹살

부산 사직야구장 한 켠에선 항상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즉석구이 삼겹살’ 메뉴가 쉴 새 없이 팔리기 때문. 맛도 맛이지만 3인분 남짓 삼겹살을 2만원에 파니, 주머니 얇은 청소년과 대학생 등 젊은 층에게 특히 인기란다. 롯데 팬 장모(29)씨는 “고기가 천천히 식더라니, 용기 아래에 핫팩이 깔려있었다”며 퉁명스럽던 사장님의 반전 센스에 찬사를 보냈다. 그는 “’식어도 맛있는’ 2만5,000원짜리 족발도 추천메뉴”라고 했다.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의 고추장삼겹살. KIA타이거즈 제공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고추장삼겹살

부산에 즉석구이 삼겹살이 있다면, 광주엔 기아의 매운맛을 관중석에서도 느낄 수 있는 고추장삼겹살이 있다. 경기장 입점 업체인 신세계푸드의 한식뷔페 브랜드 ‘올반’에서 내놓은 프리미엄 건강식으로도 꼽힌다. 고추장삼겹살 도시락엔 마늘, 쌈장, 고추는 물론 파채, 피클, 밥까지 포함돼 한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1루와 3루 쪽에 들어선 ‘챔피언스 펍(champions pub)’에선 생맥주는 물론 다양한 수입 맥주들을 맛볼 수 있다.

수원 kt위즈파크의 진미통닭. 독자제공
수원 kt위즈파크-진미통닭, 보영만두

‘치맥 천하’가 저물고 있다지만, 연고지의 명물이 야구장에 들어섰다면 얘기가 다르다. 수원 kt위즈파크의 ‘진미통닭’이 대표 사례. 경기 전이라면, 최소 20~30분은 대기해야 손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잘 팔린다. 수원 명물 ‘보영만두’의 군만두 또한 마찬가지. 경기장에 들어서면 홈 팬, 원정 팬 할 것 없이 갓 튀긴 진미통닭과 보영만두를 호호 불어먹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김형준 기자 medai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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