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웅 북한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께.

돌이켜 보면 3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2014년 2월 소치동계올림픽 취재차 러시아 소치를 방문 했을 때입니다.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의 주선으로 초대 받았던 자리에서 만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당시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위원장 집권 초기였을 때라 불안감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실제 김 위원장은 2013년 자신의 고모부이자,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이던 장성택을 ‘반란죄’로 처형하는 등 정적들을 대거 숙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장성택 계열로 분류된 장웅 위원의 신변 이상설이 심심찮게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장 위원도 가족과 함께 오스트리아에 수년간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때마침 소치 올림픽에 북한이 불참한 것을 두고도 쑥덕공론이 만발했습니다. 하지만 장 위원은 그날 시종 당당한 자세로 남측 기자를 대했습니다. 정치적인 민감한 질문에 대해선 말을 아꼈지만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스포츠로 풀어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특히 경평 축구대회와 남북한을 종단하는 역전(驛傳)마라톤 대회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경평 축구대회야 선례가 있고, 1990년 남북통일축구 대회라는 이름으로 서울과 평양에서 재개되기도 했습니다. 또 올 4월에는 한국여자축구대표팀이 2018 아시안컵 예선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는 등 최고 지도자의 결심만 있으면 언제든지 불이 붙을 수 있는 종목입니다.

이에 반해 남북한을 관통하는 역전마라톤은 비교적 생소합니다. 하지만 그 상징성만큼은 오히려 축구를 능가합니다. 우선 마라톤은 손기정 선생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제패로 일제 강점기 식민지 백성의 자존심을 한껏 되살린 쾌거로, 한민족 전체의 DNA에 녹아 있습니다. 광복 후에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가 ‘족패천하’의 바통을 이어 받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손기정은 북한 신의주, 황영조는 남한 삼척이 고향입니다. 이렇듯 남북한이 한차례씩 세계를 제패했다는 자부심 높은 종목입니다.

만약 백두에서 한라까지 남북한 마라토너가 서로의 어깨 끈을 이어 받으며 군사분계선을 넘는다면 전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쯤은 떼어놓은 당상이 되지 않을까요. 기약 없는 개성공단 재개처럼 유엔의 번거로운 절차와 눈치를 봐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로 치르고 있는 ‘한반도 리스크’는 스포츠라는 소프트파워로 인해 순식간에 프리미엄으로 뒤바뀔 것입니다. 특별한 경기장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서 소요 비용 역시 크게 들지 않을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남북한 최고 지도자의 신념과 철의 건각들만 있으면 됩니다. 반면 그 효과는 노벨 평화상 수상을 능가할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가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차 북한을 방문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득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4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난마처럼 얽힌 남북관계에 스포츠를 통한 쾌도난마식 해법을 기대한다면 무리일까요. 그런 면에서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이 전북 무주에서 열린 WTF세계선수권 개회식 축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을 제안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장 위원께서 북한 태권도 시범단과 함께 방한한 이유도 비단 태권도만을 이야기 하기 위해 오신 건 아니리라 믿습니다. 불과 200여일 남은 평창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은 현실적인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정작 주인공들이어야 할 선수단은 혹시 있을 대표팀 탈락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발언 핵심은 남북화해 교류 물꼬를 스포츠를 통해 풀어가겠다는 의지일 것입니다. 특정 종목 단일팀을 넘어, 상징적으로 남북한 공동입장과 훈련장 공유 등은 충분히 가능한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에 남북한 관통 역전마라톤대회를 평창올림픽 성화 봉송로와 연계한다면 IOC가 가장 역점을 두는 올림픽 레거시(유산)로도 최고의 대안이 될 듯 합니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ankookl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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