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시작된 아들의 일탈, 화를 못 참는 엄마

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jinjin@hankookilbo.com
중3이 폭력에 보험사기까지 얽혀
운 없었다고만 여기고 반성도 안해
또 무슨 사고를 칠까 너무 불안
‘내가 죽으면 정신차릴까’ 자살 시도
“이런다고 안 바뀌어” 아들 말에 절망

저에겐 올해 고3, 중3인 아들 둘이 있습니다. 둘째 아들의 사춘기를 감당할 수 없어 괴롭습니다. 아이는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교복도 안 입고 가방도 안 가져가고 수업 시간엔 엎드려 잡니다. 소위 질 나쁜 아이들과 어울려 타 학교 학생과 싸움을 일삼고 중2 때부터 술, 담배에도 손을 댔습니다. 밤 12시 넘어 들어오는 건 일상이고요. 올해엔 아이 때문에 처음으로 경찰서도 가봤네요. 같이 다니는 친구들 중 한 명이 지갑을 주워서 그 안의 주민등록증을 어딘가에 도용했다고 합니다. 현재 소송 중인 사건도 있어요. 친구 중 한 명이 아들에게 오토바이를 빌려줬는데, 알고 보니 보험사기단과 짜고 일부러 사고를 내서 합의금을 뜯어내려고 했던 거였어요. 다행히 블랙박스를 통해 정황이 밝혀졌고 사기단 중 한 명은 구속됐습니다.

애가 직접 죄를 저지른 건 아니지만,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계속 사고를 치니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너무나 불안합니다. 문제는 아이가 이걸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지, 반성이나 경각심이 전혀 없다는 거예요. 가장 화가 나는 것도 그 부분입니다. 너무 당당해요.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합니다. 최근엔 부모가 경찰서를 오가며 진정서 쓰는 모습을 보고 약간 누그러진 듯 했지만 대화의 끝은 늘 “내가 알아서 할게”예요. 그러면 저도 언성이 높아집니다.

아들 말로 전 다혈질이에요. ‘너 제정신이야, 이게 네 나이에 할 짓이야’ 소리를 높이고, 화를 못 참으면 욕을 하고 매를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덩치가 커지니 이젠 체벌도 먹히질 않아요. 얼마 전 또 밤늦게 들어왔길래 머리를 한대 쥐어 박았더니 “한 번만 더 때리면 다신 엄마와 얘기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때리는 손을 잡아서 제지하기도 해요.

아들이 어릴 때 저는 해달라는 걸 다 해주는 엄마가 아니었어요. 큰 아들에게도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휴대폰을 사주지 않아 반에서 우리 애만 휴대폰이 없었죠. 작은 애에게도 그렇게 했습니다. 큰 애는 별 불만이 없었는데 작은 애는 그런 것에 불만이 컸던 것 같아요. 다른 집은 다 해주는데, 우리 집은 사달라는 것도 안 사주고, 외식도 안 하고. 열등감 같은 걸 느끼지 않았나 해요. 신체적으로도 온 몸에 반점이 있어서 이것 때문에 상처가 컸어요. 지금도 여름에 반팔을 입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본인이 원하는 만큼 살지 못해서 반항이 심해지지 않았나 해요. 지금도 돈에 무척 예민해요. 꿈이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는 거래요.

작년 아들의 일탈이 본격화할 때 제가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경륜 선수가 돈을 많이 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사이클을 배우겠다고 해서 서울의 학교로 전학을 시켰어요. 생각한 것과 달랐는지 세달 만에 포기하길래 다시 원래 학교로 옮겼습니다. 복귀 후 한달 간 제 아들 때문에 학교폭력위원회가 여섯 번이나 열렸어요. 같은 반 아이를 때린 거예요. 왜 때렸냐는 말에 댄 이유가 “마음에 안 들어서, 기분이 나빠서”였어요. 저는 남에게 피해 끼쳐선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며 산지라, 내 아이가 이유 없이 사람을 때렸다는 걸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얘가 이런 애였나? 이렇게 악한 인간이었나?’

충격으로 정신 없는 가운데 추스를 틈도 없이 매일 학교에 불려가다 보니 감당이 안됐어요. 순간 ‘내가 죽으면 정신 차릴까’란 생각을 했고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낸 뒤 목을 매려고 시도했어요. 이상한 낌새를 챈 남편이 작은 아들에게 빨리 가보라고 했고 아이가 제 모습을 봤어요. 그런데 애가 그 자리에서 “엄마가 이런다고 내가 바뀔 거 같아?”라고 하더군요. 저는 정말 절박했는데…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고 말할 수 없이 야속했습니다.

남편은 평생 목소리 한 번 높여본 적 없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땐 좋았어요. 저도 욕 듣고, 맞고 자란 기억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애들이 크니까 아빠가 너무 영향력이 없어요. 남편은 자기가 부드럽게 대하니까 그나마 애가 저 정도만 하는 거라고 말해요. 하지만 아들들 눈에 아빠는 그냥 화 못 내는 사람이에요.

제가 바라는 건 모범생이나 우등생이 아니에요. 교복 입고, 수업 듣고, 남한테 피해 안 주고, 꼴등을 하더라도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남편은 기다리다 보면 아들이 언젠간 깨달을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이렇게 기다리지만은 않잖아요.

(박은영씨, 가명ㆍ44세ㆍ주부)

공격성 이면엔 불안 걱정이 보여
몸의 반점 등 열등감이 복합 작용
상처받지 않기 위해 힘 키우려 해
다혈질 엄마, 다 허용하는 아빠 아닌
믿을만한 어른 등 제3자 상담 필요

은영씨, 자녀를 키울 때 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게 있을까요? 더 많이 사랑한다면 결국 모든 문제는 해결될까요? 은영씨 가정의 문제가 ‘사랑이 부족해서 생긴 걸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아들에 대한 은영씨의 사랑은 진심입니다. 그러나 양육의 기본 전제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옳은 길이 무엇인지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입니다.

자녀가 잘못된 길을 갈 때 부모는 할 말을 하되 대신 노여워하면 안돼요.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마지막에 노여워하면 앞에 말한 것들의 가치가 사라집니다.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아요. 남는 건 공격 당했다는 느낌뿐입니다. 은영씨와 아들의 관계에서 부모란 단어를 지워보죠. 아이 입장에서 누가 자신을 공격했다고 느낀다면 그에 대한 반응은 어때야 할까요. 나를 공격한 사람보다 우위에 있어야만 안전하다고 느끼겠죠, 그 사람이 끼친 영향을 폄하해야 편안해지겠죠. 내가 그 사람보다 강해야겠죠. 결국 엄마와의 관계에서 이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아이에겐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기준이 없어요. 이걸 사회적 규범의 내재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은영씨는 부모로서 가르침을 했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아이에겐 전달되지 않았어요.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엄마가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아들에게 이 관계는 이기느냐, 지느냐 혹은 꿇리느냐, 꿇림을 당하느냐의 문제예요.

반대로 아빠는 한없이 부드럽습니다. 아이를 감정적으로 공격하지 않는 것은 장점이지만, 지침을 주지 않는 아빠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 그 나이엔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네 마음을 이해한다’ 여기서 끝나고 마는 거죠. 지나치게 허용적일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최대한 아이를 안 건드리고, 아이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면 과도하게 이해하는 쪽으로 가고 말아요. 아이가 아빠를 자신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는 있으나, 부모는 등대가 배의 갈 길을 알려주듯이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할 규범에 대해 가르쳐야 합니다. 아빠에게서조차 이 가르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결국 아이에게 심어진 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지침이 없으면 아이는 불안해집니다. 밤늦게 놀다가도 ‘아, 이젠 집에 들어가야지’하는 체념이 있어야 하는데(이걸 한계 설정이라고 합니다) 이게 없어요. 그런 아이는 반사회적 행동까지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악의가 없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해요.

지금 문제는 아들에게 어른이 없다는 겁니다. 부모가 보여주는 것이 정의나 옳음에 대한 기준이 아닌 노여움, 분노, 화에 그칠 때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부모에게 충성심을 보이지 않아요. 이 경우 부모의 문제도 있지만 아이 자신도 여리고 상처를 잘 받는 성향일 가능성이 있어요. 겉으로는 자신감이 넘치고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속으론 불안하고 걱정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힘에 민감해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언제나 힘을 가져야 하는 거예요. 몸의 반점이나 어린 시절에 느꼈던 열등감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다른 쪽으로 힘을 키우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그 마음이 이런 범죄 행위로까지 표현이 됐다고 봐요.

더 문제가 되는 건 부모가 더 이상 아들에게 의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전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부모가 이야기하려고 하면 ‘알았어요, 이제 안 그럴게요’란 말로 빠져나가기 바빠요. 과거를 돌아본다는 건 반성을 위한 것입니다. 인간이 여타의 동물과 다른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과거의 실수를 통해 학습을 한다는 거예요. 어떤 일을 겪고 나면 다음엔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이게 마련입니다. 지금 이 아이는 그게 잘 안 되고 있어요. 그건 아이의 특성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경찰서에 가고 조사 받는 일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고 해요. 그건 자립성이나 자주성, 자기주도성과 거리가 멀어요. 책임이 빠져 있는 지나친 독립성, 즉 ‘내가 알아서 하겠다’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하겠다’예요. 책임질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어른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걸 패배하는 것으로, 의존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건 매우 큰 문제입니다.

주의해야 할 건, 이걸 사춘기 문제로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사람들은 사춘기를 그럭저럭 무난하게 지나가요. 사춘기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범죄 행위에 몸 담지는 않습니다. 감히 못해요. 이 시기에 두드러지게 표출되는 문제들은 이후 다른 문제의 시발일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므로 사춘기 문제로 싸잡는 건 위험한 일이에요. 은영씨 가정의 문제는 노여워하는 엄마, 지나치게 허용적인 아빠, 학습이 안 되는 아들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그 가정의 문제예요.

이 가정에겐 도움이 필요합니다. 허심탄회한 대화가 우선돼야 하겠지만 이미 가족 간의 대화는 반복된 패턴 안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커요. 제3자를 낀 중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너는 알아서 살겠다고 하지만 우리는 병이 날 정도로 네가 걱정된다. 우리가 정말 걱정 안 해도 되는 건지, 너도 다른 시각에서 생각할 기회를 가져보는 건 어떻겠니’ 같은 말로, 아이에게 어떤 편견도 없는 선생님과의 대화를 주선하는 것도 좋습니다.

부모도 스스로 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엄마는 노여움을 조절하는 데 매진하시고, 아빠는 분명하고 확고한 자세로 자녀를 대하고 있는지 다시 점검하셔야 합니다.

정리=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오은영 박사의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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