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이주노동자를 받기 시작한지도 벌써 20여 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주노동자가 낮은 처우를 받고 있다. 고용허가를 받았더라도 일단 취직하면 이직이 어렵다. 더구나 현대판 노예제라고 비판 받았던 산업연수생제도는 해외법인을 통해 연수생을 초청하는 형태로 바뀌었을 뿐이다. 초청된 연수생들은 많아야 월 수십 만원의 급여를 받으며 휴일도 없이 매일 12시간씩 일한다. 사고를 당해도 해외법인에 고용된 신분이므로 산재보상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연수생 3명 중 1명은 연수기간이 끝난 후 불법 체류자가 된다고 한다. 무비자 노동이 산업연수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는 한국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주노동자는 최저임금 미만을 받더라도 출신국보다 임금조건이 낫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은 그 수준의 임금으로는 도저히 희망을 가질 수 없으니 결국 고용경쟁에서 밀려나게 된다. 따라서 이주노동은 일자리 총량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실업률이 줄지 않는 원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취업자격으로 체류중인 이주노동자 인구는 산업연수생이나 노동비자 없이 체류하는 미등록 노동자를 제외하고도 이미 62만 명이다. 한국인 청년실업인구 56만 명보다 많다.

노동의 유입이 늘어날 수록 노동의 가치는 떨어진다. 저임금ㆍ저숙련 노동은 특히 그렇다. 예컨대 건설노동자의 하루치 임금은 80년대 후반과 비교해도 그다지 오르지 않았다. 낮은 임금조건을 받아들이는 이주노동자들의 존재가 전체 건설노동 임금을 더디게 했다는 뜻이다. 제조업 분야의 상황도 비슷하다. 기업은 고용에 투자하는 대신 싼 값에 이주노동자를 쓰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생산현장에 있던 한국인 노동자는 결국 서비스업이나 상업 분야로 옮겨간다. 그러면서 더 낮은 급여와 불안한 고용형태로 내몰리는 일이 잦다.

즉 이주노동자 문제는 한국인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과 고용 문제이기도 하다. 일하려는 사람이 많아졌기에 노동자가 언제든지 교체 가능한 부품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는 적정선이 어디인지 진지한 논의가 이뤄진 적은 거의 없다. 국산 상품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상품의 수입을 통제하자는 이야기는 쉽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력도 엄연한 상품일진대 한국인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임금수준 개선을 위해 이주노동자의 국내 유입을 조절하자는 생각은 왜 안 되는가?

계속 늘어나는 이주노동은 기업의 경제적 필요 때문이다. 폭증하는 이주노동의 다른 쪽 측면에 눈을 감는 것은 더 싼 값으로 노동자를 고용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요구만 듣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이주노동자를 강제로 쫓아내거나 그들에게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는 인종차별주의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의 지속적인 확대 유입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는 짚어보자는 것이 이 글의 취지다.

사실 국내에 체류 중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가능한 한 쉽고 빠르게 노동비자를 발급하는 편이 낫다. 또한 비인간적인 근로조건을 강요당하는 연수생들도 노동자로 대우해야 옳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인과 똑같은 노동조건으로 경쟁해야만 기업이 한국인 노동자의 고용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내후년부터 매년 평균 30만 명의 이주노동인구를 받아들여야 1%대 잠재성장율 상승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야 (지금처럼 낮은 비용으로)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는 기업이 비용을 아끼는 만큼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실업 및 고용불안에 따른 비용과 이주인구의 문화적 순수성을 ‘우리로부터’ 지키려는 다문화주의의 비용을 사회가 떠안아야 하니 말이다. 더 많은 이주노동을 통해 성장을 지속한다면 그 성장의 열매는 우리 몫이 아닐 것이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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