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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불신과 맹신 사이에서

입력
2017.06.2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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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불신의 시대라고 한탄을 합니다. 서로 잘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이것은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전에는 서로 잘 믿으며 살았는데 요즘 와서 잘 믿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인간은 늘 잘 믿지 못하였다는 얘깁니다. 전에도 사람들이 잘 믿지 못했고, 그래서 잘 믿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잘 믿지 못한다는 것도 우리는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좀처럼 서로 남을 믿으려 들지 않는다는 불신풍조의 뜻도 있지만 그보다는 옳게 또는 제대로 믿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나쁜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믿는다거나 반대로 좋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믿고, 일부를 가지고 전부를 그렇다고 믿거나 작은 불신 때문에 전체를 불신하는 그런 것들입니다.

우리 중에는 실로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손해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의 아내나 남편은 번번이 속는데도 너무 잘 믿는 것 때문에 고통을 많이 받고 그래서 제발 아무나 믿지 말라고 해도 이런 사람은 또 믿고 또 속습니다. 이런 경우 삼자인 우리는 이런 사람을 참으로 착한 사람이라고 하고, 이렇게 착한 사람을 속이는 사람을 참으로 나쁘다고 하는데 너무 잘 믿는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남을 좀처럼 믿지 않아서 손해를 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돈은 잃지 않는데 그러다가 사람을 많이 잃습니다. 누구의 어떤 점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란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 믿을 놈 아무도 없다!’는 인간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인 것입니다. 이 경우는 대체로 믿지 않는/못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지만 인간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 그가 문제인 것도 사실이지만 인간이란 본래 믿게도 하고 믿지 못하게도 하는 존재인 것도 사실입니다. 믿을 수도 있고, 믿을 수도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얘기입니다. 어느 인간도 100% 다 믿을 수 있고, 어느 인간도 100% 다 믿을 수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과 맹신의 두 극단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국간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국가를 맹신하거나 어느 국가를 무조건 불신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다른 나라에 맡기거나 모든 나라를 잃거나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외교적으로 참으로 어려움에 처해있고, 몇 가지 민감한 사안 때문에 주변 나라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은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며, 일본은 일어난다”는 말을 숱하게 듣고 자랐습니다. 이 말 중에서 소련에 속지 말고, 일본은 일어난다는 것과 관련해서는 전에도 그렇고 이제 와서는 더더욱 이 말이 맞느니 그르니 이견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국을 믿지 말라는 말과 관련해서는 미국은 우리와 동맹관계이니 믿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과 아무리 동맹이어도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니 믿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으로 갈립니다.

저는 이런 양 극단 사이에서 얼핏 보면 양비론적입니다. 그러나 저의 주장은 양비론이라기보다는 ‘믿지만 잘 믿자!‘는 것입니다. 제가 종종 하는 말이 “사람을 믿되 하느님처럼 믿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간의 정의와 얼마간의 사랑은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이니 그것을 믿되 큰 희망이나 기대까지 가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가 간에는 더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중요하고, 믿음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의 미래와 운명을 맡길 정도로 그렇게 믿거나 기대하거나 희망을 걸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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