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16일 서울 서초구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개인회생ㆍ파산 종합지원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결국,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각종 의혹 해소와 더불어 사과는 했지만 불거진 논란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안경환(69)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지명된 지 5일 만에 그렇게 중도 하차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 16일 오후 8시40분께 법무부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개혁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없어 직을 내려 놓는다”고 밝혔다. 사실 그는 이날 오전 11시께 “오래 전 개인사는 분명히 제 잘못이지만 그 일로 인해 그 이후의 제 삶이 전면적으로 부정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며 버티기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갈수록 악화된 여론에 그는 백기투항을 선언했다.

성 인식 등의 문제로 사퇴했지만, 13년 전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성평등 디딤돌상’ 수여자로 선정될 만큼 그에겐 두드러진 이력도 적지 않다. 스스로 후보직을 내려놓은 그의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봤다.

서울대 법대에 처음으로 여성 교수가 채용되다

지난 2003년 7월 서울대에선 큰 ‘사건’이 터졌다. 여성 법학자인 양현아 박사가 서울대 법대 교수로 채용된 것이다. 그의 채용은 전 언론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화제였다. 서울대 법대에서 여성을 채용한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대에는 이미 100여명의 여성 교수들이 있었지만 유독 법대ㆍ경영대 등 일부 학과의 여성 교원은 전무했다. 물론 여성 학자들의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2년 당시 300여명의 서울대법대생들은 성명을 통해 “그 동안 상당수 여성 지원자들이 있었지만 일부 교수들이 반대해 온 것으로 안다”고 지적했던 것처럼 보수적인 조직이었을 뿐이다.

그는 당시 서울대 법대 학장이었다. 그는 “균형적이고 완전한 법 해석을 위해 여성의 관점에서도 법 해석이 이뤄져야 한다”는 학생들의 지적에 “2~3년 내에 반드시 여교수 1명 이상을 충원하겠다”고 답했다. 실천도 했다. 서울대 역사를 바꾼 의미 있는 결단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이미 48.8%를 넘었던 사실에 비하면 서울대 법대의 여성 진입도 빠른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3년 당시 안경환(맨 왼쪽) 서울대 법대 학장이 신입생인 하반신장애인 손위용(두 번째)씨, 시각장애인 김용광씨 등과 면담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학장으로서 안 교수는 분명 서울대 법대의 다양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지난 2003년 서울대 법대에 처음으로 장애인 학생을 입학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 보다 앞선 2002년 서울대는 장애인 특별전형을 신설했지만 막상 ‘수화통역사를 지원해달라’는 청각장애인 입학생의 요구를 거절할 정도로 실질적인 배려 수준은 낮았다. 2003년 법대에 하반신 장애가 있는 손위용(당시 50세)씨와 시각장애가 있는 김용광(당시 41세)씨가 지원했을 때도 학내 분위기는 싸늘했다. 당장 장애인 시설이 전무했다. 여기에 장애학생 한 명 교육에 일반 학생 40명분의 교육비가 필요하단 우려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당시 그는 “입학 못할 이유가 없다”며 입학을 옹호했다. 모금을 통해 휠체어와 시각장애인용 전자확대기 등을 선물하는 등 이들을 도왔다. 서울대 법대에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처음 생긴 것도 당시의 일이다. 그가 ‘성평등 디딤돌상’ 을 받고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이 된 것도 이때의 행보 덕분이다.

“은은히 풍기는 비누냄새 같은 인권위 만들겠다”
지난 2006년 당시 안경환 국가위원회 위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고영권 기자

그는 지난 2006년 10월30일 국가인권위 제4대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당시 취임사에서 시인 오세영의 작품 ‘사랑의 묘약’을 인용해 “인권위는 국민의 일상적 체취 속에 은은히 풍기는 비누냄새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쓰면 쓸수록 자신의 존재는 점점 작아져 냄새만 남는 비누처럼 겸손한 자세로 봉사하겠다는 포부였다.

인권위원장으로서 그는 ‘사형제 폐지’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위해 힘썼다. ‘양심적 예비군훈련 거부는 차별’이란 권고와 함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진일보된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인권위원장으로서 그의 존재감은 지난 이명박 정부 때부터 드러났다. 지난 2009년 3월 행정안전부는 국가인권위원회 정원과 조직에 대해 21.2% 감축 방안을 확정해 통보했다. “국내외 여론과 장애인ㆍ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일각에선 인권위가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시위대에 대한 경찰 대응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내린 결정과 관련된 보복성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행안부의 통보를 받자마자 인권위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하는 등 법적 투쟁에 나섰지만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그는 인권위원장임기를 4개월 남긴 2009년 7월 사표를 냈다. 그는 이임사에선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말을 남기며 정부의 빈약한 인권의식을 비판했다.

“저 맷집 좋습니다”라 했지만...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3일 백팩을 메고 서울 적선동 청문회 준비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업적 또한 눈에 띈다. 청와대 발표처럼 그가 “검찰개혁을 추진할 적임자”일 수도 있다. 그는 과거 검ㆍ경 수사권 문제를 두고 “경찰이 수사권을 가져가서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언론과 국민의 감시가 상대적으로 쉽지만 검찰의 밀실수사는 감시조차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적어도 일방적인 검찰 옹호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과거 여성과 관련된 여러 행보도 그가 자신을 “총체적으로 봐달라”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는 2002년 장상 전 민주당 대표가 최초로 여성 총리로 지명됐다 낙마했을 당시 “앞으로는 여성정치가와 남성정치가가 다른 기준으로 평가 받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해엔 법조인들과 함께 청소년 성범죄자 신상공개제도를 공식 지지했고, 이듬해 성매매 피해 청소년을 구조하기 위한 법률지원단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쓴 '남자란 무엇인가'. 홍익출판사 제공

하지만 이런 행보가 “여성은 술의 필수 동반자”라거나 성매매 이유를 “젊은 여성의 몸 속 샘물에 몸을 담아 거듭 탄생하고자 하는 것이 사내의 염원”이란 그의 또 다른 주장을 희석시키기엔 부족해 보였다. 그가 ‘과거의 일’에 대해 사과 기자회견을 했지만 불과 6개월 전 출간된 책 ‘남자란 무엇인가’에서 그의 편향된 여성인식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관련기사보기)

과거 인권위원장으로 취임 당시 그는 “저 맷집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인권위를 향한) ‘건강한 비판’을 충고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다. 그는 이번에도 “마지막 소명을 다할 기회를 달라”고 했지만, 결국 그의 ‘맷집’도 날카로운 창으로 다가온 국민 비판을 막아내진 못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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