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검증 잣대는 여성에 대한 조소
장관 되기 조건들, 여전히 남성에 유리
최소한 검증 결과 평가라도 공정해야

요즘 장관 되기의 조건을 따져보면, 우선은 정권 인사이더에 속해야 한다. 캠프에 사전 입성하는 게 보다 안전하다. 발탁은 이전에도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다. 다들 아니라고 하지만 정권과 어느 정도 코드가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1기 조각에 일부 언론이 문제를 삼았지만, 이는 어느 사회이건 비슷하다. 2009년 오바마 정부가 들어설 때 미국 백악관의 웨스트윙도 선거캠프의 인사이더들로 넘쳐났다.

두 번째는 의원이 되어 우회하는 길이다. 의원의 청문회 통과는 100%여서 역대 정권에게 ‘배지’는 궁하면 통하는 카드였다. 이번에도 현직 의원인 김부겸 도종환 김영춘 후보자에 대해 ‘물 청문회’ 논란이 일었다. 국회는 같은 현역인 김현미 후보자는 좀 세게 몰아붙였지만, 의원의 청문회 불패신화가 깨지진 않을 것 같다. 능력이 있지만 불미스런 구석이 있다면 의원이 되어 돌아가는 방법이 낫다. 세 번째로, 논문은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한다. 논문 시비는 문재인 정부 내각 임명과정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악재다. 송영무 김상곤 김현미 김부겸 도종환 후보자가 논문과 관련된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네 번째는 좋게 말해 운이 따라야 한다. 장관 청문회와 임명 과정의 여의도 정치학 때문이다. 야권이 낙마시킬 대상으로 삼거나, 언론의 타깃이 되면 본인은 물론 가족신상까지 탈탈 털릴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런 순간이 닥치면 공들여 쌓은 경력은 허망하고 인생은 무망해져, 장관직은 애초 가지 말았어야 한 길이 되고 만다. 야권은 그 과녁에 강경화 안경환 후보자를 포함시킨 모습이다. 장관 되기의 이런 조건들은 남성 중심적인 것이다. 여성 후보자에게는 엄혹한 조건 ‘남편 관리’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사실 장관 후보자 검증에서 언론이 부딪히는 문제는 여성 후보자 검증의 수위다. 부각은 안 됐지만 청문회 위원들도 마찬가지 고민일 게다. 가족 구성원의 모든 정보가 담긴 수백 쪽 청문보고서에서 여성 후보자는 이른바 알파걸로, 그 상대방은 베타보이로 비치게 마련이다. 그때부터 가정사는 남편이 아닌 아내 위주로 해석된다. 하지만 아직 우리 가정은 가부장제 문화가, 사회는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공간이다. 시민이란 성인이자 비장애인, 이성애자 남성과 동일시 되는 사회에서 알파걸도 전통적인 엄마, 아내 역할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 관계사의 축소판인 청문보고서에서 드러난 의혹에 대해 여성 후보자의 책임은 어디까지 추궁해야 할까. 많은 일들이 남편 주도로 벌어진 뒤 사후적으로 아내에게 그 책임을 묻는 건 온당한 것일까.

힐러리 클린턴이 남편 빌 클린턴이 바람을 피웠을 때 이혼하지 않은 이유가 야심 때문이라고들 했다. 그녀가 냉정한 이성을 지닌 정치인인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딸 첼시가 출가하고, 남편도 전직 대통령으로서 인기를 유지하기까지 그 뒤에 엄마이자 아내인 힐러리가 있었다. 그녀가 작년 대선에서 남편의 상대 여성을 ‘플루지(floozy)’라고 욕한 사실이 뒤늦게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남편 잘못을 여성 탓으로 돌려 여성 사이 자매애인 ‘시스터후드’가 없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나 이마저 정신과 의사 조슈아 콜맨은 모성애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차가운 힐러리조차 상대 여성을 비난해 남편과 자녀를, 가정을 보호하려 했다는 얘기다.

인사청문회 정국이 계속되고 있다. 장관 덕목으로 엄격한 도덕과 윤리를 요청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논문표절, 병역면탈, 세금탈루 가운데 하나라도 위반한 인사는 등용하지 않는다는 5대 비리 배제 원칙은 공약이었다. 청와대가 인사원칙을 스스로 훼손, ‘내로남불’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 해도 여성 후보자에게 동일한 검증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과도한 검열이자 이 시대 여성에 대한 조소일 수 있다. 검증의 남녀 차별을 두기 어렵다면 그에 대한 평가까지 부당하지 않아야 한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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