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방제의 지방 분권

나치 정권 패망 후 탈중앙집권화
동독과 통일하고도 연방제 유지
연방ㆍ주정부 동등한 조세 주권
조세 수입 배분 기본법에 명시
한국의 지방분권화 모델 삼을 만
독일 바이에른주 주도 뮌헨에 있는 주의회건물 막시밀리아네움. 1949년부터 주의회로 사용됐다. 건물 앞에 독일 국기, 유럽연합기, 바이에른주 주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일 독일 연방하원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의 조세 수입 배분(재정 조정, 재정균등화)을 대폭 개혁하는 법안을 비준했다. 비준된 법에 따라 2020년부터 16개 주정부는 연방정부로부터 해마다 97억5,000만유로(약 12조2,700억원)를 지원 받는 대가로 연방정부에 주정부의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더 주기로 합의했다. 연방정부가 주정부 정책 개입을 확대하면서 그 대가로 예산을 더 주겠다는 개혁안은 중앙집권적 통치에 익숙한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어색해 보인다. 이는 독일은 지방분권이 강한 연방제 국가라, 지방자치제도가 나중에 도입된 한국과는 정치적 맥락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의 기본법(헌법)은 이 법에 명시되지 않은 권한은 주정부에 속한다고 하여 주정부가 독립적인 정치단위라고 규정했다. 기본법은 28조, 30조 등 몇 개 조항에 걸쳐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권한 및 조세 수입의 배분을 명시했다. 교육과 환경, 이민 등은 주정부의 고유한 정책권한이고 이를 위해 주정부는 소득세와 법인세, 부가세 가운데 상당 비율을 세입으로 쓸 수 있다. 연방정부가 주정부에 특정 비율로 이 세금을 교부해주는 게 아니라 모든 세금을 연방과 주정부 간에 배분한다고 명시하여 주정부에 거의 동등한 조세 주권을 부여했다. 2015년의 경우 세입이 가장 많은 소득세와 부가세 가운데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거의 같은 비율로 이를 나누었다. 연방정부는 국방과 외교 권한을 가지며, 여러 주에 걸친 인프라 건설 등은 주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해야 한다. 이번에 통과된 개혁 법안은 특히 부자 주와 가난한 주 간의 재정조정 과정, 그리고 인프라 건설에 연방정부의 권한을 확대한 것이다.

독일의 연방제는 역사의 산물이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주도로 1871년 독일이 뒤늦게 통일되었을 때 바이에른과 작센 같은 여러 왕국과 바덴 등 대공국이 이 연방국가를 구성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통제를 목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실시했으나 2차대전 패전 후 서독에서 연방제는 부활되었다. 당시 미 군정은 탈나치화, 민주화, 탈중앙집권화라는 ‘3D 정책’을 실시했다. 1990년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한 후에도 연방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통일 후 수도 베를린은 구 동베를린 지역 인프라 건설에 대규모 재정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40년이 넘는 분단으로 베를린은 수도임에도 16개 주 가운데 구 동독의 5개주를 제외하고 가장 가난한 주에 속한다. 부유한 바이에른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등이 해마다 베를린처럼 평균 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몇 개 주를 지원해준다. 이것이 재정조정이다. 이번 개혁 이전에는 주정부끼리 합의하여 지원해 주는 것이 주가 되었고 연방정부가 일부를 지원해 주었는데, 이번 법 개정으로 이 지원을 연방정부가 대부분 떠맡게 되었고 주정부의 부담은 줄었다. 이 법안은 10여년 넘게 끌어오다가 연방하원에서 재적 의원의 3분의 2가 찬성해 비준되었고 주정부 대표들이 있는 연방상원에서도 3분의 2가 확보되어 비준될 것으로 보인다.

장황하게 독일의 예를 든 것은 우리가 익히 봐왔던 방식과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대부분의 권한을 틀어쥐고 있다가 지방정부에 일부 권한을 이양해 준 게 우리의 지방자치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22년이 지났고 사회복지 등 많은 정책 이행을 지방정부가 담당하면서 지방분권 확대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는 2016년을 기준으로 52.47%, 지방세 세입은 지자체 지출의 20%에 불과하다.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지 않고 살림살이를 해나갈 수 있는 지자체가 거의 없다. 서울특별시나 성남시가 남는 재원으로 청년수당을 도입한 사례가 있지만 중앙정부가 이를 방해했다. 독일 같은 연방제 국가라면 주정부가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내년 상반기 개헌을 앞두고 논의가 한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방제에 가까운 지방분권공화국을 만들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건 데 이어 14일에는 시ㆍ도지사 간담회를 ‘제2국무회의’로 격상하겠다며 지방분권 개헌 의지를 공식화했다. 여기에 지자체의 실질적 권한 확대도 추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지방정부의 재정 및 정책 독립을 보장하는 독일 연방제가 참고할 만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주민이 원하는 것을 잘 이해하여 해결할 수 있는 지방정부에 더 많은 정책권한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세권을 주어야 한다. 현재 한국 헌법은 불과 2개 조항(117와 118조)에 지방자치에 관한 규정을 두었다. 두 조항은 너무 간결하고 지자체 부활 7년 전에 도입됐으며 중앙정부가 지방자치 확대에 노력하겠다는 내용도 빠져 있다.

일부 학자들은 아예 중앙집권제를 연방제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연방제가 지방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통일 후 낙후된 동독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듯이, 통일 이후 남북간의 경제적 격차를 해소하고 장기간의 분단 때문에 정치제도에 대한 인식이 매우 상이할 북한 지역에도 동등한 정치적ㆍ경제적 권리를 보장하려면 연방제가 더 적합할 수 있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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