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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24% 미망에 빠진 8% 한국당

입력
2017.06.0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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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인사 난맥상, 부활 기회인데

당 리더십 고민 없이 '홍준표 복귀'에 올인

英 보수당 등에서 보수 가치ㆍ역할 배워야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지난 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지난 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내내 지지하고 당선에도 일조했다고 자부하는 대학교수 친구가 잔을 기울이다가 긴 탄식을 늘어놓았다. "새 정부 인사논란 말인데, 시간이 없고 자료도 부족했다지만, 이거 모양이 너무 우습게 됐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5대 원칙 훼손이 불가피했던 사정을 설명하고 국민 이해를 구했지만 기분이 너무 더러워. 첫 단추를 잘못 꿴 부담이 두고두고 남을 텐데, 정말 걱정이야."

새 정부 출범의 구조적 한계나 야당의 과한 정치공세 탓이라고 친구의 낙담을 달랬지만 그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본인도 청와대의 설명과 후보자들의 해명에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은데, 반격의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던 자유한국당 등 반대세력들이 먹잇감을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은 자명하고 결국 국정동력의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첫 인사에서 비롯된 여야 긴장이 사드 환경영향평가 논란이나 여야정 협의체 등 협치채널 파기로 번져 가는 작금의 상황은 그가 우려한 그대로다.

자신이 대선에서 얻은 24%의 득표를 ''자유한국당의 복원'이라고 자찬하며 미국여행을 떠났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얼마 전 귀국했다. 공항에 1,000여명의 지지자가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는데, 그는 담담하게 "저와 한국당의 잘못으로 대선에 패배했다" 며 “자유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는 데 함께하겠다” 고 짧게 말한 뒤 자리를 떴다. 의외였다. 그의 귀국이 7ㆍ3 전당대회 당권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고 환영인파도 상당했던 만큼 특유의 거칠고 강한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홍준표였다. 그는 귀국 다음 날 "패장의 귀국을 환영하러 나온 인파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이를 '마음 둘 데 없는 국민'과 등치시켰고, 문 대통령이 "애국엔 보수나 진보가 없다"고 말한 날, "체제를 파괴하려 한 사람들이 민주열사로 추모되고, 나라를 위한 희생이 희화화되는 나라는 정상국가가 아니다"고 퍼부었다. 친박을 바퀴벌레에 비유한 소음과 매도, 적대와 배제의 화법은 바뀌지 않았다.

홍준표는 지금 한국당의 희망이요, 횃불이다. 대선후보도 없어 헤매던 시절에 홀연히 나타나 불과 한 달여 만에 안철수까지 제치고 '24%의 기적'을 이룬 인물이다.(☞ 홍준표 24%와 보수의 선택) 철새의원 14명을 끌어들여 한국당 몸집을 민주당과 비슷하게 만든 것도 그다. 그러니 당권을 움켜쥐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가 사상 최대 표차로 패배한 보수후보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다. 대선 과정에서 그가 훼손하고 무시한 보수의 가치나 공동체의 고민도 남의 일이다.

한국당이 의원ㆍ당협연찬회에서 "보수의 가치를 발전적으로 계승해 대한민국 100년의 이끌어 갈 미래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결의한 지난주, 갤럽 여론조사의 한국당 지지율은 8%였다. 107석 정당 지지율이 20석의 바른정당과 같다는 것도 우습지만 텃밭인 대구경북에서 18% 대 22%로 되레 뒤진 것은 낯뜨겁다. 한국당은 결의문에서 "대한민국 적통 보수 정당'을 자임하며 미래 야성 생활 신뢰를 쇄신의 화두로 내세웠다. 24%를 믿는 것인지, 8%를 외면하는 것인지, 참으로 대담한 발상이다.

영국 보수당의 역사와 정신을 연구한 박지향 서울대 교수의 책이 새삼 화제가 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저자는 특권층만이 권력을 누리던 시대에 만들어진 정당이 21세기까지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그 비결을 "시대정신을 잘 파악하고 변화를 수용해야 할 때 수용함으로써 멍청한 당에서 벗어나 성공적인 당으로, 나아가 20세기를 보수주의의 세기로 만들었던 것"에서 찾았다, 또 "선거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원칙을 고수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는 일관된 원칙"도 곁들였다.

'선거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는 커녕 '선거에서 지고도 기생할 곳만 찾는' 게 지금 한국당이니 보수 적통이 아님이 명백해졌다. 당 지배구조나 리더십 고민은 없고 인사청문회에 사활을 거는 듯 몽니만 부린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할 수 없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k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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