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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소모 교육’에서 ‘누림 교육’으로

입력
2017.06.0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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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알파고가 바둑 최고수를 연파하고는 바둑계를 떠났다. 지난해 이세돌 9단을 눌렀던 알파고는 세계 랭킹 1위 중국의 커제 9단을 3대 0으로 완파했다. 또한 저우루이양 등 다섯 명의 9단이 ‘집단지성’을 발휘해 벌인 대국에서도 가볍게 승리했다. 여러 모로 의미가 깊을 수밖에 없는 대국이었다.

커제 9단과 대국한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대국했던 때보다 한층 진화된 상태였다. 처리 속도는 15배 이상으로 증진됐고 학습시간은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으며 전력소비량도 30분의 1 이하로 줄었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자못 좋아졌다는 뜻으로, 알파고 같은 AI의 범용 가능성이 한결 높아졌음을 일러준다.

그런데 이런 기술적 진보보다는 9단 연합팀을 눌렀다는 점이 한결 의미 깊어 보인다. ‘인간 집단지성에 대한 기계의 승리’라는 평가가 충분히 가능하기에 그렇다. 알파고처럼 인간도 통신하면서 뒀다면 쉬이 이겼을 거라고 말하기가 이젠 머쓱해졌다. AI는 IQ 150짜리 5대를 연동하면 IQ 750의 구현이 가능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는 속설도 꽤나 신경 쓰이게 됐다. 설령 많은 수의 프로기사 9단이 연합해도 여전히 9단이 최고치일 수 있음이 환기됐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에게는 기계와 결합해야 기계를 이기게 되는 길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1997년 세계 체스 챔피언이 AI 딥블루에게 패배했다. 그 후 인간이나 AI가 단독 혹은 팀으로, 또 ‘인간+기계’ 연합팀으로 참여 가능한 체스 리그가 출범됐다. 여기서 1위를 비롯한 상위권 대부분은 인간+기계 연합팀이 차지했다. 지난해 말 암 치료에 의료용 AI 왓슨을 도입한 한 병원에 따르면, 의료진과 왓슨이 서로 다른 진단과 치료법을 내놨을 때 환자 대부분은 왓슨을 따랐다고 한다. 그렇다고 환자들이 처치까지 왓슨에 맡긴 건 아니었다. AI의 진단을 토대로 의사가 치료하는 형식, 곧 ‘인간+기계’ 조합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임박한 AI 시대에 우리 인간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를 잘 말해준다.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학습’이 그것이다. 알파고는 기존에 저장해놓은 데이터를 자가 학습하는 것만으로 이번 대국에 임했다. 새로운 기보의 수혈 없이 ‘강화 학습’이라 불린 자가 학습만으로 커제 9단을 꺾었다. 이로써 빅 데이터가 자가 학습과 만남으로써 차원을 달리하며 강해질 수 있음이, 그 증강 속도가 예상보다 빠를 수 있음이 입증됐다. 빅 데이터는 갈수록 광범위하게 집적되고 자가 학습 능력도 세차게 진화할 것이기에 그렇다.

게다가 AI는 항상 학습한다. 쉼 없이 학습하도록 프로그램을 짜면 정말 그렇게 한다. 인간처럼 두어 시간 공부하면 효율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멍 때리거나 잡념에 휩싸이지도, 갈등하거나 회의에 젖어들지도 않는다. 동력이 공급되는 한 지치거나 멈추지 않고 계속 학습한다. 학습을 통해 점점 인간을 닮아가기도 한다. 알파고가 드물지 않게 구사한 ‘창의적’ 수도 실은 학습이, 곧 그러한 학습을 가능케 해준 기술이 일궈낸 인간다움을 향한 진보였다. 당면한 디지털 문명 시대 우리 일상을 그득 메울 디지털 기계의 근황이다.

하여 이런 디지털 기계를 ‘주인’으로서 활용하려면 인간도 늘 학습해야 한다. 기계를 제압하느냐, 그렇지 못하냐는 부차적이다. 그들과 팀을 이뤘을 때 인간과 사회의 역량이 증강되는 한, 학습하는 AI와의 협업이 불가피해지기에 그렇다. 그래서 디지털 기계를 알아야 한다. 만들고 고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디지털 기계와 이를 기반으로 구현되는 디지털 문명을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른바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 그러니까 디지털 문명을 해독해내고 이를 삶에 창조적으로 사용할 줄 알도록 늘 학습해야 한다는 말이다.

더구나 우리는 벌써 디지털 기계의 도움 없이는 사회적 일상의 영위가 사뭇 불편해지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소통도 생업도 여가도 디지털 기계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아지고 있다. 인간다움의 정수라 하는 명징한 이성과 따뜻한 감성, 틀을 깨는 상상과 그윽한 직관조차 디지털 기반으로 표현되고 향유된다. 정도 차만 있을 뿐 우린 이미 ‘21세기형 사이보그’다. 자칫하여 디지털 기계에 잠식된 ‘나’로 전락되는 건 일도 아니게 됐다. 학습을 통해 연신 진화하는 디지털 문명에 대응해 디지털 문해력을 갱신해가야 ‘인간-나’를 유지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현행 ‘초등-중등-고등’ 식의 교육 패러다임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한창 진척되고 있는 ‘평생’ 학습해야 하는 시대와 공진하지 못하기에 그렇다. 중장년, 노년이 됐다고 하여 ‘디지털 문맹’이 문제되지 않는 시절은 저물고 있다. 교육이 상급학교 진학이나 취업용으로 소모되는 풍토에서 평생학습이 부담되지 않는 ‘누림 교육’으로 전환돼야 하는 까닭이다. 생애 주기별로 누림 교육이 시행되도록 제도적 기반을 진작에 마련했어야 했음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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