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떤 방송을 보다가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빈민구제 비정부 지원기구의 일원으로 잠비아에 갔는데, 작물재배 방법을 전수해줘도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본국에서 가져온 토마토를 심었고,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을 받아 토마토는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그는 그 토마토를 들고 다니며 토마토를 심으라고 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젊은이는 그들이 무지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토마토가 하나도 없는 거였습니다. 하마들이 모조리 먹어 치운 것입니다. 그제야 그는 왜 그들이 심지 않았는지 깨닫고 왜 하마들이 토마토를 먹는 걸 얘기해주지 않느냐고 하니, 그들의 대답은 ‘안 물어봤잖아!’였답니다. 그는 크게 깨닫습니다. 서방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오만방자하게 자기들 생각대로 도우려고 한다는 것을. 그리고 원조의 원칙은 존중이며 입 다물고 들어야 하는 것임을.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고, 사람들의 기대도 큰 것 같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처음에는 다 이렇게 기대를 하고, 기대에 맞게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새 정부도 처음에는 대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하고, 기대에 맞게 잘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정부가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밀어붙이고, 자기들이 곧 국가이고, 국가가 하려고 하는 것을 국책사업이라고 하며, 이 국책사업을 국민이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어느 때부터’가 언제부터일까요?

국민의 기대를 망각하기 시작하는 것은 자기들의 권력에 도취하기 시작할 때부터이고, 그 힘, 권력을 국민이 준 것임을 망각하기 시작할 때부터입니다. 개인이건 집단이건 힘을 갖게 되고, 힘을 쓰기 시작하면 차츰 그 힘이 부여 받은 것이라는 것을 잊고 자기가 쟁취한 것이며,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하기 싶습니다. 그리고 힘을 쓰기 시작하면 차츰 내 뜻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하고,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힘과 권력의 속성이고 마력인데 아무튼 이때부터 귀는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어떻게 이렇게 되는 것입니까?

첫째는 교만 때문입니다. 힘이 없을 때는 겸손하다가도 힘을 가지게 되면 교만해지는 것이 인간이지요. 이런 사람에게 하는 말이 ‘눈에 뵈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교만은 지독한 자기집중이요 자기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지만 힘이 없는 사람은 하고 싶어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힘이 있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기에 힘이 없는 사람보다 교만해지기가 쉽고 교만하게 되면 그때부터 눈에 뵈는 것이 없고, 다른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이 남을 무시하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며 남의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 바로 지독한 자기중심성, ‘자기밖에 없음’ 때문입니다. 무시라는 말이 뜻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지요. 무시(無視)란 ‘시력이 없다’는 뜻도 되지만 ‘없다고 보는 것’이라는 뜻도 되지요. 분명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있는데도 나 말고는 없는 양 여기는 것입니다.

둘째는 욕심 때문입니다. 이것도 교만과 마찬가지로 힘이 없을 때는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고 그래서 욕심을 못 부리지만 힘이 있을 때는 가질 수 있기에 힘이 있는 사람이 욕심을 부리지 않기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는 말이 “돈에 눈이 멀었다”는 말입니다. 욕심 때문에 갖기로 마음을 일단 먹으면 이제 그것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새 정부도 그렇고 우리도 보며 살고, 들으며 살았으면 하는 노파심에 한 말씀 올렸습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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