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펜과 구몬학습지 통해
90년대 학습지 장악하며 성장
정수기ㆍ비데 등 생활가전 확장
웅진그룹의 길 그대로 따라가
교원라이프 상조사업 적자 지속
장남 경영권 승계와 관련 주목

2012년 6월 이정자(69) 교원그룹 전 부회장이 장평순(66) 회장을 상대로 200억원대 민사 소송을 제기하자 ‘30년 동지가 한 순간에 원수로 갈라섰다’며 회사 안팎이 술렁였다. 앞서 장 회장은 이 전 부회장이 해사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2개월 전 주주총회를 열고 그를 전격 해임했었다.

공동 창업자로 30년간 친남매처럼 지냈던 두 사람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자 회사 구성원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갈등의 원인은 이 전 부회장 퇴진과 그에 따른 퇴직금ㆍ공로금 지급 문제였다. 장 회장 측은 이 전 부회장이 교원그룹 사업과 중복되는 학습지 사업 등을 몰래 준비하는 등 해사 행위를 했기 때문에 그를 해임했다고 주장했다. 또 해사 행위를 한 사람에게 공로금 등을 지급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전 부회장 측은 장 회장이 약속했던 공로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누명을 씌워 자신을 몰아냈다고 반발했다.

법정 싸움으로 비화된 두 사람의 갈등은 이듬해 4월 이 전 부회장이 소송을 취하하면서 봉합됐다. 합의 내용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장 회장 측이 이 전 부회장이 원하는 퇴직금과 공로금 등을 대부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원그룹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2012년 장 회장 자녀들이 회사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이 전 부회장 퇴진이 갑자기 거론되기 시작했다”며 “장 회장이 30년 지기 공동창업자의 퇴진을 놓고 합의 대신 갈등을 택하면서 별다른 실익 없이 회사 이미지만 실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배추장사서 학습지 CEO로 변신한 ‘영업의 신’

교원그룹의 모태는 1985년 서울 인사동에 자본금 3,000만원으로 설립된 중앙교육연구원이다. 장 회장은 중앙교육연구원을 설립하기 전 두 가지 직업을 거쳤다. 하나는 배추장사이고 다른 하나는 웅진출판사의 학습지 방문 판매 사원이다.

장 회장은 타고난 영업력으로 배추장사와 학습지 판매사원으로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 배추장사를 하며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10억원의 종잣돈을 모았고, 웅진출판사에서는 1년 만에 전국 판매왕 자리에 오르는 기록도 세웠다. 특히 학습지 판매사원 경험은 장 회장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

장 회장은 학습지를 판매하면서 국내 학습지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학습지 회사를 따로 세워도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한 장회장은 당시 회사 동료였던 이정자 부회장과 함께 회사를 나와 중앙교육연구원을 설립했다.

장 회장은 학습지에 문제와 해설, 요점 정리 등을 모두 수록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구성으로 중학생 학습지 시장을 평정한다. 이후에는 첨삭지도 서비스를 도입하고, 학습지명을 ‘빨간펜’으로 바꿔 지속적인 성장을 했다. 1990년대 일본 구몬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낸 구몬학습지 역시 히트를 치면서 교원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학습지 업계 관계자는 “교원은 새로운 구성과 서비스를 앞세워 1990년대 국내 학습지 시장을 장악해 갔다”며 “이러한 성공은 교원이 2000년대 들어 정수기와 비데, 호텔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발판이 됐다”고 말했다.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 한국일보 사진 자료

성장 엔진 꺼진 학습지ㆍ정수기

교원의 성장 과정은 웅진그룹과 매우 비슷하다. 교원과 웅진 모두 학습지 방문판매 사업으로 회사 기틀을 닦은 뒤 정수기와 비데 등 생활가전 판매 사업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장평순 회장이 웅진출판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만큼 일각에서는 장 회장이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답습해 회사를 키워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회사의 마지막 행보는 달랐다. 웅진은 건설과 태양광 등으로 사업 영역을 과도하게 넓혔지만, 교원은 학습지와 정수기 판매 등 현재 사업에 집중하는 안정적인 길을 택했다.

그 결과 해체 수순을 밟은 웅진과 달리 교원그룹은 교원(학습지ㆍ정수기), 교원구몬(학습지) 등의 계열사를 통해 연간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국내 대표 방문판매 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

문제는 학습지와 정수기, 비데 등 방문판매 시장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학습지 시장은 신규 고객이 늘지 않는 포화 상태에 도달한지 오래고, 정수기 등 생활가전 시장의 경쟁도 심해지고 있다. 정수기 시장에선 부동의 1위 코웨이가 버티고 있는 가운데 SK네트웍스, 현대백화점, LG전자 등 대기업들까지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시장 상황 악화는 고스란히 교원 실적에 반영되고 있다. 학습지를 제조ㆍ판매하는 교원구몬 매출은 2010년 6,812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인 하향 곡선을 그려 지난해 6,002억원까지 떨어졌다.

2012년 정수기 제조회사 교원L&C와 합병한 교원 매출도 지난해 4,750억원에 그쳐 최고점을 기록했던 2013년(5,015억원) 대비 5.2% 감소했다.

생활가전 업계 관계자는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들이 생활가전 시장에 뛰어들면서 교원 등 중견기업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며 “대기업 공세에 효과적으로 시장을 지키는 것이 교원의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장남이 총대 멘 상조 사업도 적자

학습지와 정수기 등 기존 사업의 부진은 교원그룹이 상조 사업을 추진하게 된 계기가 됐다. 교원그룹은 2010년 9월 장례식과 장의 관련 서비스업 진출을 위해 교원라이프를 설립하고 상조 사업에 본격 뛰어든다.

그룹의 새 먹거리 발굴이라는 중책을 맡은 사람은 장평순 회장의 장남 장동하(35) 씨였다. 동하 씨는 지난해 교원라이프 대표에 취임하면서 회사 지분 100%(장동하 외 특수관계인 1인)를 보유한 최대주주 자리도 꿰찬다. 교원라이프가 향후 교원그룹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 이유다. 앞서 장동하 대표가 지분 70%를 보유했던 정수기 제조사 교원L&C가 교원과 합병하면서 장 대표는 그룹 지주사격인 교원의 주요 주주 명단에도 손쉽게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그룹의 신 성장동력으로 낙점된 상조관련 사업도 기존 학습지, 정수기 사업처럼 부진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교원라이프는 실적을 공개한 2014년 이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원라이프는 지난해에도 매출(29억원)에 육박하는 2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신규 회원 증가로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으나 광고 선전비와 지급수수료 지출도 증가하면서 수익구조가 악화돼 좀처럼 흑자로 돌아서지 못하고 있다.

상조 업계 관계자는 “상조 업체 10곳 중 5곳은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질 만큼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며 “교원라이프가 단 기간에 흑자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교원라이프가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그룹의 새 먹거리 발굴이라는 교원의 핵심 추진 과제도 흔들리고 있다. 교원라이프의 실적 부진은 유력한 경영권 승계 후보인 장동하 대표의 그룹 내 위상에도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교원라이프 관계자는 “사업 초기라 적자를 보고 있지만 회원이 꾸준히 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수익성도 개선될 것”이라며 “올해 회원수도 30만명에서 50만명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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