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지난해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 그리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선거운동 서버를 해킹한 혐의도 있다. 하지만 ‘소프트파워’에 대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생각을 감안하면 전혀 놀라운 얘기가 아니다. 푸틴은 2012년 한 인터뷰에서 “소프트파워란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외교정책의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과 방법의 복합체”라고 말했다.

크렘린 시각으로는 러시아 주변국의 민주화 혁명이나 ‘아랍의 봄’ 같은 현상은 미국이 새로운 형태의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소프트파워를 활용한 사례다. 소프트파워 개념은 2013년 러시아 외교정책개념에 수용됐다. 2016년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은 소프트파워를 “재래식 군사력으로는 대응하기 불가능한 외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이라며 “하이브리드 위협에는 하이브리드 방법으로 대응하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소프트파워란 무엇일까. 일부에선 군사력을 제외한 모든 행동을 의미한다고 본다. 하지만 틀리다. 소프트파워는 강제적 위협이나 보상을 제안하는 방식 대신, 매혹과 설득 같은 긍정적 영향을 통해 원하는 목적을 거두는 힘이다.

소프트파워는 그 자체로 선악이 없다. 그저 행위의 목표와 방법, 결과로 판단될 뿐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2001년 미국 세계무역센터로 여객기를 몰고 가도록 범인들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보상을 주지 않았다. 그저 그의 생각이 범인들을 매혹시켜 악마적 범죄로 몰고 갔을 뿐이다.

소프트파워는 공격적 목적을 위해 활용될 수도 있다. 많은 나라들이 장기간에 걸쳐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는 대외 여론전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부어왔다. 마셜플랜이나 ‘미국의 소리’ 방송 같은 소프트 파워 기구들은 냉전체제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냉전 이후 러시아 엘리트들은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 그리고 민주주의 확산 노력 등이 모두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위협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응책으로 전통주의 이데올로기나 자주권, 그리고 국가적 배타주의 같은 소프트파워를 개발했다. 러시아 의도대로 헝가리 같은 나라에서는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자유 제한적 민주주의’를 칭송하며 호응했다. 러시아 국경 지역의 빈곤한 중앙아시아 국가 등에서는 민족 이동을 유발했고, 서유럽에서는 우익 포퓰리즘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정보전’도 상대를 약화시키기 위해 공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부정적 소프트파워’로 볼 수도 있다. 상대의 가치를 공격해 상대가 축적한 매혹 요소를 훼손, 소프트파워를 약화시킬 수 있다. 드러난 증거에 따르면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하기 시작한 2015년 당시 러시아의 목표는 그저 미국 민주주의에 흠집을 내고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게 목적이었다. 푸틴을 칭송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은 보너스였을 뿐이다.

지금 러시아의 유럽 정치 개입은 러시아에 위협이 된다고 보는 NATO나 서방의 무력 결집의 매력을 훼손하는 것이다.

정보전은 소프트파워보다 더 극단적이며, 사실 새롭지도 않다. 돈을 써서 여론 조작과 부정선거를 획책하는 건 아주 오래된 얘기며, 방송을 통해 상대를 공격하는 건 히틀러나 스탈린이 선구자였다. 하지만 그런 방송은 지나치게 선전적인 반면 신뢰성이 떨어져 소프트파워가 형성하는 긍정적 매력을 형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신뢰를 중시하는 국제정치 흐름에서는 학생과 청년 지도자 등 개인적 관계를 증진시키는 국가간 교류 프로그램 등이 소프트파워 구축의 훨씬 강력한 견인차다. 하지만 진짜 친구는 존재하지 않고, 가짜 친구는 만들어 내기 쉽다. 댓글 알바와 해킹 등을 통해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오늘날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러시아야말로 이런 기술에 완벽하게 준비돼 있다.

‘러시아 투데이’나 ‘스푸트니크’ 같은 대외용 매체 외에, 러시아는 수많은 댓글 인력과 해킹 전문가들을 고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많은 가짜 정보를 만들어낸다. 2016년 러시아 군 정보당국은 더 나아가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사설 네트워크를 해킹한 정보를 유포함으로써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타격을 가했다.

사이버 기술 진보는 정보전을 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빠르며, 보다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지면서도 적발해내기 어려운 형태로 변화시켰다. 하지만 러시아의 정보전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해 어느 정도 혼란을 일으켰다는 점에서는 꽤 성공적이지만, 긍정적 매력을 창출하는 소프트파워 본래의 관점에서는 실패했다. 런던에서 발행되는 ‘포틀란드 컨설턴시’에 따르면 러시아의 소프트파워 순위는 30개국 중 27위에 불과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러시아의 정보전은 트럼프를 당선시킨 대신, 미국 내 러시아의 긍정적 소프트파워를 크게 훼손시킴으로써 러시아에 우호적인 트럼프 대통령을 곤란에 빠뜨렸다.

가짜 정보의 홍수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은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가짜 정보 자체에 대한 경고와 예방에 나서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 당선이 보여준 것처럼, 그런 경고와 예방은 올해 유럽 선거에서도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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