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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시간’ 앞둔 큰돌고래 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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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시간’ 앞둔 큰돌고래 태지

입력
2017.05.1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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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의 반려배려]

서울대공원 해양관에사는 큰돌고래 태지가 사육사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서울대공원 해양관에사는 큰돌고래 태지가 사육사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얼마 전 남방큰돌고래 금등이와 대포의 활어 먹이 훈련을 보기 위해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 해양관을 찾았다. 금등이와 대포는 이달 중 제주 앞바다로 내려간 뒤 가두리 양식장에서 야생 적응 훈련을 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7월에 방류된다. 하지만 금등이와 대포에 가려진 또 한 마리의 돌고래에게 마음이 갔다. 9년 간 이곳에서 금등이, 대포와 함께 살던 큰돌고래 ‘태지’(17세·수컷)다.

생태설명회장 뒤편 수조에서 금등이와 대포가 고등어를 잡는 동안 태지는 생태설명회장으로 분리됐다. 일본에서 잡혀온 태지는 종도 서식지도 다르기 때문에 제주 바다에 풀어줄 수도 없고, 고래 사냥으로 악명 높은 ‘다이지’로 돌려보낼 수도 없기 때문에 방류에서 제외됐다.

금등이와 대포가 훈련을 마치자 세 마리는 생태설명회장에서 만나 유영했다. 사육사와 가까이 다가가자 미끈한 몸체에 다소 장난끼 어린 사람 눈빛의 돌고래가 다가왔다. 세 마리 중에서도 유독 사람을 따르는 태지였다. 똑같이 생겼는데 어떻게 구분할까 싶었는데 태지의 주둥이가 옆에 다가온 대포보다 짧았다. 태지는 사육사의 손짓에 입도 벌리고, 자기를 봐달라며 애교를 부리는 듯했다. 태지를 따르는 대포는 잠시나마 사람들 곁에 다가왔지만 금등이는 멀리서 헤엄을 칠 뿐이었다.

태지는 그동안 돌고래쇼와 생태설명회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했다.
태지는 그동안 돌고래쇼와 생태설명회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했다.

태지는 추정나이가 23~26세인 금등이와 대포보다도 나이도 어리고 종도 다른데 그 동안 잘 지냈을까. 바다에선 이렇게 세 마리가 그룹이 될 일이 전혀 없었을 테지만 돌고래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사회관계를 형성했다. 처음에는 태지가 ‘자발적 왕따’였다. 서울대공원에 온지 반년이 지나도록 구석에서 나오지도 않고, 사육사뿐 아니라 다른 돌고래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사육사들은 태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교감을 위해 노력했고 결국 태지는 마음을 열었다. 지금은 태지가 생태설명회장에서도 이른바 ‘에이스’며 서열도 1위다. 1년 전부터는 대포가 태지를 따르면서 금등이가 오히려 소외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태지에게 이제 이별의 시간이 돌아온다. 태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친구들뿐 아니라 서울대공원도 떠나야 한다. 돌고래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 이곳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서울대공원은 태지를 지방의 한 고래연구소에 보내는 것을 논의 중이지만 태지가 바뀐 환경에 잘 적응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금등이와 대포가 방류되면 이제 국내에는 8개 시설에 태지를 포함 38마리의 돌고래가 남게 된다. 제주에서 잡힌 남방큰돌고래는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귀한 생명이고, 일본이나 러시아 등에서 잡힌 큰돌고래나 벨루가(흰돌고래) 등은 수족관에서 살아도 되는 생명은 아닐 텐데 남겨진 돌고래들에게 미안해졌다.

장난끼 가득한 눈의 태지. 박창희 서울대공원 사육사는 “카메라 여럿 해먹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돌고래들의 장난으로 언론사들의 카메라가 그동안 많이 손상됐다고 했다.
장난끼 가득한 눈의 태지. 박창희 서울대공원 사육사는 “카메라 여럿 해먹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돌고래들의 장난으로 언론사들의 카메라가 그동안 많이 손상됐다고 했다.

핫핑크돌핀스, 어웨어 등 동물보호단체와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남은 돌고래들을 위해 현재의 수족관을 모두 재점검하고, 시설을 폐쇄해야 할 곳의 돌고래들은 바다쉼터를 만들어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렇게 되면 태지에게도 야생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바다에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

실제 호주에선 국립공원에서 큰돌고래를 위한 바다쉼터를 만들어 운영 중이며 미국, 캐나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쉼터 부지 선정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쉼터 설립은 비용이나 인력 등의 문제로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금등이와 대포는 이제 먼저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 태산이, 복순이를 만나러 간다. 17, 18년의 수족관 생활은 잊고 바다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또 태지를 비롯 남은 돌고래들에 대한 관심도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가 잡아온 귀중한 생명들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다.

글·사진=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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