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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포커스] 아이돌 CD 1,000만장 시대... 음반 가치는 폭락 '역설'

입력
2017.05.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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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음악 팬들이 서울 시내 한 음반 매장 앞에서 아이돌 CD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음악 팬들이 서울 시내 한 음반 매장 앞에서 아이돌 CD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음반판매량으로 아이유 제친 라붐의 이변

가수 아이유의 신곡 ‘사랑이 잘’은 지난달 둘째 주와 셋째 주에 멜론 등 주요 8개 음원 사이트의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들은 노래(가온차트 기준)였다. 2주 동안 음원 차트 1위를 휩쓴 ‘사랑이 잘’은 같은 달 28일 KBS2 음악 순위 프로그램 ‘뮤직뱅크’에선 정작 1위를 하지 못했다. 그룹 라붐이 ‘음원 깡패’ 아이유의 발목을 잡았다. ‘비결’은 높은 음반 판매량이었다. 라붐의 새 앨범 ‘미스 디스 키스’는 발매 첫 주인 4월 둘째 주에 2만 9,000여 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다. 음반 점수에서 무려 2,344점을 얻어, 앨범 발매 전 같은 부문에서 0점을 기록한 아이유를 압도해 정상을 차지했다. 라붐의 새 앨범 타이틀곡 ‘휘휘’가 같은 기간 음원 주간 차트 100위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반향이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변이나 다름 없다.

히트곡을 찾기 어려운 그룹은 어떻게 앨범 발매 한 주 만에 음반을 3만 여장이나 팔아 치울 수 있었던 걸까. CD에서 음원으로 소비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지 오래인 음악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현상의 빛과 그늘을 살펴봤다.

5년 만에 첫 1,000만장 돌파… 음반 시장의 예상 밖 부활

음반 시장은 죽었다? 편견이다. 오히려 부활하고 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판매량이 약 40% 폭증했다. 한국일보가 음원과 CD 소비량을 조사하는 가온차트에 의뢰해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연도별 음반 판매량(상위 400위 합계)을 확인한 결과다. 지난해엔 1,080만 여장의 CD가 팔렸다. 2015년(약 838만장)에 비해 판매량이 23% 늘었다. CD 판매량 집계를 시작한 2011년 이후 역대 최고치로, 연간 판매량이 1,000만 장을 넘기기는 지난해가 처음이다.

점점 줄어들 줄 알았던 CD 판매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데는 아이돌 시장의 성장이 큰 힘이 됐다. 2012년 데뷔한 엑소가 이끌던 한류 K팝 시장은 지난해 그룹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가 가세해 크게 넓어졌고, 아이돌 팬덤도 커졌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카라의 뒤를 이을 걸그룹의 부재 등으로 시들했던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지난해 아이오아이 데뷔와 세븐틴의 도약 등으로 되살아나며 자연스럽게 음반 시장도 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 전세계적으로 음반 시장이 축소될 것이란 전망이 쏟아진 가운데, 2011~12년 일본에서 그룹 AKB48에 대한 국민적 관심으로 CD 판매량이 폭증한 사례와 유사”(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원)하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낸 앨범 ‘윙즈’로 75만 장을, 트와이스는 ‘트와이스코스터-레인1’으로 35만 장을 각각 팔아 치우며 음반 시장 붐을 이끌었다.

걸그룹 트와이스가 15일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열린 네 번째 미니앨범 '시그널(SIGNAL)' 발매 쇼케이스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걸그룹 트와이스가 15일 오후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열린 네 번째 미니앨범 '시그널(SIGNAL)' 발매 쇼케이스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돌 CD 1,000만장 시대 돌입… 사재기 의혹ㆍ화보집 전락 ‘거품’

문제는 성장의 과정이다. 지난해 음반 판매량에서 아이돌(솔로 포함)의 점유율은 94.3%에 달했다. 팔린 CD 100장 중 94장이 아이돌 음반이었던 셈이다. 아이돌에 대한 의존도는 해가 갈수록 높아져 시장의 불균형 성장에 대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5년 동안 아이돌 CD 판매량이 510만 여 장에서 1,000만 여 장으로 껑충 뛰었을 때, 그 외 가수의 CD 판매량은 160만 여 장에서 60만 여 장으로 약 40%로 줄었다. 음반 시장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양적 성장과 달리 질적 성장은 여전히 답보 수준이다. 일부 아이돌의 CD 판매량이 광고사의 대량 구매로 갑자기 뛴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장의 활황에 거품이 끼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라붐은 지난해 8월 낸 앨범 ‘러브 사인’을 발매 첫 주 2,100여 장을 팔았으나, 다음 작인 ‘미스 디스 키스’의 경우 같은 기간 판매량이 3만 여장에 달해 사재기 의혹에 휘말렸다. 라붐의 소속사인 글로벌H미디어에 따르면 라붐의 광고주인 S사가 자사 이벤트용으로 유통사를 통해 직접 CD를 구입해 판매량이 올랐다.

그룹 라붐이 지난달 KBS2 '뮤직뱅크'에서 높은 음반판매량으로 아이유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해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KBS 방송 캡처
그룹 라붐이 지난달 KBS2 '뮤직뱅크'에서 높은 음반판매량으로 아이유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해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KBS 방송 캡처

여러 음반 업계 종사자에 따르면 광고주의 아이돌 CD 프로모션용 구매는 비일비재하다. 음반 업계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한 해외 가수 음반판매량이 지난해 갑자기 증가해 알아보니 한 금융회사에서 5,000장을 따로 구매했더라”고 귀띔했다.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광고주는 음반제작자나 관련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 사재기 관련 규제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광고주의 프로모션용 CD 구매를 기획사가 사재기 수단으로 악용할 여지가 있고, 광고주도 CF 계약을 맺으면 가수와 특정 관계가 성립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법 개정이 필요하다”(김상화 음악평론가)란 지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 관계자는 “(음반 사재기 관련) 민원도 있어 광고주가 음악산업관계자에 포함되는 지 여부에 대한 법률 검토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이돌 음악 소비자들이 CD를 사는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음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 CD에 들어 있는 스타의 포토 카드를 수집하고, 팬 사인회 당첨을 위한 도구로 CD를 산다. 아이돌 기획사들은 같은 곡이 수록된 CD를 멤버별 사진으로 따로 찍어 중복 구매를 부추긴다. 이로 인해 중고 음반 시장엔 아이돌 CD가 매물로 넘친다. CD에 든 포토 카드만 빼고 CD를 되파는 식이다. 중고 음반을 다루는 알라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고 CD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8%가 늘었다. 화보집으로 전락한 CD의 현주소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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