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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홍준표 24%와 보수의 선택

입력
2017.05.1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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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멸상태서 2위 도약은 기적" 자찬

책임ㆍ헌신 등 보수철학 전방위 훼손

홍 역할ㆍ관계 재정립이 한국당 살길

그림1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취임식 직전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를 방문해 정우택 원내대표를 만나고 있다. / 오대근기자
그림1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취임식 직전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를 방문해 정우택 원내대표를 만나고 있다. / 오대근기자

홍준표가 얻은 24.0%는 많은 걸까 적은 걸까. 희망의 씨앗일까 몰락의 경고일까.

자유한국당은 "모든 것이 불리하기만 했던 악조건 속에서 솔직히 이만큼 성취한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했다. 그렇게 여길 법도 하다. 대통령 탄핵과 함께 궤멸상태에 빠진 보수세력에 그는 9회 말 등장한 구원투수였다. 시작은 미미했다. 반기문 황교안 등 앞서 등판했거나 불펜에 있다가 제풀에 나가떨어진 후보들에 비해 체급이 낮은 데다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의 피의자 딱지도 완전히 떼지 못했다.

진격 속도는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2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게 2월 중순인데 3월 말 자유한국당 후보로 선출됐으니 정치시계로는 유례 없는 일이다. 박근혜 탄핵심판 무효를 외치는 '태극기 부대' 등 길 잃은 우파 보수의 세결집이 주요 자양분이 됐으나 '홍카콜라'라 불린 그의 개인기도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선거전이 시작된 4월 중순까지도 여론조사에 나타난 지지율은 한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적폐 청산 및 미래 대비가 화두였던 조기대선에서 막말과 네거티브 등 거꾸로 가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일관한 그에게 확장성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기회는 TV토론에서 찾아왔다. 안철수의 경직성과 헛발질에 실망한 영남 쪽 보수가 홍준표의 공격성과 무모함을 미덕으로 여긴 것이다. 이것만으로 부족하자 그는 박물관에나 가 있어야 할 흉기를 서슴없이 꺼내 들었다. 이른바 종북 몰이 색깔론과 지역감정이다. OX로 답할 수 없고 답해서도 안 되는 질문으로 정체성 의혹을 부추기고 "저쪽 동네는 90% 몰표를 주는데 이쪽도 80%는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노골적 선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기를 쓰며 얻은 게 785만여표, 24%다. 이 중 324만여표가 TKㆍPK 등 영남권에서 왔다. 그 덕에 80여만표 차로 안철수를 제치고 실버크로스를 이뤘지만, 골든크로스까지는 역대 최대인 550만여표나 부족했다. 대통령 탄핵 사태를 초래한 책임을 통감하고 쇄신과 헌신을 약속하며 보수의 가치를 다시 세워야 할 무대에서 가장 퇴행적인 칼을 휘두르며 스스로 무너진 결과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그가 이 결과를 예상했다는 듯이 선거 당일 밤 서둘러 패배를 인정하며 "자유한국당을 복원한 것에 만족한다"고 자평한 데 이어 어제 "(보수우파 대통합으로) 복원된 당을 더욱 혁신하고 쇄신해 천하대의에 따르는 큰 정치를 하자"고 말한 것이다. 배제와 적대로 쌓은 24%의 모래성에서 천하대의와 큰 정치를 논의하자는 가당찮은 얘기다.

이 24%는 '지겟작대기론'을 펼치며 선거 사흘 전 느닷없이 당원권 정지 친박계 복권과 바른정당 탈당파 일괄복당을 협의조차 없이 직권으로 결정한 반칙과 편법의 산물이기도 하다. "TK에선 살인자는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 않는다" 는 조폭 리더십의 전형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 24%를 위해 우리 사회가 오래 고민하며 공감대를 키워 온 가치들, 예를 들어 양성평등이나 성 소수자 문제 등이 일거에 혐오나 배척의 대상으로 전락한 점이다. 남녀 역할을 하늘이 정해 놨다거나 동성애는 하늘의 뜻에 반하니 엄벌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펴는 그에겐 세월호도 해난사고이고 이젠 잊어야 할 일이다. 한 사회가 수년 혹은 수십 년의 논쟁을 거치며 어렵게 가꿔 온 가치와 평판을 단번에 박살내면서도 '돼지 발정제' 논란은 젊은 치기로 덮는 게 '홍카콜라 24’의 본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4%의 기적을 자찬한 자유한국당의 선대위 해단식에서 박수는 없었다. 합리적 보수가 등돌린 24%를 위해 보수의 품격과 가치를 내팽개친 것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24%의 주인공은 금명간 휴식과 구상을 위해 미국으로 간다고 한다. "남은 세월이 창창하니 세상이 나를 다시 부를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한다. 터미네이터를 흉내 내며 "돌아올 거야(I'll be back)"라고 말하는 듯하다. 자유한국당은 이제 결단해야 한다. 홍준표와 함께 두 번 죽을 것인가, 잠시 죽음으로써 다시 태어날 것인가.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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