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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나쁜 기자’가 되고 싶은 참회록

입력
2017.05.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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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인들이 지난 1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체육인 1만명 문재인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을 하고 있다. 안민석 의원실 제공
체육인들이 지난 1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체육인 1만명 문재인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을 하고 있다. 안민석 의원실 제공

‘꼬리’는 승마에서 밟혔다. 돌이켜보면 4년 전이다. 하지만 당시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퍼즐의 한 조각임을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 변명 같지만 그저 그런 학부모의 흔히 있는 판정 불만쯤으로 치부했다. 하물며 정윤회씨도 몰랐고, 최순실씨는 더더욱 금시초문이었다.

정윤회- 최순실 부부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대회 판정불만이 단초였다. 2013년 4월 경북 상주에서 열린 전국승마대회에 출전한 정유라 선수가 은메달에 그치자, 불만을 품은 최순실씨가 모처에 전화를 했고, 이후 경찰이 심판들을 상주경찰서로 데려가 심사 경위를 추궁했다는 것. 눈치 없이 금메달을 정유라의 경쟁 선수에게 넘긴 심판들에 대한 대가는 참혹했다. 졸지에 ‘불공정 세력’으로 매도 당한 이들은 더 이상 승마계에 발을 붙일 수 없었다. 대회를 주관한 승마협회는 청와대의 지시로 문체부의 강도 높은 뒷조사를 받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한 점 의혹 없는 보고서를 올린 노태강 문체부 체육국장은 대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찍혀, 광야에 내팽개쳐졌다. 노 전 국장은 최근 (박 전 대통령이) 유독 승마를 챙긴 이유를 알 수 없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고 참담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걸림돌이 사라지자, 삼성전자를 앞세워 승마협회 새 집행부를 접수한 최씨는 외동딸 정유라의 가슴에 어렵지 않게 태극마크를 안겼다. 정씨는 이듬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최씨의 지극 정성에 ‘부응’했다. 이 금메달은 그 해 연말 이화여대 체육특기자 면접시험장에서 다시 한번 위력을 발휘했다. 박영수 특검팀에 따르면 이대는 면접 대상자 21명 중 정씨에게만 금메달을 목에 건 채로 시험장 입실을 허용했다. 정씨에게 승마와 금메달은 대학 입시를 무사 통과하는 ‘마패’였던 셈이다.

언뜻 승마를 지렛대로 삼아 잘 짜여진 것 같지만 한편으로 어처구니없는 국정농단 시나리오의 서막이었다. 이후 들불처럼 번진 촛불시위가 지난 겨울 전국을 달궜고, “이게 나라냐” 라는 분노가 방방곡곡 메아리 쳤다. 결국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대통령 파면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오늘 제19대 대통령을 맞이하는 새 아침의 해가 밝았다.

언론학 교과서에 가장 먼저 나오는 대목은 ‘언론= 감시견’이라는 문구일게다. 박근혜 정부가 어둠 속에서 국정농단을 획책하고 일삼을 때 그 많은 감시견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현직기자로서 자괴감이 든다. 더구나 스포츠에서 비롯된 국정농단이 아니었던가. 체육 역시 사회를 구성하는 한 분야임은 굳이 말할 나위조차 없다. 수많은 개인들의 이해관계가 상충되고 그런 갈등들이 합의된 룰(Rule)에 의해 해소되는 절차를 밟아야 제대로 굴러가는 사회다. 그러나 최씨 모녀는 박 전 대통령의 비호아래 온갖 반칙과 특권을 일삼고, 룰과 시스템을 무너뜨렸다. 전문가 집단 중에서 유독 체육인들이 이번 대선에 가장 앞장서서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으로 이어진 이유다. 위로는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김응용 전 사장에서부터 아래로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까지 무려 1만 명이 이름을 올렸다. 그런 만큼 사익추구에 동원된 시스템 회복을 위해 체육인들이 민주정부 3기에 거는 기대 또한 클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내세운 대선 슬로건 ‘나라를 나라답게’는 곧 ‘스포츠를 스포츠답게’가 아닐까. 일찍이 공자는 정치에 대해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君君 臣臣 父父 子子)한다”라고 설파했다. 문 당선인 역시 “상식대로 하면 성공하는 세상, 정의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피부로 느끼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를 위해선 언론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진영논리에 휩싸여 편을 가르는 언론이 아니라, 권력자의 궤도이탈에 가차없이 휘슬을 부는 언론, 그런 맹렬한 감시견 같은 언론인의 자세를 다시금 가다듬는 아침이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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