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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돌잔치 축하 사절단 단원의 자세?

입력
2017.05.0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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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제가 사진 찍어 드리겠습니다!” 4월 중순 어느 날 내게 조심스레 의견을 물어 온 한 인생 선배의 부탁에 망설임 없이 답을 했다. 사월 초파일에 지방에서 열리는 한 아이의 돌잔치에 와서 사진을 찍어줄 수 있겠냐는 얘기였다. 선약으로 잡힌 처가 식구들과의 여행일정까지 미루면서 무조건 달려가겠다고 했다. 늘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선배의 부탁이기도 했지만 첫 생일을 맞은 이 아이와 엄마의 아주 특별한 잔칫날에 ‘전문 찍사’로 꼭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설 정도로 이유는 충분했다. 선배는 곧 ‘돌잔치 축하 사절단’이라는 이름의 단체 채팅방에 나를 끼워주었다. 채팅방은 잔칫날이 다가올 때까지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서로 일면식도 거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사절단으로 ‘간택’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뭔가 흥겨운 놀이터를 만난 듯 즐거워했다. 단원의 면면들 또한 무척이나 이채로웠다. 서울, 대전, 과천, 의왕을 비롯해 멀리 바다 건너 호주에 사는 사람까지, 직업도 요리사, 노동운동가, 변호사 등등 다양한 이들이 한 아이의 첫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들이며 애를 써주었다. 그들을 포함해 나 자신도, 많은 이들의 격려가 필요한 아주 특별한 돌잔치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었다.

사월초파일인 5월 3일 오후. 엄청난 교통체증을 뚫고 잔치가 열리는 충남 천안의 식당에 단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주인공인 ‘준이(가명)’와 두 살 터울 누나인 ‘솜이(가명)’ 그리고 이 두 아이의 엄마 ‘숙희(가명)’씨와도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다소 그늘 진 얼굴이지만 쑥스러운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한 숙희씨는 잔치가 열리는 두 시간 내내 어린 준이를 꼭 안은 채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미래의 꿈을 가늠해보는 ‘돌잡이’ 순서 때 준이가 청진기와 명주실을 붙잡자 참석한 손님들이 더없이 흐뭇해했다. 친가족 없이 치르는 돌잔치 속에서 꿋꿋이 웃음을 잃지 않던 숙희씨는 친구들과 참석자들의 ‘행복해!, 사랑해!’라는 응원과 지지의 릴레이 덕담을 듣다가 한동안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숨을 죽이며 이 모든 순간들을 그들에게 기록해주기 위해 카메라 프레임에 집중했다.

숙희씨는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을 받아 보육원에서 자랐다. 가족의 따뜻한 보호와 사랑 없이 어른이 되면서 외로움이 많았다. 같은 처지였던 연하의 남편을 만나 일찌감치 결혼을 한 이유도 외로움 때문이었다. 다소 이른 스물 네 살의 나이에 엄마가 된 숙희씨의 소망은 오로지 따뜻하고 안전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철없는 외도로 인해 지금은 혼자 두 아이를 부양하면서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중이다. 소년소녀가장 임대주택에 둥지를 튼 숙희씨의 경제상황은 몹시 어렵다.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가며 어렵게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도 했지만 전기세 체납이나 준이의 병원비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등 좀체 어려운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들마저 보육원에 보낼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고단한 현실의 무게를 덜어내려 애쓰고 있다.

이번 돌잔치는 3년 째 숙희씨를 돕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 ‘위기청소년의 좋은 친구 어게인’ 최승주 대표와 처음 내게 사진을 부탁한 선배인 조호진 시인이 주변의 도움을 모아 일체의 비용을 대어 열렸다. 여느 잔치와 다름없이 아이의 첫 해 살이를 축하하는 마음들이 모여 소박한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두 사람은 숙희씨가 두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삶을 이루어나가길 바란다는 축사를 건넸다. 그 순간 숙희씨가 어린 준이의 몸을 단단하게 받쳐 안은 채 양 손에 한껏 힘을 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숙희씨의 여문 마음이 내게도 와 닿는다. 준이와 숙희씨의 삶에 내가 누른 셔터 소리가 작은 힘이 되기를 뜨겁게 바래본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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