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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인사이드] 영원무역, ‘등골브레이커’ 거품 꺼진 뒤 영업이익률 급감

입력
2017.05.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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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이스 제조사 영원아웃도어

공정위의 고가판매 제동에 흔들

2011년 20% 기록한 영업이익률

지난해 4%대로 쪼그라들어

중간지주사 홀딩스 실적도 내리막

사측 “투자 등 다른 요인 있어

판매가격 변동 직접 연관은 무리”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한국일보 사진 자료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한국일보 사진 자료

2010년 12월 방글라데시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던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국내 언론들은 앞다퉈 이 소식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단순히 남의 나라에서 발생한 노동자 시위가 아니라 국내 대표 아웃도어 업체인 영원무역이 채용한 방글라데시 근로자들이 일으킨 폭동이었기 때문이다.

폭동은 3명의 사망자와 200명 이상의 부상자를 발생시키는 등 적지 않은 피해를 남겼다. 또 영원무역처럼 저임금 해외 노동자를 고용해 제품을 만드는 국내 업체들의 글로벌 경영관리 능력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영원무역 방글라데시 공장에서는 2014년에도 노동자 시위로 1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다치는 사건이 재발했다.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그 동안에는 기업이 해외에서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면 무조건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강했다"며 "하지만 영원무역 방글라데시 사태 이후에는 글로벌 경영관리 능력이 없는 회사가 해외서 공장을 운영한다고 하면 리스크가 부각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말했다.

해외 저임금 노동력 활용해 급성장

영원무역은 1974년 당시 27세 청년 사업가인 성기학(70) 회장이 설립한 무역중개업체 영창실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가발ㆍ스웨터 수출업체인 ‘서울통상’에 다니던 성 회장은 해외 바이어와 인맥이 쌓이자 직접 무역회사를 차리겠다고 회사를 나와 영창실업을 설립했다.

하지만 단순 무역 중개업으로는 큰 돈을 만지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성 회장은 해외서 수입하던 스키복 등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만들어 팔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경기 성남시에 제조공장을 짓고 본격적인 의류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영원무역은 제조한 스키복을 해외 시장에 납품하며 단순 무역업을 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갈수록 오르는 국내 인건비가 부담으로 작용했다.

성 회장은 생산비 절감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려 1980년 국내 최초로 방글라데시에 의류 제조 공장을 짓고 해외 생산을 시작한다. 세계 최저 수준인 방글라데시의 낮은 인건비는 영원무역의 원가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주며 수익성 개선에도 큰 역할을 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남들보다 빨리 저임금 노동자를 찾아 해외로 나갔던 게 영원무역 성장의 주요 배경이 됐다”며 “영원무역은 지금도 70% 이상의 물량을 방글라데시 등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스페이스 고가 판매 논란에 공정위 과징금

영원무역이 단순한 의류 OEM 업체에서 국내 굴지의 아웃도어 업체로 부상한 배경에는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가 있다. 영원무역은 1997년 노스페이스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하면서 판권도 확보해 직접 판매에 나섰다.

노스페이스 브랜드가 국내에 도입된 1990년대 후반에는 아웃도어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시장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아웃도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제대로 된 경쟁 제품이 없는 상황에서 노스페이스는 해마다 매출 신기록을 쓰며 국내 시장을 장악해 간다.

아웃도어 업계 관계자는 “당시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이 옷을 입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며 “국내 노스페이스 매출도 2000년대 초반 500억원 안팎에서 2010년 5,000억원 정도로 10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고”말했다.

하지만 아웃도어 시장 성장이 둔화되면서 노스페이스 매출도 꺾이기 시작한다. 노스페이스 판매를 담당하는 영원아웃도어 매출은 2014년 5,32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3,901억원으로 26% 감소했다.

고가 판매 논란도 노스페이스 판매 감소에 영향을 줬다. 노스페이스가 최고 판매고를 올리던 2011년경 ‘등골 브레이커’라는 신조어가 등장한다. ‘수십만원에 달하는 노스페이스 패딩을 자녀들에게 사주려면 부모 등골의 휜다’는 뜻의 이 신조어에는 노스페이스 옷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사회적 비판의 뜻이 담겨 있었다.

급기야는 2012년 한 시민단체가 영원아웃도어가 외국에 비해 너무 비싼 가격에 노스페이스를 국내에 판매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요구했다. 결국 공정위는 그해 4월 영원아웃도어가 대리점들의 할인 판매를 금지했다는 이유로 52억4,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영원아웃도어가 고가 판매 정책 유지를 위해 대리점 판매 가격을 사실상 통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원아웃도어 측은 대리점 할인 판매를 막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공정위 조치에 반발해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성기학 회장도 당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노스페이스 한국 판매 가격은 비싸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3심까지 진행된 재판에서 법원은 영원아웃도어가 대리점들의 할인 판매를 금지했다는 점을 인정해 공정위 손을 들어줬다.

A 아웃도어 업체 관계자는 “공정위 조치 후 고가 판매 정책을 유지하던 다른 아웃도어 업체들도 본격적인 할인 판매를 시작했다”며 “판매 자체도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이 때부터 아웃도어 업체들의 매출과 수익성이 본격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 넘던 영업이익률 5%대로 급감

2012년부터 아웃도어 업체들의 할인 판매가 본격화 되자 영원아웃도어의 영업이익률(매출 대비 영업이익)은 급격히 줄어든다. 실제 2010년과 2011년 20%를 넘던 영원아웃도어의 영업이익률은 2012년 10.3%로 반토막 난다. 특이한 점은 2011년이나 2012년 매출은 5,000억원대로 큰 변동이 없었는데도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만 2012년 500억원대로 50% 이상 감소한 것이다.

의류제조업체 관계자는 “통상 10% 미만의 영업이익을 내는 의류업계에서 2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낸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매출 변동이 없는 상황에서 고가 판매 정책이 무너진 후 영업이익률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것은 제품 판매 가격이 영업 이익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아웃도어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든 2015년부터는 영원아웃도어의 매출도 3,000억원대로 줄어든다. 특히 영업이익은 2014년 541억원에서 2013년 303억원을 거쳐 지난해 172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영원아웃도어의 영업이익률은 4.4%로 의류업체 평균 수준에 도달했다.

영원아웃도어의 실적 부진은 그룹 중간지주사인 영원무역홀딩스로도 번지고 있다. 영원무역홀딩스는 영원아웃도어 지분 59.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영원무역의 영업이익률 역시 2012년 16.4%에서 2014년 14.2%, 지난해 8.5%로 해마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영원무역 관계자는 “영업이익 감소에는 투자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며 “판매가격 변동과 영업이익률을 직접 연관 짓기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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