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스토리 작가 염동규씨

초반엔 제보자 찾기도 힘들어
현재는 누적조회수 150만 인기
대학이 대학원생에 부당 소송
웹툰 독자 항의로 취하하기도
“교수의 인권침해 등 대학원 문제
학생 자치가 살아나야 해결 돼”
고려대 사회체육학과의 한 교수가 대학원생을 앞니가 부러질 정도로 심하게 폭행한 사건을 다룬 '슬픈 대학원생의 초상' 시즌1 1화 '교수의 주먹'(왼쪽). 역시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교수의 상습적인 성추행을 다룬 시즌1 4화 '계속할 수 있을까'(오른쪽)의 일부 장면. 고려대대학원총학생회 홈페이지 캡처

“다음 지도는 모텔에서 받는 게 어떠냐”며 대학원생 제자의 몸을 더듬는 교수, 앞니가 부러질 정도로 제자를 폭행하는 교수, 대포통장을 만들어 제자들의 연구 인건비를 빼돌리는 교수….

고려대일반대학원 총학생회가 2015년 11월부터 연재하는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에 등장하는 교수들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대학원에서 설마 저런 일이 일어날까’ 의심이 들만큼 웹툰 내용이 충격적이지만, 지금까지 연재된 총 26편의 이야기는 모두 전국 대학원생들의 제보를 토대로 한 실제 이야기다. 사실 웹툰에 나온 제자들에 대한 온갖 인권침해와 범죄, 부조리는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특별할 것도 없는 흔한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 흔한 이야기가 웹툰으로 그려지는 건 쉽지 않았다. 웹툰의 스토리 작가인 염동규(25)씨는 고대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당시 총학생회 활동을 하며 대학원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웹툰을 기획했는데 “무엇보다 제보자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학문마다 분야가 좁아 말이 금방 퍼지는데다, 논문 통과와 향후 진로까지 쥐락펴락하는 교수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것은 대학원생에겐 미래를 오롯이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말하기를 꺼려했지만, 너무 넓게 퍼져있었다. 염씨가 다녔던 고대 대학원만해도 지난해 6월 지도교수가 대학원생에게 회식자리에서 술을 강권한 후 만취하자 연구실에서 성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학원생이 교수에게 심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염씨는 “사건이 터져도 잘못을 인정하는 교수는 별로 없고, 학교는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대부분 폭로하고 싸우기보다 포기한다”고 말했다. 연재 초반 회당 700~800명이 보는 데 그쳤던 웹툰은 입소문을 타며 현재 7만~20만명이 보고 있으며, 누적 조회수가 150만을 넘는 인기 웹툰이 됐다.

웹툰이 이룬 성과도 적지 않다. 지도교수가 저지른 논문 조작 때문에 연구에 참여했던 성균관대 약대 대학원 졸업생들이 학교로부터 수십억원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당해 빚더미에 앉게 된 사연이 대표적이다. 웹툰으로 이 사건이 알려져 시민들이 학교에 항의하고 동문들이 중재에 나서 결국 학교는 소송을 취하했다. 또 대학원생 인권침해 등에 무감각했던 교수와 대학들도 학생회 시위나 대자보보다 웹툰을 더 두려워하게 됐다고 한다.

웹툰이 자극적인 폭로만 주로 다룰 뿐 아니라 내용 역시 신파적이라는 비판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염씨는 “동의할 수 있는 지적이지만, 오늘날 대학원의 현실이 신파적이기 때문에 웹툰도 신파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웹툰의 한계도 강조했다. 염씨는 “이 웹툰이 우리나라 대학원에 무슨 희망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며 “단발적인 시민들의 항의만으로는 대학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희망을 거는 건 ‘학생 자치’다. 그는 “교수의 인권침해부터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대학원생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이를 연구공간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예컨대 현재 교수들만 참여하는 학과 운영회의에 학생대표를 의무적으로 참여시키는 등 작은 단위에서부터 학생 자치가 살아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지난 5일 서울 안암로 고려대 캠퍼스에서 만난 웹툰 ‘슬픈 대학원생의 초상’의 스토리 작가 염동규씨. 염씨는 “웹툰으로 곪고 곪은 대학원 문제가 터져 나온 것일 뿐, 여전히 희망을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대학원 문제는 대학 교수 학생 등이 모두 나서 이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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