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 5월 5일, 19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최종 투표율이다. 나에게는 그 어떤 세대, 지역의 투표율보다 20대의 투표율을 먼저 보는 버릇이 있다. 20대였을 때야 내가 속한 세대였으니 당연한 관심이었지만, 30대 중반의 나이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전투표율이 공개된 후에도 혹시 세대별 투표율이 미리 공개되는지 찾아보았다. 세대별 투표율은 대선일인 9일 투표 마감 이후 공개되기 때문에 아직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버릇이 생긴 것은 10년 전 17대 대선 후부터다. 당시 20대 한복판에 있던 나는, 선거 결과에 대해 “이 모든 게 20대 때문”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20대가 투표하지 않아서 선거에서 패배했고, 그러니 이제 20대에게 희망을 걸지 않겠다는 말을 다들 공공연하게 했다. 처음에는 왜 투표를 하고도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설사 투표를 하지 않았다 해도 그런 비난을 들을 이유는 없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되었다. 20대의 투표율이 낮은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이고,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을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개인 생활만 중시하는 이기심으로 퉁 치는 것은 게으른 분석이다. 실제로 그 분석이 맞다고 해도,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원인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되찾아올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 정치인들의 일이다. 무엇보다 청년 세대의 표심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 아닌가. 이런 결론에 이르렀음에도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너희들의 탓”이라는 말은 트라우마로 남아, 선거 때마다 20대 투표율을 먼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겨버리고 만 것이다.

이번 투표는 과연 다를까. 알 수 없다. 언론들은 벌써부터 촛불 집회를 통해 2030세대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며 추켜세우고 있지만, 사실 이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이다. 과연 촛불 집회 이전까지 2030세대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나? 세계에서 손꼽히게 국민이 불행한 나라에서 작고 비싼 방에 살며 취업하지 못하는 청년들의 삶 그 자체로 정치다. 지금 청년들에게는 자기 자리에 맞는 방식의 싸움이 있고, 운동이 있다.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성 평등과 페미니즘이 처음으로 이슈로 떠오른 이번 대선 이전에도, 이 나라의 페미니스트들은 무던히 싸워왔고 젊은 여성 청년들은 페미니즘을 통해 세계를 다시 만났다. 이들과 기성 정치 권력의 기준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런 여성 유권자들의 한 표는 당연히 남성 유권자의 그것만큼 값지며,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가치를 향해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승리와 패배의 이유를 더 작은 목소리를 가진 이들을 향해 돌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과연 나만의 기우일까.

나는 항상 “누구 때문에 졌다”고 할 때의 그 ‘누구’였다. 청년이었고, 여성이었고, 소신 투표를 한 유권자였다. 내 목소리는 항상 작거나 들리지 않았고, 안 들어도 괜찮은 것으로 여겨졌다. 긴 촛불의 겨울이 지나고 막 봄이 찾아왔을 무렵, 잠시 작은 희망을 품었다. 계속 이 나라에서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었다. 그 희망을 안고, 나는 페미니즘과 인권, 그리고 청년 정책을 기준으로 내가 뽑을 후보를 결정한 뒤 최선을 다해 지지해왔다. 그리고 투표할 것이다. 나는 이번 대선으로 어떤 후보가 당선된다 해도 특정 세대나 지역, 또는 소수자의 탓을 하지 않을 것이며, 모두 그렇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 더는 뒷자리에서 서성이며 순서를 기다릴 생각도 없다. 이 모든 게 나의 한 표 때문이라면, 나는 더욱 나 자신과 내가 살고 싶은 나라에 내 한 표를 줄 것이다. 30대, 여성, 청년, 비혼, 노동자로서 나의 한 표는, 정확히 당신의 한 표만큼 무겁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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