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富)를 인간 본성과 욕망의 문제로 보고, 신분과 권력의 상관관계에서 해석한 이가 사마천(司馬遷)이다. 사마천 개인의 사정도 있다. 친구를 변호하다가 역린(逆鱗)을 건드린 죄를 범한 그가 속죄금을 낼 돈이 있었다면 궁형(宮刑)의 치욕을 피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자신의 아픔을 딛고 쓴 <사기(史記)> 10대 명편인 ‘화식열전(貨殖列傳)’에는 출신 성분이 아주 낮은 노예, 목장주인, 과부, 재상, 책사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재산을 불려 개인의 행복과 권세를 누린 사례를 예증하면서 ‘부’가 얼마나 자신의 가치를 변화시키는지 파고들었다. 사마천은 제아무리 신분이 높은 왕이나 제후나 대부들도 늘 ‘가난을 근심(患貧)’했으니, 일반 서민의 근심은 당연하다고 보았다.

사농공상의 신분질서 의식에서 과감히 벗어난 사마천은 아껴 쓰고 부지런히 생업에 힘쓰는것이 바른 길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개인의 능력에 따라 빈부 격차가 벌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교묘한 재주를 지닌 자는 돈이 많고 꾀가 없는 자는 돈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일정한 수익창출만 하는 농업이나 공업보다는 변동성이 많아 자산 가치 확장성이 큰 상업을 최고의 위치에 두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자가 된 사람은 반드시 기이함을 활용하여 승리했다(富者必用奇勝)”고 전략적 측면에서 접근했다. 흐르는 물처럼 돈을 유통시키고, 시세의 변동에 따라 민첩하게 사고 팔라고 했다. 그리고는 오(吳)나라와 초(楚)나라의 전쟁 상황을 살펴서 거부가 된 무염씨(無鹽氏), 땅의 정세를 잘 살펴 제철업으로 부호가 된 조(趙)나라 탁씨(卓氏), 노예들을 잘 이끈 덕분에 부자가 된 조간(刁閒) 등의 사례를 소개하고, 재산과 권력의 함수관계를 다음과 같은 숫자로 도식화했다.

“대체로 호적에 올린 보통 백성은 부유함을 비교하여 자기보다 열 배 많으면 몸을 낮추고, 백 배 많으면 두려워하며, 천 배 많으면 그의 일을 해 주고, 만 배 많으면 그 하인이 되니, 이것이 사물의 이치이다.(凡編戶之民,富相什則卑下之,伯則畏憚之,千則役,萬則仆,物之理也)”(‘화식열전’).

돈의 절대적 가치에 대한 현실적인 잣대로서 상당한 부를 축적한 인물군인 범려(范蠡)와 자공(子貢), 백규(白圭), 관중(管仲) 등의 위상을 예로 들어 한 말이다. 사마천은 부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을 서열화할 수 있으며, 그 자체가 막강한 힘을 누린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천하의 진시황도 목축업으로 부자가 된 나(倮)라는 목장(牧長)을 제후와 함께 조회에 들게 할 정도로 예우했고, 큰 부를 물려받은 파촉의 청(淸)이란 과부에겐 누각을 하사했다고 예시했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사람은 부유해야만 인의를 따른다. 부유한 사람이 세력을 얻으면 세상에 더욱 드러나고, 세력을 잃으면 빈객들이 갈 곳이 없어져 따르지 않는다(人富而仁義附焉.富者得勢益彰,失勢則客無所之)”(‘화식열전’).

세속적이며 배금(拜金)주의적 인식이 적잖이 거슬릴 만하다. 사마천보다 약간 후대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권세와 이익을 숭상하고 빈천을 부끄럽게 여겨 ‘화식열전’을 지었다” 는 혹평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런 비판을 예상했던 것일까? 사마천은 다음과 같은 말로 후인들의 불편한 눈길을 피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1년을 살려거든 곡식을 심고, 10년을 살려거든 나무를 심으며, 백 년을 살려거든 덕을 베풀어라. 덕이란 인물을 일컫는 말이다(居之一歲, 種之以穀; 十歲, 樹之以木; 百歲, 來之以德. 德者, 人物之謂也) (‘화식열전’). 제아무리 ‘부’를 추구한다고 해도 최종 결론은 덕을 길러야 하고 그 덕은 백년대계인 ‘인물’, 즉 덕을 갖춘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논지다.

39년 전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통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최상이라는 선부론(先富論) 정책을 내세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의 경구(警句)가 역설적으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청빈한 삶을 지향했던 공자의 정치지침인 “선부후교(先富後敎)” 즉 “먼저 부유하게 하고 나중에 가르치라”는 말과 우연히 일치한 것일까? 아니면 일정한 생업인 항산(恒産)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 즉 항심(恒心)도 없다는 맹자의 경제논리와 연결된 것일까?

공자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게 된 것도 자공의 경제력 덕분이고, 세 차례에 걸쳐 큰돈을 벌어 아낌없이 베푼 범려가 “천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거리에서 죽지 않는다.”고 한 말을 인용한 사마천의 시각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럼프의 사드 비용 발언과 FTA 재협상 카드, 중국의 지속되는 사드 보복을 놓고 변변한 대응 하나 못하는 우리 처지를 보면서 국민들의 자존심은 참담할 정도로 구겨졌다.

저들은 지금 냉철한 경제논리와 비즈니스 마인드에 따라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여전히 사농공상의 틀에 갇혀 ‘부’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한 우리는 더 깊은 상처를 받게 되리란 안타까운 마음에 오늘 다시 ‘화식열전’을 들추어 본다.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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