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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생태!] 고목 팽나무의 은밀한 속삭임 “기생곤충아, 너 없인 못 살아”

입력
2017.04.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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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 몸서 새끼 키우는 기생곤충

알 낳고 탈출할 땐 꼭 숙주 죽여

숙주곤충은 알 산란ㆍ성장 막으려

캡슐 만들고 죽은 척하고 자살도

새 삶과 죽음 사이 피말리는 승부

산림 골칫거리 집시나방 등

팽나무의 천적인 해충을 죽여

기생곤충이 역할 해야 생태계 유지

벌목 곤충인 꼬마 나나니가 마취된 나방 유충을 사냥해 자신의 굴로 이동시키는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벌목 곤충인 꼬마 나나니가 마취된 나방 유충을 사냥해 자신의 굴로 이동시키는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기생(奇生)이란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마도 서로가 이득을 취하면서 살아가는 공생(共生)이란 단어에 비해 좋지 않은 느낌들이 스쳐 지나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한 쪽만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모습이 썩 내키지 않기 때문이죠. 오죽했으면 “이 기생충 같은 놈아”란 욕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부터 풀어놓을 이야기는 기생충과는 조금 다른, 숙주곤충의 몸을 빌려 새끼를 성장시키는 곤충, ‘기생곤충(포식기생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기생충은 기생 당하는 생물(숙주)의 몸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살다가 다 자라서 탈출하거나 다음 숙주로 이동해서 자랍니다. 따라서 기생충은 숙주에게 경미한 고통 밖에 주지 않죠.

기생곤충은 다릅니다. 대부분 곤충의 몸에 알을 낳고 탈출할 때 꼭 숙주를 죽이는 특징이 있죠. 그런데 이 기생곤충의 특징은 녹색식물 등 자연에게는 이로울 때가 많습니다. 지금부터 알고 보면 고마운 기생곤충의 세계를 들여다 보겠습니다.

어디선가 그의 익숙한 냄새가 난다

어떤 종류의 곤충이 기생을 하며 살까요? 벌목, 파리목, 딱정벌레목, 나비목, 풀잠자리목의 곤충이 기생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중 기생벌과 기생파리가 보통 과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기생곤충입니다. 지구상에 약 800만~1,000만종의 곤충이 살고 있고 기생곤충은 전체 곤충의 20% 정도인 160만~200만종으로 예측됩니다.

퇴근 무렵 어디선가 솔솔 풍겨나는 치킨냄새에 다들 정신이 혼미해졌던 기억이 있겠죠? 기생곤충도 자신의 먹잇감인 숙주 곤충을 냄새로 알아챕니다. 기생곤충에게 여러 가지 냄새가 기생(산란)의 신호로 받아들여집니다.

첫 번째로 숙주곤충의 먹이식물이 방어할 때 풍기는 휘발성물질입니다. 이 물질은 사실 식물이 해충을 방어할 때 풍기는 물질인데 이것을 기생곤충이 재빠르게 인지를 하는 것이지요. 숙주곤충의 침샘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이 먹이식물로 하여금 터페노이드(terpenoid)와 인돌(indole)이란 물질을 뿜게 만들어 기생곤충을 유인하는 구조입니다.

두 번째는 숙주곤충의 침이나 침과 먹이식물이 반응해서 생기는 냄새입니다. 일부 똑똑한 숙주곤충들은 기생을 피하기 위해 먹이식물을 일부만 먹고 재빨리 다른 곳으로 피해버리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숙주곤충의 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에 의해서 유인되는 경우입니다. 똥들이 많이 쌓여 있을 땐 기생곤충에게 강력한 유인제가 되기 때문에 몇 종류의 숙주곤충은 똥들이 많은 곳을 피하거나 청소를 하는 행동을 합니다. 이 외에도 기생곤충은 부패된 잎, 과일, 수액 등의 냄새를 맡고 숙주곤충의 대략적인 위치를 찾아냅니다.

치열한 공격 뒤에 필사적인 방어

기생곤충과 숙주곤충도 자신들만의 생존법이 있습니다. 일단 여러 가지 화학신호로 유인된 기생곤충이 숙주곤충을 어떻게 공격하는지 알아보죠.

권투선수가 잽을 계속 뻗지 않는 상대방을 공격하기 쉬운 것처럼 기생곤충도 움직이지 않는 숙주곤충을 선택합니다. 특히 곤충의 변태과정 중 움직이지 않는 알과 번데기 시기가 가장 공격하기 쉽습니다. 이런 시기를 공격하는 기생곤충을 난(알)기생곤충과 용(번데기)기생곤충이라고 합니다.

물론 숙주곤충은 기생곤충에게 늘 당하고 살지는 않습니다. 숙주곤충 역시 기생곤충과 여러 가지 복잡한 수 싸움을 합니다. 수 싸움에는 적극적인 방어와 소극적인 방어가 있습니다.

적극적인 방어 중 하나는 곤충의 면역반응 중 캡슐화(encapsulation)라는 것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기생곤충의 알이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오게 되면 지체 없이 알 자체를 면역단백질로 싸버리는 것이죠. 이렇게 함으로써 기생곤충의 알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해서 방어를 합니다.

또 다른 적극적 방어 중 하나는 유충의 ‘꼬리 흔들기’가 있습니다. 기생곤충이 산란을 하려고 다가왔을 때 꼬리를 세게 흔들어서 쫓아 버리는 행동입니다. 간혹 산책할 때 주변에서 꼬리를 흔드는 유충이 있다면 분명히 주변에 기생곤충이 배회하고 있을 겁니다.

소극적인 방어의 형태도 있습니다. 봄철 산행을 하다 보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나비나 나방류의 유충들을 볼 수 있는데 십중팔구는 기생곤충이 다가오자 죽은 척하고 나무에 실을 매달아 번지점프 하듯 땅으로 떨어진 녀석들이죠.

소극적인 방어의 가장 극적인 형태는 ‘염세주의자’처럼 자살을 하는 경우입니다. 기생을 당하면 일부러 먹이를 안 먹고, 면역성이 떨어져 결국 다른 병원균에 의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기생곤충과 함께 죽는 것이죠. 자신의 몸을 빌려 양육된 기생곤충이 더 많은 자신의 동료들을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일종에 ‘살신성인’이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홍다리조롱박벌과 독나방살이고치벌, 이들이 사는 법

홍다리조롱박벌이 여치류 먹잇감을 사냥한 뒤 굴의 입구까지 옮기는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홍다리조롱박벌이 여치류 먹잇감을 사냥한 뒤 굴의 입구까지 옮기는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애석하게도 한국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기생곤충은 Idiobionts와 Koinobionts로 나눌 수 있습니다. Idiobionts가 기생곤충이 숙주를 마비시켜 다음 발생단계로 성장하지 못하게 한 뒤 숙주를 먹고 살아간다면 Koinobionts는 기생곤충이 숙주를 마비시키지 않고 숙주가 일정 정도 성장한 뒤에 숙주를 먹고 살아가는 종류입니다. Idoibionts는 조롱박벌, 대모벌, 나나니 등이 대표적이고 Koinobionts는 대부분의 기생곤충이 이에 속합니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초등학교의 여름방학이 한창일 때, 시원한 바람이 살랑대는 그네와 철봉 주변의 큰 느티나무 아래에선 삶과 죽음 사이의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번 기회에 먹이를 잡아서 먹이의 몸에 알을 낳지 않는다면 나에게 다음 세대가 없다고 생각하는 홍다리조롱박벌과 아직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남았는데 잡혀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여치류 사이의 피 말리는 신경전입니다.

홍다리조롱박벌은 여름에 배수가 잘 되는 땅을 골라 다음세대를 위한 굴을 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린 여치나 메뚜기류를 사냥하러 나섭니다. 아직 가을이 아니기 때문에 어린 메뚜기류를 쉽게 사냥할 수 있죠. 사냥감은 산 채로 또는 죽은 채로 가져오지 않습니다. 오직 마취만 되어 있는 상태로 가져 옵니다. 여름철이기에 먹잇감이 부패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홍다리조롱박벌은 마취되어 있는 사냥감을 굴 속으로 어렵게 끌고 와서 사냥감의 몸 속에 알을 낳습니다. 아마도 이 알은 부화되어 마취 상태의 신선한 사냥감의 몸 속을 파먹으며 자랄 것입니다.

독나방살이고치벌의 유충이 숙주곤충인 배저녁나방 유충의 몸을 뚫고 나오는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독나방살이고치벌의 유충이 숙주곤충인 배저녁나방 유충의 몸을 뚫고 나오는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Koinobionts에 속하는 독나방살이고치벌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독나방살이고치벌은 전 세계의 산림에서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는 집시나방(매미나방)의 밀도를 조절해주는 아주 중요한 기생곤충입니다. 이 녀석은 나방 유충의 몸에 수 십 개의 알을 낳습니다. 이 알들이 부화되면 나방 유충의 지방체(fat body)를 먹고 자랍니다. 특이한 사실은 독나방살이고치벌의 유충은 처음부터 나방 유충의 몸 속 신경계나 소화계 등은 먹지 않는 다는 것이죠. 처음부터 신경계나 소화계 등을 먹어버리면 나방 유충과 함께 죽기 때문입니다. 독나방살이고치벌의 유충이 번데기가 될 쯤 마지막에 나방 유충의 모든 것을 먹어 버립니다. 이후 나방 유충의 몸을 뚫고 나와 노란 고치를 만듭니다. 이때 나방 유충은 장렬히 전사하게 되죠. 한 5일쯤이 지나면 수 십 마리의 독나방살이고치벌이 고치에서 튀어 나와 다시 짝짓기를 하고 다음 기생 상대를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기생곤충, 팽나무의 홍위병이 되다

독나방살이고치벌 외에도 자연에 이로운 기생곤충은 또 있습니다. 계룡산 동학사 일주문 뒤에는 오래된 팽나무가 있습니다. 족히 수 백 년은 됐음직한 이 팽나무는 수 년 동안 해충에 시달림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 이 팽나무의 해충을 조사한 결과 이 팽나무의 해충들은 기생곤충에 의한 기생률이 무려 70% 이상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오래된 팽나무는 매해 30% 정도만 해충의 피해를 받고 70% 정도는 기생곤충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숙주곤충에게는 기생곤충이 적이지만 팽나무에게는 홍위병 역할을 하는 아주 고마운 존재였던 겁니다. 기생곤충이 없었다면 지금쯤 영양제를 맞거나 일찌감치 고사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미래에도 계룡산 동학사 일주문 뒤 오래된 팽나무에게 고맙단 인사는 받지 못하지만 수 많은 기생곤충은 팽나무의 홍위병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으로 믿습니다. 이처럼 작은 미물인 기생곤충도 이토록 복잡한 생태계에서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을 때 자연의 톱니가 잘 맞물려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국립생태원 조영호 환경영향평가팀장

기생파리에 공격 당한 으름밤나방의 모습. 기생파리는 으름밤나방이 손쓸 수 없게 머리 바로 아래와 가슴 부위에 자신의 하얀 알을 산란했다. 국립생태원 제공
기생파리에 공격 당한 으름밤나방의 모습. 기생파리는 으름밤나방이 손쓸 수 없게 머리 바로 아래와 가슴 부위에 자신의 하얀 알을 산란했다. 국립생태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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