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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유권자가 개처럼 짖어서야

입력
2017.04.2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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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이 눈앞이다.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중립을 가장한 특정 후보 유세가 넘쳐나고 있지만, 모두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투표 거부자의 눈에 보이는 각 후보의 무거운 하자가 지지자들에게는 통 보이지 않거나 알고서도 외면한다. 후보들은 승리하기 위해 자신의 장점은 과대포장하고 경쟁 후보의 약점은 침소봉대하는데, 이들을 지지하는 자들의 신념 역시 똑같은 기제로 움직인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자들은 ‘어게인 2002’를 외치며, 고 노무현 대통령이 못 다한 개혁을 문 후보가 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정작 문재인 후보의 선대위 상황본부장은 무려 김민석이다. 노무현은 2002년 당내 경선에서 이인제를 누르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으나, 노무현을 낙마시키려는 세력들이 당을 뛰쳐나가 정몽준으로의 후보 단일화를 획책하는 후단협(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을 만들었다. 이때 후단협 선두에서 활약하며 정몽준의 국민통합21에 입당한 사람이 김민석이다. 이번 대선에서 문 후보가 당선되면 김도 자연스레 요직을 꿰차게 될 텐데, 문 주위에 수두룩하게 있을 이런 정치 거간꾼들이 개혁보다 더 열심히 할 과업은 아마도 따로 있을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자신을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적임자라고 선전하는데, 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노동계와 더 많은 대화를 필요로 하며 더 치밀한 복지 정책을 요구한다. 하지만 촛불집회를 못 본 체 외면했던 안 후보는 고작해야 국민을 먹이만 던져주면 되는 돼지로 밖에 보지 않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대통령을 이미 모신 적이 있다.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심상정에게 환호하는데, 심 후보는 통진당을 분쇄하고 이석기 전의원을 감옥에 넣는 일을 거들었다. 친박에게 박해 받은 유승민의 정체는 비박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홍군(君), 또는 홍가(哥), 혹은 홍씨(氏)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영국의 선거운동 전문가 마크 팩과 에드워드 맥스필드가 함께 쓴 <선거의 정석>(사계절, 2017)에서 음미할 만한 딱 한 구절은 “상대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끌어오는 것은 비생산적이다”라는 말이다. 두 공저자의 조언처럼 ‘집토끼’라고도 하고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도 하는 골수 지지자는 기회비용만 잡아먹을 뿐 난공불락이다. 승리의 정석은 그 공력을 부동층과 무당파에 쏟는 것이다. 내가 저 구절을 곱씹는 이유는, 저 뻔한 조언이 특별하고 심오한 선거 비법이라서가 아니다.

충성도 높은 데다가 맹목적인 때문에 집토끼가 당해야 하는 슬픔이 있다. 콘크리트 지지층은 어떤 공략에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당선인은 정치적 위기에 빠졌을 때나 타협이 필요할 때마다 가장 먼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적극적인 지지자부터 배반한다. 노무현은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자신의 골수 지지자들을 간단히 배반했고,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자신을 열렬하게 밀어준 노인층의 기초노령연금을 약속했던 것보다 줄였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제3의 길’ ‘갈등 제로 정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따위의 수상쩍은 구호를 앞세워 보수당에 빼앗긴 정권을 18년 만에 찾아온 토니 블레어 노동당 총리는 권력을 잡고 나서 전통적 지지자들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는 정책만 골라서 폈다. 배신의 쓴 열매를 먹지 않으려거든, 내 눈의 내로불남 콩깍지를 떼어내라.

질 들뢰즈는 어느 인터뷰에서 개를 동물계의 수치라고 말했다. 개가 동물계의 수치인 것은 짖기 때문이다. 흔히 동물들은 잘 짖는 것처럼 보이지만, 짖지 않아야 동물이다. 호랑이나 사자 같이 강한 동물이 짖으면 ‘나 여기 있다’고 알리는 꼴이 되니 먹잇감이 다 달아난다. 반대로 약한 동물이 짖으면 맹수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셈이니 살아나기 힘들다. 유독 개만이 주인을 위해서 짖는다. 마찬가지로 칼럼니스트나 논객은 지식계의 수치다. 이들은 원래 자신의 유명세를 위해 짖지만, 선거 계절만 되면 돌연 누군가를 위해 짖기 시작한다. 나는 적어도 개가 되는 것만은 면하고자 한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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