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모두 실패로 임기 마쳐
과잉기대가 ‘허깨비’라는 실망 부른다
자리를 걸고 책임을 지는 수밖에 없어

거의 모두가 선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싶다. 개인적으론 문재인이 앞서는 상황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신이 나진 않는다. 그를 은근히 지지하는 말을 여기서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정치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만에 대해, 다른 한편으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의 막중함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다.

우선, 특히 대통령중심 체제는 벽에 부딪쳤다. 그 체제의 두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프랑스 대선에서 기존 양대 정당은 잉여에 지나지 않았다. 트럼프만 비난할 일이 아니다. 유권자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클린턴과 민주당도 실패했다. 정상적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미국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는 1958년 이래 계속, 9.11 테러 때 잠깐을 제외하면, 내리막길이었다. 그나마 미국과 프랑스에는 대통령 권력을 보완할 장치가 꽤 있다. 미국에는 지방자치가 있고, 프랑스에선 총리에게 국내정치의 권한이 있다. 그것도 없는 우리는 마치 대통령이 도깨비 방망이로 뚝딱, 뭘 만들어내길 바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의 대통령들은 계속 실패하고 있다. 처음에는 6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출발했지만 모두 부끄럽고 한심한 수준에서 임기를 마쳤는데, 결코 우연이 아니다.

냉소를 권하려는 건 아니다. 정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치에 대한 냉소에 빠지지 않으려면, 대통령이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다 허깨비에 실망하기 쉽다. 대통령에 대한 정치 과잉은 정치 혐오로 이어진다. 선거가 끝나면, 정치는 다시 신뢰가 가지 않는 영역이 되기 쉽다.

공약과 관련해서만 이야기해 보자. 현재 후보토론을 비롯한 선거과정이 너무 공약의 ‘선언’에 치우쳐 있다. 공약을 정책의 형태로 제시하는 것은 통치력의 첫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후보들이 제출한 10대 공약집에는 결정적 결함이 공통적으로 있는데, 나열된 공약을 실행하는 실천방식이 대부분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럼 공약을 실행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면 될까? 내 생각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약에 대한 의지와 약속도 말과 선언일 뿐이다. 그래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어도, 대통령이나 정당은 실제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공약 검증도 말싸움에 그치기 십상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옳은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100년 전 막스 베버는 정치인에게 중요한 것은 신념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책임이라고 했다. 중요한 통찰이었는데, 이젠 그걸로 부족하다. 재임 중이나 임기 후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정치적 장치가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루어지는 수준의 공약검증과는 다른 수준에서 정책 검증이 필요하지만, 현재 시스템은 이것을 보장하지 못한다. 다음 선거에서 평가하면 된다고? 임기 중이나 임기 후 결과에 책임을 지는 실질적 과정이 없다면, 선거는 권력게임의 형태로 계속 반복되기 쉽다. 또는 점점 연예홍보의 성격을 띨 것이다. 그것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정치적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과는 한 참 거리가 먼 것은 사실이다. 공약선언과 공약검증이 제한된 효과밖에 가지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는 선거연예와 선거홍보 그리고 뻔뻔스러움을 조장하는 말싸움에 의해 야금야금 잠식된다.

결국 임기 중이나 임기 후 자신의 정치적ㆍ정책적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느냐는 물음만 덩그러니 남는다. 사람들은 지금 교육지옥을 비롯한 여러 지옥에 시달리고 있는데, 단임 임기 내에 어느 후보도 그 지옥 하나라도 부수기가 쉽지 않다. 또 예산이 필요한 정책을 실행할 여유는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크지 않다! 그러니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걸고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그 자리를 거는 일도 말처럼 쉽진 않지만, 그래도 그는 자리를 걸어야 한다. 어쨌든 도깨비 방망이는 없으니까.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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