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외주사 PD의 하소연... "툭하면 담배 음료수 심부름"

방송 현장에선 열정을 담보로 한 저임금 노동이 종종 있다. 사진은 한 드라마 촬영장의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추석부터 설까지 6개월간 단 하루도 못 쉬었어요.”

외주제작사 조연출로 2014년부터 1년간 지상파 교양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던 이도영(27·가명)씨는 당시 근무 환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조연출이 하고 싶다는 대학교 후배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말린다. 그는 “PD라는 직함이 붙어 화려해 보이지만, 현실은 암담해 며칠 만에 도망가는 이들이 많다”며 고개를 저었다.

남부지방으로 촬영을 가는 날이면 그는 새벽 2시 하루를 시작했다. 전날 밤 미리 챙겨둔 방송장비와 소품을 확인하고 운전대를 잡아 현장에 도착하면 새벽 6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카메라 테이프와 소품을 확인한 뒤 대본 숙지 업무까지 마치면 오전 8시 첫 촬영이 시작됐다.

메인 PD가 주요 장면을 촬영할 때 이 PD는 옆에서 카메라 테이프나 배터리를 갈아 끼웠다. 출연자에게 촬영 내용을 설명하고 소품을 정돈하거나, 이동할 때마다 운전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음료수와 담배 구매 심부름 뿐 아니라 선배가 쓴 학위 논문 오탈자까지 살펴야 했다.

노동량만 많은 게 아니었다. 욕설을 듣거나 폭행을 당하기 일쑤였다. 이씨는 “메인 PD가 ‘입봉’(본인 이름으로 제작한 첫 작품)을 무기 삼아 협박성 발언을 했다”며 “어떤 조연출은 편집을 제대로 못 했다는 이유로 메인 PD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했다”고 말했다.

촬영 뒤 사무실로 돌아오면 본격적인 ‘일’이 시작됐다. 영상을 컴퓨터에 저장하고, 촬영한 내용을 시간대 별로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메인 PD가 본 영상에 배경 등 자투리 영상을 붙이라고 지시하면 이를 보조하는 동시에 예고편을 만들었다. 메인 PD에게 1차, 방송사 책임프로듀서(CP)에게 2차 확인을 받은 후 다시 수정본을 만들어 방송을 한 차례 내보내기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끼니는 삼각김밥으로 때우고 의자에서 2~3시간 쪽잠을 자며 수면을 해결하는 게 일상이었다. 이렇게 일하며 번 돈은 한 달에 120만원. 이 정도 임금마저 체납돼 못 받는 이들이 주변에 넘쳤다.

방송사가 아닌 곳에서 영상 컨텐츠를 만들고 있는 이씨는 “군대를 다시 가면 갔지, 방송 제작을 또 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사망 소식을 접하고 “대기업 정규직은 외주제작사보다 나을 줄 알았는데, 별다를 게 없다는 걸 알았다”고 덧붙였다.

방송 제작 환경의 병폐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다. 9년간 외주제작사에서 근무한 김의환(32·가명) PD는 “10여 년 전과 지금 조연출의 생활이 개선된 게 없다”며 “방송 제작비가 감소해 외주제작사는 인력을 축소하고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데도 버티는 이유는 결국 입봉 때문”이라며 “방송에 대한 꿈 때문에 수많은 젊은 친구들이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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