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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감성의 시대에 사랑을 말해도 될까?

입력
2017.04.1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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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시대에 저는 확실히 구세대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옛날 감성에 머물러 요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감성에 많이 뒤쳐져 있고 공감하지 못하는 면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요즘의 그 ‘감성중심’ 자체가 받아들이기 벅찰 때가 있다는 면에서 더 그렇습니다.

우선 좋고 싫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강하게 표현하고, 많이 표현하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좋고 싫은 것을 잘 표현하지 않았고, 남자들에게는 특히 좋고 싫은 것을 표현하는 건 얕은 사람, 가벼운 사람, 덕이 덜 닦인 사람이나 하는 짓이었지요. 그래서 군자라면 모름지기 그렇게 쉽게 감정이나 감성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좋고 싫은 것을 표현하더라도 은근히 표현하였지요. 그래서 ‘완전 좋아’라는 말이 처음 쓰일 때 저에게는 그 과잉이 한동안 생경했고, 그 과잉에 대한 거부감이 들면서도 그래도 같이 맞춰주기 위해서 ‘그렇게 완전 좋아?’라고 웃으며 묻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속생각은 ‘그렇게 완전 좋은 것이 있으면 완전 싫은 것도 많겠네’하고 생각하였지요. 그래서 구김살 없이 솔직히 표현하는 것이 좋고, 싫어도 싫다고 표현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싫어도 좋다고 표현했던 옛날의 그 위선적이었던 것보다는 맑아서 좋다고 한편 긍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을 했지요.

그런데 이 ‘완전 좋아’보다 더 생경하고 거부감이 드는 표현이 ‘나 너를 좋아해!’입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해야 할 것을 너를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할 인간을 좋아하는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인데 여기에는 좋아서 사랑한다는 뜻이 있고, 싫으면 미워할 것이라는 뜻이 있으며, 좋으니 소유할 거라는 뜻과 싫어지면 버릴 거라는 뜻이 드러나지 않게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좋아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좋은 감정이라는 면에서, 다시 말해서 호감이라는 면에서는 같지만 사실 속 내용을 보면 정 반대입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좋으면 그것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싫으면 버리겠다는 것인데 반해 사랑한다는 것은 그 좋은 것을 내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사랑하는 너에게 주겠다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누가 저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 말을 좋아하기보다 저는 속으로 움찔하거나 오싹할 것 같습니다. 나를 좋아할 때는 소유하려고 할 것이고 쓰다가 싫증이 나면 버려지는 물건들처럼 싫어지면 저도 버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백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고 그래서 보다 쉬운 표현으로 이렇게 말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저는 또한 압니다. 그런 면도 있지만 그런 것 이상의 사랑의 부담감 같은 것이 이 표현에 배여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냐면 사랑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 이상의 것이고, 좋아서 사랑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싫은데도 사랑하는 것은 역시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사랑을 사랑답게 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서 사랑의 부담감을 넘어서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감성적 사랑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렇다고 싫어도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사랑과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의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좋은 감정도 넘어서고 싫은 감정도 넘어서는 사랑이고, 감정을 넘어 이성과 감성과 의지 모두를 통틀어 하는 전존재적인 사랑이요 그래서 전존재를 불사르는 열정(Passion)이지요. 소유의 기쁨과 그런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완전한 일치의 기쁨과 그로 인한 완전한 충만을 추구합니다. 그 희열이 하도 커서 싫고 좋음마저 사라집니다. 웬만큼 나이든 분들이라면 잘 아는 ‘불나비 사랑’이라는 옛날 노래가 있는데 그런 사랑과 같은 것이겠지요?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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