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이제는 안쓰러운 막장 '김순옥 월드'

입력
2017.04.18 16:09
0 0
배우 장서희는 김순옥 작가의 SBS 새 주말극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한물간 톱스타 민들레 역으로 출연한다. 뻔한 화려한 의상과 지나치게 큰 귀걸이는 오히려 반감을 산다. SBS 제공
배우 장서희는 김순옥 작가의 SBS 새 주말극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한물간 톱스타 민들레 역으로 출연한다. 뻔한 화려한 의상과 지나치게 큰 귀걸이는 오히려 반감을 산다. SBS 제공

단비 같은 유혹이었다. 여성들의 우정을 그리는 ‘워맨스’ 드라마를 보여주겠다고 했으니 마음이 선뜻 갔다. 가뜩이나 ‘브로맨스’ ‘남남케미’ 전략을 내세우며 돈벌이에 집중하는 최근 대중문화 경향에 식상하던 터였다. ‘불후의 막장’으로 꼽히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2008)과 ‘왔다! 장보리’(2014), ‘내 딸, 금사월’(2015)의 김순옥 작가 신작이라 해도 말이다.

SBS는 지난 15일 김 작가의 새 주말극 ‘언니는 살아있다’ 1회와 2회를 연속 편성했다. 지상파 방송이 화제를 모으기 위해 최근 도입한 ‘꼼수편성’이었다. 그래도 ‘워맨스’를 보여주겠다는 당당한 모습에 한 가닥 희망을 가졌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속담은 여지없이 적용됐다. 김 작가는 초반 시청률을 의식이라도 한 듯 자신이 그간 드라마에서 선보였던 ‘시청률 비법’을 쏟아 부었다. ‘자기 복제’를 통한 고강도 막장 코드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불륜은 기본이고 갑을관계를 과장되게 부각해 지극히 자극적이다. 극중 인물인 루비화장품 본부장 세경(손여은)과 신문사 기자 태수(박광현)는 각자 가정이 있지만 외도를 즐긴다. 드라마는 두 사람이 부적절한 관계임을 드러내기 위해 침대를 배경으로 한 수위 높은 장면도 마다하지 않는다. 막장 코드의 필수조건인 불륜이 드라마 초반부터 화면을 장식한 것이다. 금수저들의 횡포는 도를 넘는다. 세경은 남의 농장에서 꽃을 밟고선 사과는커녕 “사과? 돈으로 할게. 얼마 줄까?”라며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미국에서 메이크업을 공부하는 달희(다솜)와 그의 VIP고객 세라(송하윤)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은 너무나 억지스러워 헛웃음이 날 정도다.

15일 방송된 SBS 새 주말극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세라(송하윤)는 달희(다솜)와 몸싸움을 벌이다 고양이에 의해 벽장에서 떨어진 장식품을 맞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SBS 제공
15일 방송된 SBS 새 주말극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세라(송하윤)는 달희(다솜)와 몸싸움을 벌이다 고양이에 의해 벽장에서 떨어진 장식품을 맞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SBS 제공

집에 하녀 여럿을 둔 것도 모자라 그들에게 샤워 시중까지 들게 하는 세라 캐릭터는 비현실적이다. 세라가 달희를 고용하려다 거절당하자 도둑 누명을 씌우는, ‘고구마’장면은 ‘김순옥 월드’의 단골 메뉴이자 막장 작가들의 공통된 재료. 그저 식상할 따름이다. 세라가 달희에게 “같잖은 것”이라고 비하하고, 몸싸움을 벌이다가 황당하게도 고양이 때문에 떨어진 장식품을 맞고 혼수상태에 빠지는 장면은 또 어떤가. ‘막장의 전설’ 임성한 작가 저리 가라다.

인물들은 지나치게 평면적이라 공감하기 힘들다. ‘내 딸, 금사월’에서 발군의 악역을 소화했던 배우 손창민은 이번에도 후처가 있는 재벌그룹 회장 역할이다. 한물간 톱스타 민들레 역의 장서희는 누구나 예상 가능한 지나친 메이크업과 액세서리로 반감을 부른다.

코믹 ‘필살기’로 넣었을 대목도 안쓰럽기만 하다. 민들레가 “점 하나 찍었는데 몰라보는 게 말이 되느냐. 가서 연필이나 더 깎고 와라”며 작가에게 대드는 장면이 그렇다. ‘아내의 유혹’에서 점 하나 유무로 1인2역을 했던 장서희가 이 대사를 읊어댔으니 박장대소를 해야 맞다. 그러나 의도가 너무나 드러나는 김 작가의 ‘셀프 디스’는 웃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정말 안타까운 건 ‘김순옥 사단’으로 모인 명배우들의 연기다. 손창민, 장서희, 안내상, 황영희, 변정수 등 내로라하는 중견 배우들이 식상한 캐릭터로 소비되는 게 아쉽다. 막장 드라마를 지양하겠다는 SBS의 헛된 약속이 야속해지는 순간이다.

kis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