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정글에 사는 동물들은 2017년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처럼 치열한 경쟁 환경에 놓여있습니다. 한정된 환경 자원 속에서 태어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수단을 부모에게 배워야 하고, 좀 세상을 알만하다 싶으면 부모는 번식을 위해 떠나라며 재촉하지요. 인간만큼이나 ‘사랑’에 대한 고민도 많습니다. 사람들이 멸종위기종이라고 부르는 동물들조차 우연히 이성을 만나도 얼마나 자신이 섹시한지 보여줘야 짝짓기 시도라도 할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서부 자바섬의 구눙할리문 쌀라크 국립공원에 사는 어미 자바긴팔원숭이가 2010년 7월 나무 위에서 3살로 추정되는 새끼의 털을 고르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인도네시아 자바섬, 안개처럼 비밀스런 정글

구눙할리문 쌀라크 국립공원의 보호지역은 면적 4만ha, 고도 1,929m로 비교적 잘 알려진 구눙 게대 빵랑오(Gunung gede pangrango) 국립공원보다 더 안쪽 비밀스러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자바 섬의 서쪽은 다른 곳보다 강수량이 많아 매우 습한 곳입니다. 제가 원숭이들과 동고동락했던 시기를 기준으로 보자면 연 강수량이 5,000㎜를 넘고 최저 18.3도, 최고 28.6도로 쌀쌀한 가을 날씨였습니다. 비밀을 간직한 곳이어서 그랬을까요? 인도네시아 순다어로 안개를 뜻하는 할리문(halimun)이란 명칭이 괜히 붙진 않았겠다 싶은 곳이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 열대정글 울창한 숲의 이곳 저곳에서 울려 퍼지는 동물들의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거대한 도심의 아파트를 떠올리게 합니다. 인간의 아파트에서 아침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면 층간 소음으로 당장 신고가 들어갈 테지만, 동물들은 자신의 영역을 큰 소리로 알립니다. “오오오~오아~오아 오아~” 자세히 들어보면 ‘오아’로 들리는 자바긴팔원숭이의 목소리를 본 따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은 이들을 오아(Owa)라고 부릅니다.

2010년 1월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구눙할리문 쌀라크 국립공원에 안개가 자욱하다. 국립생태원 제공
유인원 중 유일한 일부일처제, 긴팔원숭이

자바긴팔원숭이는 긴팔원숭이과, 긴팔원숭이속(Hylobates)에 속합니다. 긴팔원숭이과(Hylobatidae)에는 긴팔원숭이속 외에도 큰긴팔원숭이속(Symphalangus), 흰눈썹긴팔원숭이속(Hoolock), 볏긴팔원숭이속(Nomascus) 등 3개의 속이 있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종은 대략 19종입니다. 학문적으로 접근해 종을 구별하는 것이 재미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긴팔원숭이는 유인원 중 유일한 일부일처제 사회구조를 갖고 있는 종으로 인간과 사회구조가 유사한 부분이 있고 종간 비교연구도 가능해 매우 흥미로운 연구 대상입니다. 태국의 카오야이(Khao Yai) 국립공원에서는 1980년대부터 흰손긴팔원숭이(Hylobates lar) 연구가 시작돼, 노총각 노처녀 원숭이가 가족을 만들고, 헤어지고, 심지어는 바람을 피는 행동도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열대우림에 사는 큰검은긴팔원숭이(Symphalangus syndactylusㆍ시아망)는 노래주머니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세상에서 가장 우렁찬 노래를 자랑하는 긴팔원숭이입니다. 나무 위에서 암수 두 마리가 주거니 받거니 노래를 부르며 흥겨운 아침 춤사위를 벌이기도 합니다. 굉장히 낭만적이지 않나요?

암수가 같이 노래를 하는 긴팔원숭이들의 경우, 신혼일 때 더 노래를 부르는 횟수가 많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바긴팔원숭이는 암컷만 노래를 부르는 종입니다. 커플송을 듣지 못해 아쉽기도 하지만 암컷의 노래 이유를 알면 더 흥미가 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자바긴팔원숭이가 2010년 10월 인도네시아 자바섬 구눙할리문 쌀라크 국립공원의 나무 위에서 열매를 따 먹다가 인근에서 기척이 들리자 경계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암컷 자바긴팔원숭이가 부르는 노래의 의미

새벽 무렵, 숲으로 들어가다 보면 암컷 자바긴팔원숭이의 노래가 들리던 곳에서 벗어난 지점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는 자바긴팔원숭이 가족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침에 노래를 하는 이유는 긴팔원숭이 가족의 행동권을 알리는 목적이 있습니다. 나른한 오후, 암컷이 또 한 번 목소리를 크게 낼 때가 있습니다. 주변 영역의 다른 가족이 보일 때입니다. 서로의 영역이 교차되는 지역에서 어른 원숭이 간 싸움이 시작되면 숲이 들썩들썩 하는 느낌입니다. 수컷은 송곳니가 있지만 다행히 유혈사태까지는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서로 술래잡기 놀이를 하듯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긴 팔을 이용해 뛰어다니며 간접적인 위협행동을 합니다. 암컷은 약간 뒤로 물러나 목청껏 “우리집이야!” 라는 듯 허공을 가르는 맑고 경쾌한 노래를 부릅니다.

이러한 싸움이 일어나는 주요 이유는 탐스럽게 열린 열매들 때문입니다. 긴팔원숭이들이 먹이활동을 한 나무들의 위치를 토대로 면적을 계산해보면 한 가족 당 축구장 크기의 50배 정도 행동권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주로 관찰을 했던 두 가족은 행동권 면적이 약 1.3배 정도 차이가 났습니다. 영역이 작은 가족무리가 주로 영역의 경계 주변 나무들로 모여들어 열매를 먹곤 했습니다. 이렇게 암수 한 쌍이 같은 영역을 지키며 가족형태를 이루는 것을 사회적 일부일처제(social monogamy)라고 합니다. 인간의 경우, 신혼부부가 하나의 공간에 신혼집을 마련해 같이 살고 있는 형태와 유사하지요. 동거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같은 공간에 살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득은 먹이원입니다. 긴팔원숭이에게 무엇을 먹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암컷에게 말이지요. 수컷은 암컷을 쫓고, 암컷은 먹이원을 쫓으니, 결국 다시 먹는 이야기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매달 긴팔원숭이들이 주로 먹이원으로 삼는 나무들이 꽃이 피었는지, 열매가 맺었는지, 열매의 익음 정도는 어느 정도 인지를 면밀히 파악했습니다. 소란스러운 암컷 긴팔원숭이의 소리가 들려오면, ‘아, 나무에 열매가 많이 열렸던데 어느 가족이 몰래 훔쳐 먹으려고 왔구나!’ 추측하기도 합니다. 긴팔원숭이의 이동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방향으로 갈지 대략적으로 예상이 가능합니다. 딱딱~톡~딱! 원숭이 가족들은 마음에 드는 나무를 만나면 열매를 먹으며 ‘먹방’같은 장면을 연출합니다. 입맛이 까다로운 긴팔원숭이들은 무화과 열매를 먹다가 버리기도 하고 이 나무, 저 나무 기웃거리며 강을 건넜다가 다시 원래 나무로 돌아와서 다시 먹는 등 따라다니는 인간 관찰자를 괴롭히지만, 숲의 이곳 저곳에 종자들을 퍼트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자바긴팔원숭이들이 2010년 8월 인도네시아 자바섬 구눙할리문 쌀라크 국립공원에서 나무를타고(왼쪽사진) 열매를 찾아 먹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자바긴팔원숭이 가족의 분주한 애정행동

나뭇잎들 사이로 회색털들과 분주한 손가락들이 보입니다. 점심도 먹었고, 이른 새벽부터 돌아다닌 탓인지, 긴팔원숭이들이 쉬었다 가려는 듯 나무에 멈춰 앉습니다. 암컷이 수컷 등에 붙어 털을 골라주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로 작은 원숭이 한 마리가 아빠에게 놀자며 팔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근처 나무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200여 일의 임신기간을 거쳐 새끼를 한 마리만 낳는데 모유시기가 2,3년 정도로 꽤 긴 편입니다. 출산 후 초창기에는 엄마 배에 딱 매달려 다니느라 엄마원숭이도 힘들지만, 조금 지나면 아빠가 아이와 놀아주며 시간을 보냅니다. 저는 1년간 원숭이 부부간의 짝짓기 행동, 털 고르기 행동, 부부간의 물리적 거리를 관찰하고, 호르몬 분석을 위해 매일 똥을 모으며 다녔습니다. 인간이라면 “부인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라고 물으면 그만인데, 간접적인 증거들을 모으자니 꽤나 힘들었지요.

성숙한 암컷의 짝 찾기 미션

가족 곁을 떠난 맏딸 원숭이가 있었습니다. 엄마 원숭이와 몸의 크기가 엇비슷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독립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바긴팔원숭이는 완전히 성숙할 때까지 약 8년간 부모와 함께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아빠 원숭이와의 털고르기 시간이 엄마와 아빠 사이만큼이나 유의미하게 길어 ‘맏딸이라 애지중지 하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짝을 찾으려면 주변에 수컷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주변에 관찰할 수 있는 원숭이 가족들은 다 짝이 있거나, 정말 어린 수컷들뿐이었습니다. 분변을 이용한 성호르몬 분석 결과 특이사항이 없어 어쩌려나 했는데 짝을 만나 떠났다고 합니다. 사실 긴팔원숭이 수명을 생각하면 찰나의 순간을 관찰하고 있습니다만, 야생연구가 장기적으로 진행 되어 국립공원 내 관찰 가능한 원숭이가족의 수가 늘어난다면 언젠가는 떠났던 맏딸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열대우림의 풍요를 더해주는 다른 종의 원숭이들

이 숲에는 자바긴팔원숭이 외에 특별한 원숭이 가족들이 또 있습니다. 잎을 주식으로 먹는 긴꼬리원숭이과(Cercopithecidae)의 회색빛 자바잎원숭이와 자바원숭이입니다. 숲 이곳 저곳을 다니다 보면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이 원숭이들 가족무리와 마주쳤습니다. 회색빛깔의 자바잎원숭이(Javan surili, Presbytis comata)는 자바긴팔원숭이와 털 색이 같아 종종 오인할 때가 많았습니다. 한참을 숲을 돌아다니다가 회색빛 동물의 움직임을 보고 자바긴팔원숭이인가 싶다가, 긴 은빛 꼬리를 보고 실망하게 됩니다. 자바긴팔원숭이는 꼬리가 없는 유인원입니다. 검은색 자바원숭이(Javan Lutung, Trachypithecus auratus)는 루뚱(lutung)이라고 불립니다. 여러 마리가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에 ‘루뚱이 지나갔다!’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루뚱의 아기는 매우 신비한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검은색 칙칙한 색깔의 부모와 달리 밝은 오렌지 빛의 털입니다. 점점 크면서 부모의 털색과 같아집니다.

회색빛깔 털을 가진 자바잎원숭이. 국립생태원 제공
특별한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인도네시아 자바긴팔원숭이는 향후 10년 이내에 개체수의 50%가 감소할 가능성이 높은 멸종위기종입니다. 긴팔원숭이 가족의 행동을 관찰하는 동안 갓 태어난 새끼원숭이를 보았고 아끼던 2,3살 아기원숭이가 실종된 가슴 아픈 사건까지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열대동물들 역시 결혼, 출산, 육아는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서식지 파괴, 불법적인 애완동물 거래로 그나마 야생에 있던 2,000여 마리의 개체들 조차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동물들도 인간들과 함께 같은 시간, 비슷한 삶의 형태를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지시나요? 그것을 느끼는 것이 보다 넓은 공생을 위한 시작일 것입니다.

고은하 국립생태원 융합연구실 연구기획관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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