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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오! 베트남] “노동력·인프라 최고지만… 개성 돌아가고파”

입력
2017.04.1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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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폐쇄 후 이전한 업체 12곳

의류ㆍ신발 등 인력 중심 제조업

인건비ㆍ물류비용ㆍ의사소통…

개성보단 어려움 있지만

공장 분위기 좋고 품질도 만족

11일 베트남 호찌민시 인근 롱안성 호아빈공단의 한국 의류공장에서 직원들이 완제품 검사를 하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11일 베트남 호찌민시 인근 롱안성 호아빈공단의 한국 의류공장에서 직원들이 완제품 검사를 하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지난해 2월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조치로 철수한 기업은 모두 123곳. 이들 중 상당수는 문을 닫았고 일부는 해외에 새로 터를 잡았다. 갑작스러운 공단 폐쇄 발표 이후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이 각종 인센티브와 지원 방안을 앞세워 유치에 총력전을 펼쳤지만 개성공단 기업들은 그 구애에 화답할 수 없었다. 섬유 73곳을 비롯해 기계금속 22곳, 전기전자 13곳, 화학 9곳 등 대부분 노동집약 업체였기 때문이다. 이후 많은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옮겨 갔다는 이야기만 떠돌았을 뿐, 지금껏 이렇다 할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소문만 무성한 베트남의 개성공단 기업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들여다 봤다. 현재 베트남으로 이전을 완료한 업체는 총 12곳. 업체 관계자들은 내달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단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공장 폐쇄 걱정 없어 좋아요”

지난 11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서쪽으로 40㎞ 가량 떨어진 롱안성 호아빈공단의 한 한국계 봉제공장. 도열한 재봉틀을 하나씩 꿰차고 줄지어 앉은 근로자 300여명이 분주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모습은 흡사 집단연주회 같았다. 유일한 소음은 작업장에 메아리 치는 기계음뿐이었다. 근로자들의 성실한 근무 태도 비결을 묻자 작업 관리자는 “공장 분위기는 품질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근로자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양질의 노동력 덕분에 미얀마, 캄보디아 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 제품 품질이 높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동남아 지역으로 한정했을 때 평가이다. 인근 A봉제공장의 법인장은 “개성공단과 비교하면 사실 품질은 물론 딱히 베트남 공장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며 “이 곳에 와서 새삼 개성공단의 진가를 재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치솟는 인건비, 높은 물류 비용, 통역이 필요한 의사소통 체계, 이질적인 문화 및 식생활 등 뭐 하나 개성공단보다 나은 게 없다는 얘기다.

실제 베트남의 최저임금은 2013년 17.5%를 시작으로 2014년 14.9%, 2015년 14.8%, 지난해 12.4% 등 매년 두자리 수 인상 행진을 이어 왔다. 올해는 기업들의 볼멘 소리에 밀려 7.3% 인상에 그쳤지만 상승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다른 회사의 한 임원도 “개성공단을 경험한 우리 입장에서는 폐쇄 우려가 사라진 정도만 좋을 뿐, 그 외 장점은 꼽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그래도 개성공단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베트남의 제조업 경쟁력은 높이 살 만하다고 한다. 속옷 제조업체 ㈜영이너폼의 남계호 이사는 “개성공단 폐쇄 후 케냐,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까지 기웃거리며 대체 공장을 물색했지만 베트남 만한 나라가 없었다”며 “해외에 새로 둥지를 튼 개성공단 기업 중 베트남을 벗어난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웃 나라인 미얀마와 비교해 봐도 다소 저렴한 인건비를 제외하면 베트남의 젊고 풍부한 노동력과 전기, 도로, 항만 등의 제조ㆍ수출 인프라를 따라 잡기는 역부족이다.

개성 복귀 꿈꾸는 기업들

우수한 인프라 경쟁력에도 애로사항은 분명 있다. 의사소통 문제는 개성공단 기업들이 처음 맞닥뜨린 가장 큰 어려움이다. 지난해 말 한 한국계 봉제공장에서는 회사 방침이 제대로 공지가 안돼 직원들이 한바탕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고정 기본급 외에 오토바이 기름값, 주택ㆍ만근수당 등 각종 수당 제공 의사를 밝혔는데 근로자들이 잘못 이해해 공장 가동을 멈추고 격하게 항의했다”며 “가까스로 오해를 풀었지만 그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른다”고 전했다. 한국과 다른 베트남 특유의 기질이 충돌을 유발하기도 한다. 특히 평소 성격이 낙천적인 베트남 근로자들은 잘못을 지적할 때에도 웃음으로 응대하는 경우가 많아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곤 한다.

가파른 인건비 상승도 골칫거리다. 지난해 5월 착공, 6개월 만에 공장 가동에 들어간 한 의류제조 업체는 1,200명을 고용할 계획이었으나 높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인력 증원 계획을 잠정 보류했다. 공장 관계자는 “베트남에 남아 있으면 고품질 제품 생산이 가능했지만 인건비를 생각하면 투자를 지속할 수 없었다”며 “많은 기업들이 개성공단 문이 다시 열리기만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제품 유행 주기가 유독 짧은 신발제조사들은 턱없이 긴 물류시간 탓에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S업체 법인장은 “자재를 수령하는 데 10일, 만드는 데 10일, 다시 보내는 데 10일 등 제품 생산에 꼬박 한 달이 걸린다”며 “하루면 모든 공정이 끝났던 개성공단은 말 그대로 ‘꿈의 터전’이었다”고 아쉬워했다. 한 달에 100만족 생산을 목표로 공장을 짓고 있는 이 회사는 개성공단이 재가동되면 내수 물량은 개성에서 충당하고, 베트남 공장은 수출기지로 전환할 계획이다. 옥성석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은 “급하게 떠밀려 베트남으로 이전하느라 대다수 기업이 현지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낮은 공장 가동률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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