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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고통을 향한 공감

입력
2017.04.1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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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미지 몇 장이 날카로운 흉기처럼 가슴을 찔렀다. 산소호흡기를 입에 문 어린 아이가 가쁜 숨을 내 쉬며 파르르 몸을 떠는 형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어 살아남은 아버지가 숨을 잃은 어린 쌍둥이를 끌어안고 통한의 눈물을 쏟는 모습이, 그리고 눈의 초점을 잃은 아이들이 서로 엉켜 맨몸을 섞은 채 혼절해 있는 상황까지 뒤를 이었다. 아마 바로 전까지 멀쩡하게 숨 쉬고 있었을 어린 아이들은 그렇게 무참히 생을 잃거나 잃어가는 뉴스 속 이미지로 변용되어 전 세계를 향한 절망의 메시지가 되었다. 고통의 당사자가 되어서야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것이다.

전파를 타고 떠도는 영상과 신문 국제면에 실린 사진 이미지들을 보니 그저 먼 나라 남의 일로만 두기에는 너무도 안타깝다. 그 이미지 이면에 있는 실재하는 현실이 더없이 아프게 읽히기 때문이다. 참 멀게 느껴지는 나라 시리아에서 살을 에듯 가까이 들려온 소식이었다. 누가 벌인 짓거리이든 그들은 인간이 만든 가장 극악무도한 무기를 사용했고, 그로 인해 귀하고 어린 생명들이 지녔을 세상을 향한 꿈과 희망 또한 한 순간에 사라져야 했다. 그렇게 사라지기 위해 태어난 생명이 절대 아니다. 목숨 부지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살아 내쉬어야 할 귀한 숨이었다. 남은 가족들의 절규가 허공을 떠도는 메아리처럼 귀에 꽂힌다. 남의 나라 사정이니 이 역시 곧 잊히려니 하는 염려도 머리를 무겁게 한다. 어설프나마 전쟁 상황의 중동지역을 취재했던 과거의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는 탓에 ‘우리도 어려운데 남의 고통까지 어떻게’ 하는 식의 무심함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지랖도 한몫을 한다.

2003년 7월 즈음 종전 후 어지러운 상황 속이었던 이라크를 찾아간 적이 있다. 두 번째 방문이었던 당시 우연히 수도 바그다드의 외곽도시인 사담시티를 돌아보다가 꽤 당혹스러운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마을의 한 공터는 온통 버려진 중소형 총기류 탄피들로 가득했고, 맨발의 한 소년이 홀로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소년과 눈을 마주친 뒤 무심코 카메라를 들었다. 그러나 카메라 프레임 속의 소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이들 특유의 호기심 서린 시선이 아닌 오히려 적개심 가득한 날 선 눈빛이 나를 향해 사정없이 꽂혀 들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지만, 의문의 여지없이 소년의 날카로운 눈빛은 실재였다. 미안하다는 의사를 표시한 후 공터를 빠져나오면서 나는 한동안 멍했다. 소년의 눈빛은 낯선 이방인의 카메라에 대한 불편함보다는 늘 죽거나 다칠 수 있는 실제상황 아래 불안한 성장기를 보내는 데서 나오는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혹여 나 또한 불안감을 얹어주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지금껏 그날의 기억을 망각 저편으로 보내지 않고 있다.

결국 기억하고 새기는 것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꿈을 품을 수 있으리라 스스로 내 어깨를 감싸본다. 수없이 쏟아지는 고통의 이미지들 너머에는 분명한 실재라는 현실이 존재한다.

고통의 자극에 무력해지기보다는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우선하면서 그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공감의 시선으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미국의 평론가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수잔 손탁’은 그의 탁월한 명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이미지 너머의 실재하는 현실을 방관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죽음이 지닌 말초적인 자극의 이면에 있는 원인들을 보아야’하고 비록 ‘재현된 세상을 보는 것이라 하더라도 또한 그것들의 고통에 도달할 수 없을 지라도, 우리는 그 고통에 계속해서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다. 고통을 향한 공감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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