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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정의는 국가의 으뜸가는 덕목

입력
2017.04.0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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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혼란ㆍ위기는 정의 붕괴의 결과

상식ㆍ직관은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수렴

각계 지도자들의 공정한 제도운영이 관건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의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라는 책에서 ‘많은 황금보다 더 귀한 정의’야말로 이상국가의 절대조건이라 주장했다. 5세기 초 로마제국의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도 <신국>에서 “정의가 없는 국가는 큰 도적 떼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유사한 견해가 근대 이후에도 이어졌다. 17세기 영국의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실정법에 구현된 정의를 질서와 문명의 근간이라 강조했고, 20세기 후반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도 <정의론>에서 “정의는 사회제도의 으뜸가는 덕목”이라고 칭송했다.

시대마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정의를 이해했던 방식은 달랐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두 국가의 최고 덕목으로 정의를 지목했다. 왜일까? 정의가 붕괴된 국가는 위기에 빠지거나 몰락할 수밖에 없는 바 국가의 평화 통합 번영을 위해서는 정의가 우선 실현돼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배로 위기에 빠진 아테네를 재건하기 위해 플라톤이 정의로운 이상국가를 제시한 것이나, 서구의 복지국가가 위기에 빠질 무렵 롤스가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제시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지금 한국사회가 직면한 혼란과 위기도 정의가 무너진 데 기인한 바 크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는 국가의 부정의함보다는 무능력 탓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관료들과 민간 기업들 사이의 얽히고설킨 ‘더러운’ 이해관계 및 정부의 ‘부당한’ 직무유기와 연관되어 있다. 요컨대, 이 두 사건을 포함하여, 박근혜ㆍ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드러난 권력의 사유화와 정경유착, 관피아 모피아가 상징하는 특혜와 기득권의 사슬, 블랙리스트 파문이 보여준 차별과 배제의 관행, 고위층에 만연된 취업청탁,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뇌물문화와 갑을 관계 등 갖가지 병폐는 하나의 동일한 근원, 즉, 정의의 실패로 귀착한다.

이것은 역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시급함을 말해준다. 정의가 무엇인지는 크고 복잡한 문제다. 그럼에도 정의에 관한 우리의 상식과 직관은 정의의 핵심이 공정성이라는 데로 수렴한다. 소극적인 의미에서 공정성은 부당한 차별ㆍ배제ㆍ착취가 없거나 최소화된 상태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다 평등하고 존엄한 인격체로 존중을 받고, 누구나 노력만 하면 성공을 기대해볼 수 있는 사회의 특성이다.

공정성은 제도나 상황에 따라 평등, 공평(형평), 상호성이라는 세부 원칙들로 구현된다. 예컨대 1인1표와 동일노동ㆍ동일임금 원칙은 평등을, 능력주의와 필요에 따른 분배의 균형은 공평을, 재판에서의 정상참작은 형평을, 그리고 자발적인 동의에 따른 재화의 호혜적 교환은 상호성을 반영한다. 이처럼 제도와 영역에 따라 다양한 원칙들로 구현되는 공정성은 시민들의 정의감과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를 조성ㆍ유지한다.

정의 없이는 법과 질서, 자유와 평등, 성장과 복지가 조화를 이룬 선진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 정의가 없는 법과 질서는 강제와 폭력에 기대게 되어 강자의 폭정을 야기한다. 사법적 정의가 없으면 개인의 자유는 유린되기 쉽다. 정의 없는 민주주의는 다수의 횡포에 빠지고, 정의 없는 자본주의는 약탈적인 계급사회로 전락한다. 평등도 정의가 없으면 유능한 자들의 노력을 유인해내지 못해 사회를 빈곤에 빠지게 하며, 장애인과 같이 취약한 사람들을 특별히 배려해줄 수 없다. 요컨대 정의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이익을 조화시켜 질서정연한 민주공화국을 창출ㆍ유지하고 시민들에게 연대의식과 일체감을 심어주는 통합의 끈이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사회의 주요 제도들이 공정성을 담보하도록 개혁의 고삐를 당기는 동시에, 위정자들을 비롯한 각계의 지도자들이 정의감을 가지고 사회제도들을 공정하게 운영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이것이 나라냐!” “이것이 국가냐!”고 외쳐온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국가의 안정과 번영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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