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필리핀 마신록 오이온만 부근 맹그로브 숲. 뭍으로 가면서 좁은 띠모양으로 식생이 달라진다. 국립생태원 제공

사막에서 오아시스는 생명의 터전입니다. 많은 생명들이 이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모여들지요. 독특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 ‘맹그로브’는 바다라는 사막에서 오아시스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많은 생물들이 피난과 보살핌을 받습니다.

바다가 식물에게 왜 사막으로 느껴지는가에 대해 의문이 많으실 겁니다. 물은 많으나 식물이 이용할 수 없는, 오히려 죽음을 부르는 물이기 때문이지요. 거친 파도와 해일, 쓰나미, 소금기 등 식물이 살기에는 어느 하나 좋은 것이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맹그로브 숲은 전 세계 열대 아열대 해안에 걸쳐 발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작지만 아주 중요한 생태계

맹그로브는 전 세계 120여 개국에 걸쳐 나타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해안가, 강어귀 등 아주 좁은 구역에 한정해 좁은 띠모양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면적으로는 넓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현재 약 13만㎢ 정도, 즉 북한 영토만큼의 넓이니까요.

맹그로브는 아늑하고 풍요로운 요람과 같은 곳입니다. 거센 조류는 잠잠해져 어린 생명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벨리즈 해안의 한 맹그로브에는 무려 500여 종이나 되는 새들이 찾아 듭니다. 우리나라에 사는 새보다 많은 종류가 이곳을 터로 삼고 있는 것이지요. 맹그로브에 기대어 사는 많은 생물들은 멸종위기에 처하거나 희귀한 종들입니다.

올해 필리핀 올롱가포에서 발견된 땅 위로 자라난 무릎모양의 맹그로브 공기뿌리. 습하고 공기가 통하지 않는 뻘에서 숨을 쉬기 위한 형태다. 국립생태원 제공
하체가 튼튼한 맹그로브 식생

맹그로브에서의 삶은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뻘로 된 흙, 물에 잠기거나 습한 조건, 혐기성(산소를 싫어하는 성질) 토양 조건, 여기에 밀물과 썰물의 영향, 그리고 때로 강하게 밀려오는 태풍과 파도, 어느 하나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조건들이 아닙니다.

이런 물리적 조건들을 견뎌 내기 위해서는 하체가 튼튼해야 합니다. 맹그로브 숲의 구조가 일반 다른 육상의 숲과 다른 점은 상체보다 하체가 튼튼하다는 점입니다. 열대와 아열대 숲은 광합성 산물인 바이오매스(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식물ㆍ동물ㆍ미생물 등 생물체)를 대부분 지상부에 저장합니다. 이에 반하여 맹그로브는 지하부에 더 많은 바이오매스를 저장합니다. 특히, 뿌리는 탄소동화산물을 저장하는 기능뿐 아니라, 여러 거친 환경을 견뎌내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물속 생물들과 뻘에 사는 생물들에게는 피난처이며 아늑한 삶터가 됩니다. 딱딱한 구조물이 필요한 굴들도 잘 서식하고, 새우에게도 좋은 장소입니다. 뻘에서는 많은 영양분을 얻을 수 있으며, 맹그로브가 새우양식장으로 손쉽게 바뀌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맹그로브 식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뿌리를 내립니다. 지주뿌리를 만들기도 하고 리본모양의 뿌리, 또는 무릎과 같은 모양, 그리고 땅속을 뻗어 나가면서 위로 솟아나는 펙(텐트를 칠 때 쓰이는 도구)모양의 뿌리 등 종류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입니다. 예컨대 가장 대표적인 맹그로브 식물인 리조포라(Rhizophora)는 중심 줄기 주위에 뿌리(Rhiza)가 달려있는(phoros) 것을 의미합니다.

올해 초 필리핀 마신록에서 발견한 물야자 열매. 국립생태원 제공
맹그로브 식물은 새끼를 낳는다고요?

맹그로브 식물종은 대략 110여종 정도 됩니다. 이중 진짜 맹그로브를 구성하는 식물 종은 70~80종 정도 됩니다. 바로 인접한 육상 식물 생태계에 비하면 다양성이 떨어지는 편이죠.

보통 종자식물은 번식수단으로 종자를 만들고 이 종자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넘어 식물을 전파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어떤 종자는 무려 2,000년 간의 긴 잠에서 깨어나 번식에 성공한 경우도 있으니까요. 식물 종자가 익어간다는 뜻은 열매가 익어 가면서 씨앗이 마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고 이렇게 마른 씨앗은 거의 생명활동이 정지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종자가 잠을 자면 오랫동안 열악한 환경을 견디어 내는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멀리 이동할 수도 있고 또 오랫동안 보관도 가능합니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여 현대기술로 종자를 장기 저장하는 이른바 종자은행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몇몇 국가 기관에서 이러한 장기 종자저장 시설을 설치하여 종자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맹그로브 식물도 다른 식물과 같이 꽃가루받이(종자식물 수술에서 만들어지는 꽃가루를 밑씨나 밑씨가 든 기관으로 운반하는 일)도 하고 수정도 거칩니다. 그런데 이 다음부터 다른 생장과정을 거칩니다. 열매가 익어가면서 휴면 상태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수정된 배가 계속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엄마나무에 달린 채로 마치 씨앗이 싹이 튼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자라는 후 세대를 열매라고 하기도 어렵고 종자는 더더욱 아니고 해서 그냥 ‘번식체’라 부릅니다. 이 번식체는 다 자라면 식물 종류에 따라 30㎝에서 1m에 이릅니다. 그냥 어미나무에 매달려 1m까지 자란다니 놀랍지요?

이렇게 자란 번식체는 적당한 때가 되면 떨어집니다. 다행히 번식하기에 적당한 곳, 즉 바닥이 뻘로 되고 물 흐름이 잔잔하며 소금기가 낮은 곳에 떨어지면 그 속에 푹 박히게 되겠지요. 이렇게 되면 번식체는 바로 뿌리를 내게 되고 정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번식체가 바닷물에 떨어지게 되면 옆으로 누워 물위에 뜨게 됩니다. 뜬 번식체는 바닷물의 흐름에 따라 이리 저리 둥둥 떠다니다가 소금기가 낮아지는 기수지역 적당한 곳에 이르면 뿌리부분의 무게가 무거워집니다. 그러면 옆으로 누워 있던 번식체가 수직으로 서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 바닷물이 밀려와 다시 소금기가 높아지면 아랫부분이 다시 가벼워져서 물위에 뜨게 됩니다. 번식체가 정착할 곳을 알아차리게 되는 수단은 바로 번식체의 뿌리가 생겨날 아래 부분인데, 소금 농도에 따라 아래 부분의 밀도를 조절하여 물위에서 옆으로 뜨게도 하고 수직으로 서게도 합니다.

사실, 이렇게 엄마식물에 매달려 있는 동안 싹이 터서 자라는 식물은 맹그로브 식물뿐 만이 아닙니다. 사막식물 중에도 아가베나 선인장류 중 이렇게 번식하는 식물들이 있습니다. 또한 북극의 추운 지역에 사는 벼과식물 중에서도 종자가 떨어지기 전에 아직 엄마식물에 매달려 있으면서 싹이 터 완전하게 잎과 뿌리까지 자란 다음 모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식물도 있습니다. 이러한 식물들의 조건을 보면 모두 번식하기에 좋지 않은 곳에 사는 식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에 잠겨 스노클링을 즐기는 식물들

맹그로브 식물이 사는 곳은 미세한 입자들로 퇴적된 뻘로 되어 있어 산소가 희박합니다. 뿐만 아니라, 항상 습하게 물로 차있어 뿌리가 아래 깊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뿌리가 호흡하기 아주 어렵겠지요. 그래서 맹그로브 식물들은 독특하게 발달한 호흡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맹그로브 식물들은 공기 중에 노출된 뿌리가 아주 발달되어 있습니다. 직접 뿌리가 공기 중에서 호흡을 합니다. 이 뿌리를 자세히 보면 뿌리에 피목이 많이 나 있습니다. 바로 숨구멍입니다. 이 숨구멍은 잎 뒷면에 나 있는 기공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뿌리 중에는 밀물 때마다 물에 잠기는 것도 있습니다. 밀물 때는 숨을 들이쉬지 않고 뿌리 안에 저장하고 있는 산소를 소진합니다. 그러면 뿌리 안의 통기 조직은 압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다시 썰물이 되어 뿌리가 공기에 노출되면 이 압력으로 뿌리 안 공기 조직으로 공기를 더 많이 빨아들이게 됩니다. 이 피목은 조직이 아주 특수합니다. 마치 스폰지 같은 구조의 코르크가 잘 발달해 물속에 잠기어도 물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합니다.

공기뿌리 중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도 있습니다. 그냥 공기 중에 있을 때는 뿌리 안의 공기 저장 조직이 약 5% 정도 밖에 지나지 않지만, 뿌리가 자라서 땅속에 박히게 되면 공기 저장 조직은 급격하게 늘어나 대략 50%까지 이르게 됩니다. 혐기성 조건에서 평소에 공기를 많이 저장하여 유사시에 대비하는 것이지요.

맹그로브 식물 중 유일한 야자 종류인 물야자(니파)는 아주 쓰임새가 많습니다. 특히, 잎이 땅에서 바로 나오기 때문에 기다란 잎을 구하기 쉬어 여러 용도로 이용됩니다. 물야자는 아랫부분이 항상 물에 잠겨 있고 줄기 또한 땅속에 묻혀 있어 마치 줄기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물야자는 다른 맹그로브 식물들과는 좀 다른 방법으로 숨을 쉽니다. 잎이 마르면 중간 정도까지만 윗부분이 없어지고 대롱같이 생긴 잎줄기가 물위로 솟아나 있습니다. 이 잎줄기 대롱이 바로 숨쉬는 기능을 합니다. 마치 스노클링하는 것처럼 말이죠.

바닷물을 민물로 만드는 탁월한 담수화능력자들

맹그로브 식물이 바닷물에서도 잘 살 수 있는 것은 이 식물들이 결코 소금을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이들에게도 소금은 해로운 요소입니다. 이 식물들은 바닷물보다 소금기가 3배나 강한 곳에서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썰물 때 땅이 노출되면 햇빛이 증발시켜 소금의 농도를 더욱 높입니다. 따라서 맹그로브 식물들은 이런 높아진 소금농도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맹그로브가 바닷물에도 잘 견디는 것은 소금기를 걸러 내거나 식물체내로 들어온 소금을 배출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들 식물들은 바닷물 담수화 능력이 아주 뛰어 납니다. 맹그로브는 뿌리에서 바닷물을 빨아들일 때 소금을 걸러 아예 흡수가 되지 않도록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 뿌리는 소금 거름작용이 아주 뛰어난 독특한 초여과 조직을 고안하였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소금 흡수량을 거의 90%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거의 민물 수준이지요. 어떤 식물은 흡수된 소금을 식물체 바깥으로 배출하는 기능을 발달 시켰습니다. 그래서 햇빛이 잘 드는 날이면 이들 식물의 잎이 하얀 소금으로 덮여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뒤덮인 소금은 다시 빗물에 의해 씻겨 집니다.

맹그로브 식물이 소금을 제거하는 또 다른 방법은 이른 바 순교하는 잎을 통해서 입니다. 이것은 소금을 어떤 잎에 저장하고 있다가 늙어지면 떨어져 소금을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일부 식물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맹그로브 식물은 거의 민물에 가까운 물을 식물체 내에 함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닷가에서 마실 물을 구할 수 없을 때 맹그로브의 뿌리를 자르면 신선한 물을 얻어 목을 축일 수 있습니다.

올해 초 필리핀 올롱가포 원주민이 맹그로브 인근 뻘에서 잡아 보여준 농게. 빨간 집게발이 특징이다. 국립생태원 제공
맹그로브, 새롭게 부상했지만 더욱 위태로워지다

맹그로브의 가치는 최근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2004년에 발생한 인도네시아 쓰나미를 기억하실 겁니다. 이 때 맹그로브는 쓰나미의 피해를 크게 줄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에는 탄소를 흡수하는데 숨은 병기라 할 만큼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연구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지금 맹그로브는 지구상 어느 생태계보다 큰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는 맹그로브 위협요소입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곳일 테니까요. 맹그로브를 잘라내 버리고 새우 어장이나 인공 어장을 만드는 일은 물론, 이를 숯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일도 큰 위협이지요. 맹그로브 숲이 사라져 많은 생물들이 오아시스를 잃지 않도록, 전 세계가 경각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주광영 국립생태원 온실식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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