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소다]<30>'안경 몰카' 사건으로 본 여성아이돌 인권

[사소한소다]<30>’안경 몰카’사건으로 본 여성아이돌 인권

그룹 여자친구의 멤버 예린이 자신의 앞에 앉은 남성팬이 쓴 안경을 살펴보고 있다.(위) 이후 안경을 받은 예린은 안경을 살펴본 후 남성팬이 자리에서 일어난 뒤 매니저에게 '안경 몰카였다'고 알렸다. 팬사인회 영상 캡쳐

또 하나의 몰카(몰래 카메라) 사건이 논란이 됐다. 이번엔 몰카 피해자인 여성 아이돌이 직접 몰카범을 잡아내면서 관음증적 시선에 보호막 없이 노출돼 있는 여성 아이돌의 열악한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달 31일 그룹 ‘여자친구’의 팬 사인회 현장에서 멤버 예린(21)씨는 사인을 받기 위해 자신의 앞에 앉은 남성의 안경을 받아 살펴본 후 매니저에게 ‘안경 몰카’였다고 알렸다. 애초에 사진 촬영이 허용되는 사인회에 일반인이 공공연히 몰카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실제 당시 각종 포털사이트에선 '안경 몰카'란 실시간 검색어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팬들 사이에서도 ‘몰카범이 팬사인회를 오는 길에도 안경몰카를 쓰고 왔을지 누가 아나’며 반발이 컸다. 소속사측은 해당 남성의 영상을 압수하고 퇴장시킨 후 앞으로 여자친구의 공식 일정에 참석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안경캠코더'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팔리고 있는 안경몰래카메라. 인터넷 캡쳐

이 사건에 대해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은 “여성 아이돌 팬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대상화해 몰래 사진을 찍고 유통시키는 ‘몰카’로 대표되는 사진포르노가 오랫동안 문제로 여겨져 온 것의 연장선상”이라고 말했다.

여성 아이돌의 인권은 여러모로 위태롭다. 이들은 ‘웃음’과 ‘애교’를 장착해야 하는 여성인 동시에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어릴 때부터 학습권, 노동권을 박탈당했던 ‘상품’이기도 하다. 손 연구원은 “한국 엔터테이먼트 산업이 남성 시선 중심으로 짜여져 있고, 남성을 위로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지배적”이라며 “여자아이들 101명을 무한경쟁하는 무대에 세우고 수동적인 캐릭터를 강요했던 ‘프로듀스 101’과, 같은 형식이지만 상대적으로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해 주는 방향으로 진행됐던 남자아이들의 오디션프로그램인 ‘소년24’가 대표적인 차이를 보여준다”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4월 방영된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여성 아이돌은 ‘내가 돈을 냈으니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는 요구를 더 크게 받기도 한다. 여성 아이돌이 팬사인회나 방송에 나가 웃지 않으면 어김없이 ‘태도 논란’이나 ‘인성 논란’이 발생되는 게 현실이다. 권김현영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이런 일들은 보통 시작하고 있는 단계의 어린 걸그룹에 한정해서 ‘내가 너희들을 띄워주고 있고, 내가 중요한 소비자다’라는 걸 어필하는 형식으로 발생한다”며 “이들은 언제든지 안티팬이 될 수 있는 경계에서 자신의 스타를 길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팬사인회에서 ‘안경 몰카’를 찾아낸 예린씨의 경우에도 몰카범에게는 “눈이 예쁜데 눈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로 안경을 건네 받아 살펴보고, 끝까지 웃는 얼굴로 보낸 후에야 매니저에게 “안경 카메라였다”고 알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남성팬은 ‘뿔테 안경 쓴 남자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했다. 좋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현장에서 공개 처형했다’고 반발하기도 하고 ‘노출있는 옷도 아니었는데 뭐가 문제냐’ ‘이러면 남자팬들은 다 떨어져 나간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여자친구'의 몰카 사건 관련 한 팬이 팬 사이트에 올린 글.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물론 최근 여성팬들이 남성 가수들 곡의 여성혐오적 가사 수정을 요구하는 등 아이돌 그룹에게도 ‘성평등(젠더) 의식’을 기르는 것이 강력하게 요청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대형 연예기획사들은 남성 아이돌 가수들을 대상으로 젠더감수성 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여성 팬들을 상대로 성적 농담을 하지 말 것, 성적 대상화를 시키거나 외모비하도 하지 말 것 등을 가르치면서 ‘젠더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 남성 아이돌의 스타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교육하는 식이다. 2015년 한 연예기획사의 남성 아이돌 젠더 감수성 교육을 직접 살펴본 권김현영 교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여성 아이돌은 팬들에 의해 몰카 등이 찍힌다거나, 범죄적인 행동의 피해자가 됐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알까, 자신을 지키기 위한 교육을 받는지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여성 아이돌들에게 팬들이 가하는 폭력 대처법을 가르치는 것은 남성 아이돌들에게 '팬들에게 성적 비하를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어려운 문제다. 오히려 이것은 교육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의 문제에 가깝다.

권 교수는 “대형 기획사인 JYP같은 경우 소속 여성 연예인에 대한 공격이 있었을 때 회사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메뉴얼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중소 규모 소속사의 많은 여성 아이돌들은 애초에 ‘1,2년 정도만 활동한다’고 여겨져 장기적인 투자를 받지 못하고, 돈을 쓰는 팬이 중요하니까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이들은 보호받기 보다는 착취당하기 쉬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여성 아이돌을 보호하기 위한 대처가 빈 자리에는 어쩔 수 없이 여성 아이돌들의 자구책이 들어선다. 이번 여자친구 팬사인회 몰카 영상이 화제가 되자 덩달아 지난해 5월 한 대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펼치던 그룹 나인뮤지스 멤버의 대처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짧은 치마를 입고 공연을 하던 이들의 무대 바로 앞에서 한 관객이 카메라를 기울여 다리와 치마 속 등을 찍으려고 하던 모습을 멤버 문현아씨가 발견하고 무대를 마친 뒤 관객에게 다가가 “아래에서 찍지 말라”며 촬영을 제지한 것이다.

지난해 5월 여성 아이돌그룹 나인뮤지스의 공연 중 멤버 문현아씨가 무대 앞에서 카메라 각도를 기울여 사진을 찍던 관객의 촬영을 제지하고 있다. 영상 캡쳐

권김현영 교수는 “몰카를 공연 중인 아이돌 가수가 직접 잡아냈다는 것은 몰카 피해를 실제로 많이 겪고, 이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는 정보가 있다는 것”이라며 “여성 아이돌 그룹들이 겪고 있는 몰카 피해실태가 공론화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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