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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의 시 한 송이] 쾰른, 성당 뜰에서

입력
2017.04.0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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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는 있을 수 있는가”라는 철학자 아도르노의 물음에 대한 대답의 의미로 파울 첼란은 ‘죽음의 푸가’를 썼습니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그것을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정오와 아침에 그것을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밤에 마신다/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 하나를 판다/ 그곳에선 좁지 않게 누울 수 있다”로 시작되는 시입니다. 첼란은 유태인 박해로 22살에 양친을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시간, 누구나 삶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몇은 정적 속으로 말을 합니다. 정적 속으로 한 말은 정적 속으로 묻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몇은 침묵하였습니다. 침묵 속의 말은 발설되지 않아 안에서 들끓는 말이기도 합니다. 몇은 자기 길을 갔습니다. 언제까지나 이곳으로부터 시작될 길입니다.

쾰른 성당 뜰에 서 있었을 첼란을 떠올려봅니다. 제가 걷는 길에 절두산 성지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강이고 뜰 한편에는 작은 촛불들이 일렁이는 촛불 봉헌대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너희들, 들리지 않는 너희들, 우리 속 깊숙히 너희들. 매해 부활절은 춘분 후 첫 만월 다음에 오는 일요일입니다. 올해의 부활절은 4월 16일입니다.

끝에서 다시 시작이 있을 것입니다. 꿈꾸었던 마음으로 자정의 암호를 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모양처럼 제 입은 다물고 말하는 입을 골똘하게 보는 중입니다. “그늘을 말하는 자/ 진실을 말한다”(‘너도 말해라’). 무엇보다 그곳에 이르는 말인지 살펴야겠습니다.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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