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과 2030의 연애시 탄생기

5060세대의 젊은 시절 편지와 사진들. 신지후 기자

‘연애 감정’은 삶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관심사다. 사랑 표현 방식이 시대에 따라 예민하게 달라지는 이유도 그만큼 많은 열정과 관심을 쏟아 붓기 때문일 터. 때문에 편지지에 담기든, 카카오톡에 담기든 연애시는 형태가 변주돼도 영원한 장르이다. 그렇다면 요즘 2030세대와 과거 5060세대가 마음을 담아 쓴 연애시는 어떻게 달라져 왔을까? 남녀 각각 6명의 경험담을 모아, ‘연애시 탄생기’를 재구성해 봤다.

◆5060이 2030에게
5060세대가 1980년대 쓴 연애시들. 신지후 기자
네잎클로버ㆍ고운 낙엽…
연애시 예쁘게 꾸미려고
별 짓 다했던 그 시설
AI가 소설쓰는 요즘
되새겨보니 웃음 나더라

인공지능(AI)이 문학작품을 만드는 시대라지? 한창 알파고 열풍이 불던 지난해 5월, 구글 브레인팀이 자사가 개발중인 AI가 쓴 연애소설 몇 줄을 소개했더구나. ‘내 눈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들뿐이었다. 그들은 내게 남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어설픈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개발자들이 인간의 뇌를 모방한 신경망에 연애소설 약 3,000권을 포함한 총 1만1,000여권의 책을 읽히고 학습시킨 결과라는 설명을 듣고선 참으로 놀랐다.

이러한 시대에서 1970, 80년대 연애시는 어떻게 쓰이고 전달됐느냐를 되새겨보니 픽 웃음부터 나더구나. 나라 안팎으로 어수선해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라고 불렸지만, 마음에서 끌어 오르는 감정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지.

연애시를 전할 예쁜 종이 한 장을 만들기 위해 별 짓을 다해봤던 기억이 먼저 떠오르네. 직접 발품을 팔아 편지지를 꾸며야 했으니까. 봄ㆍ여름이면 강의가 끝나자마자 캠퍼스 잔디밭과 학교 인근 공원으로 가서 네잎클로버를 찾아 다녔지. 얼마 후엔 네잎클로버도 희소성이 없어지는 바람에 다섯잎, 나아가 여덟잎 클로버를 찾아 다녀야 했지만…. 사나흘 꼬박 풀밭을 뒤지다 겨우 클로버를 발견하면 갖고 있는 책 중 제일 두꺼운 것을 골라 꾹꾹 끼워 넣고 잘 마르길 기다렸단다. 가을이면 가장 색이 고운 낙엽을 찾아 길거리를 두리번거리며 걸었고, 식물이 귀한 겨울에는 상록활엽수의 잎을 노랗게 말려 쓰기도 했어. 1,000원이면 멋진 편지지를 구할 수 있고, 더구나 컴퓨터로 직접 디자인할 수도 있는 요즘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지?

70, 80년대에는 우표나 성냥 수집이 워낙 유행했었기에 이를 활용한 연애시와 편지도 자주 주고받았다.‘절대로 사용하지 않고 평생 갖고 있겠다’며 10대 때 고이 모아 둔 우표를 두세 장씩 꺼내 편지봉투 바깥에 붙일 정도로 과감하기도 했지. 당시에도 대학가에는 카페가 꽤 많았는데, 카페마다 성냥이 비치돼 있어서 하나씩 모으는 게 재미였어. 그렇게 쌓아 둔 성냥 끝에 물을 찍어 연애시 옆에 곁들일 꽃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대학 학보도 연애시 전달통이었다. 그 시절 나름의 낭만이었지. 학보로 어떻게 연애시를 주고 받았냐고? 우선 1면에 적힌 학보명이 보이도록 신문을 길게 접어 가운데에 흰 종이(보통 ‘띠지’라고 불렀지)를 두른단다. 띠지 바깥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학교와 과명, 학번을 적었고, 안쪽에는 깨알같이 연애시를 적어 상대방 대학의 학보사로 보내는 거지. 무엇이 부끄러웠는지 이름은 쓰지 않았단다.

지난해 이화여대가 공개한 1965년 10월11일 학보에 따르면 그 당시 이화여대 학보사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20여통의 편지가 배달됐다고 하더구나. 이렇게 매주 한 차례 발행되는 학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연애시를 써 부치고 답장까지 받으려면 족히 2주는 걸렸었어. 그 아이가 학보사에서 편지를 찾아가기나 했을까, 요샛말로 ‘읽고 씹지는’ 않을까 2주 간 매일을 안절부절 못했었지.

거리 곳곳 빨간색 우체통은 또 얼마나 사람을 설레게 했는지.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1993년 5만7,559개에 달했던 전국의 우체통 수는 2015년 1만4,920개로 70% 가까이 줄었다고 하네. 그만큼 우체통이 희귀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것이 주는 설렘의 정도는 80년대와 비교도 못 할거야. 흔하디 흔한 우체통이었지만 그것과 눈 마주치는 때마다 ‘혹시 저 안에 내 것이 들어있진 않을까’하는 은근한 상상을 하게 됐으니까.

연애시가 오고 가는 긴 시간 동안 공부도 많이 했지. 어쩌면 ‘연애를 책으로 배웠어요’라는 말은 우리시대에 딱 맞을지 몰라. 요새는 포털 검색 한 번으로도 좋은 글귀를 찾아낼 수 있지만 우리는 직접 시집을 구해 밑줄을 쳐가며 읽거나, 유행하는 노래를 스승 삼아 연애시를 써 내려갔지. 이해인, 도종환, 서정윤부터 칼릴 지브란까지, 국내외 유명 시인 이름 서너 개쯤은 알아두고 있는 것이 ‘연애꾼’들의 비법이라면 비법이었고. 비록 그들의 시 구절을 두 줄 이상 외우진 못했지만 말이다. 영어나 한자는 멋들어진 연애시의 필수요소였기에 또 다른 연구의 대상이었단다.

그 방법과 형식이 어떻든 연애시와 편지에 있어서 만큼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상당하지 않니? 치열한 고민과 서툰 언어로 탄생한, 인생에 몇 번 없는 뜨거운 기억이라는 점. 내 의지대로만 생각하고 움직이는 경험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인생에서, 온전히 순수를 쏟아 부은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2030이 5060에게
페이스북 '시쓰는오빠' 페이지에 게재된 공동운영자 윤현식씨의 시(왼쪽 두번째까지)와, 작가 김세영씨가 온라인 작품을 모아 낸 시집 '시쓰세영'의 한 페이지. 작가 제공
“연애는 사치”
N포세대인 우리
휴대폰을 연습장 삼아
그때그때 적죠

우리 세대의 연애시요? 취업ㆍ경제난 탓에 그 많은 것들 중에도 ‘연애’를 가장 먼저 포기(지난해 12월 취업포털 사람인 조사, 응답자 955명 중 19.8%가 꼽음)한다는데, 부모님 세대가 생각하는 대로 연애시와 편지의 탄생이 그저 쉽지만은 않지요. 하지만 대학 새내기, 신입사원이라는 이름을 달았는데 사랑과 연애에도 노력을 해야죠. 가만히만 있을 수 있나요.

요새는 애인 간에 챙겨야 할 기념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 언제든 연애시 한 편 쓸 준비는 돼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휴대폰은 가장 좋은 연습장이라 할 수 있겠네요. 휴대폰을 손에서 놓는 일이 거의 드물기 때문인지, 한참 애인에게 빠져 연애시를 쓸 때는 매일 휴대폰 메모장에 떠오르는 감정을 그때그때 적어놓곤 해요. 좋은 사진이 있으면 내려 받아 그 위에다 써보기도 하고, 흰색 바탕 문서에 각종 그래픽 스탬프를 찍어 꾸며보기도 하고요. 시집을 즐겨 찾지는 않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행 글귀들은 많이 활용하지요. SNS 시인 하상욱씨, 최대호씨의 위트 있는 연애시는 몇 번이고 응용해봤던 것 같아요.

어떤 감정이든 메신저와 SNS로 빠르게 오고 가기 때문일까요? 공들여 쓴 연애시, 편지의 가치는 부모님 세대보다 더욱 높아졌다고 생각돼요. 그러서인지 연애편지 대필 업체도 생겨 A4용지 1쪽당 1만~2만원 정도만 내면 ‘고백을 위한 시’ ‘헤어진 연인 붙잡는 편지’ 등을 써주고 수정ㆍ보완 작업까지 해준다고 해요. 비슷한 업무를 해주는 온라인 사이트도 포털 검색만 하면 많이 나오는데, 자신을 기자나 시인, 작가 출신으로 소개한 이들이 주로 시나 편지를 대신 써준대요.

연애시와 편지를 쓰기 위해 직접 공부하는 친구들도 늘었어요. 아빠 엄마가 종이를 꾸밀 식물들을 찾아 캠퍼스를 누볐다면, 우리는 캘리그래피(글자를 쓰는 기술)나 그래픽 편집 소프트웨어인 포토샵을 배우러 다니지요. 순천향대에선 올해 새 학기 ‘연애시 읽기’라는 교양과목이 생겨 학생들에게 인기라고 합니다. 51명의 학생들이 한국과 영미권 연애시를 읽고 감상ㆍ분석하고 있다는데, 학점도 따고 연애시 보는 눈도 키우고 일석이조 아니겠어요? 직장인 중에는 정기적으로 연애칼럼니스트 특강을 듣거나 전문가 상담을 받는 ‘연애학습족’도 생겨났다더군요.

예나 지금이나 연애감정이 가장 절절한 때가 군 복무시절 아니겠어요? 요새는 군대에서도 인터넷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터라 부대 내 작품활동이 더욱 활발해졌죠. 페이스북 페이지 ‘시쓰는오빠’의 공동운영자 4명은 군 복무 시절 처음 연애시를 써보고 그 매력에 심취해 해당 계정을 만들었다고도 하고요.

‘취업=연애가능’ ‘미취업=이별’ 같은 살벌한 방정식만이 우리 세대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누구나 가슴 속엔 한 편의 시가 살고 있다(황인숙)’는 말이 있듯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연애 감정과 문학 욕구는 우리 속에 떳떳이 살아있답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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